보건의료이슈

중증 소아 환자의 치료 결정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

 

글. 김민선 교수(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2018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소아청소년과는 내과 등 성인을 주로 진료하는 과에 비하면 연명의료결정 및 이행을 하게 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암 환자 등 중증 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은 이 법에 따른 절차에 대하여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가 19세 미만인 경우 이 법에 따라 연명의료결정 및 이행을 하는 절차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2018년 2월 28일에 통과된 개정안 중 말기 질환 지정에 대한 부분은 개정안 공포 1년 후에 발효되며, 2018년 8월 현재 공포 전이므로 개정 전 내용으로 정리하였다).

 

먼저 말기 판단을 할 수 있는 네 가지 질환(암, 간경변,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에이즈)에 속하는 소아청소년 암 환자의 경우를 살펴보면,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말기 또는 임종기에 해당하는지를 담당의사와 전문의가 판단한 후에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된다. 이 때 담당의사는 환자와 친권자에게 이 결정의 내용에 대하여 설명하고 결정에 대한 서명은 친권자에게 받는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질환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소아청소년 질환군을 고려할 때 암 이외의 모든 질환 환자의 경우)는 의사가 법에 따라 말기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수 없다. 이 부분은 개정안에서 질환에 관계없이 수개월 이내 사망할 수 있는 모든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기 때문에 개정 법률이 공포되고 1년이 경과한 이후에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모든 질환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경우, 즉 환자가 너무 어려서 상황을 이해하고 결정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거나 의식이 저하되어 있는 경우에는 임종기에 진입하기 전, 즉 말기에는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없다. 이 경우 환자가 임종과정에 진입하였다는 것을 의사 2인(담당의사와 전문의)이 확인한 후, 친권자 2인이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에 대한 친권자 의사확인서를 작성함으로써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생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자기결정권 보장을 처음으로 법제화하였다는 것과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하였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가지지만, 현장의 필요와 국외 가이드라인 등을 고려할 때 추후 지속적 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 그 중 미성년자와 관련한 주요 이슈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는 이 법에서 미성년 환자에게 말기/임종기 사실과 연명의료결정에 대하여 알리는 것을 의무화하였다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 제 10조에 따르면 연명의료계획서는 반드시 환자가 작성해야 하는데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환자와 법정대리인에게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확인을 받도록 되어 있다.

 

수개월 전 만났던 진호(가명)는 12살에 급성백혈병으로 진단받았다. 1차 항암치료에 반응이 없어 항암약제를 변경하였고 다행히 이 약제로 관해유도 치료에 성공하여 항암치료를 지속하며 동생으로부터의 조혈모세포이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1달도 채 되지 않아 환자는 발열과 두통으로 응급실에 내원하였고 혈액검사와 골수검사에서 재발이 확인되었다. 다시 관해 유도 항암치료를 시작하였으나 실패하였고 2번째 항암요법에도 호전되지 않았다. 그 사이 폐에 진균 감염이 발생하여 항진균제를 사용하였으나 호전되지 않았고 점차 흉수가 차서 배액을 하였으나 다시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더 이상의 항암치료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논의를 해야 했다. 진호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은 있는 아이였으므로 법에 따르면 진호에게 설명을 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진호가 매우 심약한 아이이기 때문에 진호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릴 경우 낙심하여 상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걱정하며 진호에게 알리지 않기를 원하였다.

 

소아청소년 환자에게 나쁜 예후에 대하여 알려주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여러 연구를 통한 논의가 있었다. 최근에 출간되는 여러 논문과 가이드라인에서는 환자의 여러 상황들을 파악하고 부모 등 보호자와 긴밀히 논의하여 환자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으며, 환자에게 이득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나쁜 예후에 대하여 꼭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각주:1]. 암으로 치료 중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75%의 청소년은 예후가 나쁜 상황이 왔을 때 사실을 알기를 원한 반면 12%는 예후에 대한 대화를 직접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응답하였다. 다행히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통해 연명의료계획서에 미성년 환자 대신 친권자가 서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는 하나, 환자에게도 반드시 설명을 해야 한다는 부분을 법령으로 유지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겠다.

 

둘째는 나이가 어리거나 의식이 저하되어 있어 본인의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을 할 수 있는 시기를 임종기로 제한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소아청소년과에서 종종 접하는 저산소성뇌병증, 신경퇴행성 질환 등으로 인해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19세 이상 환자에서도 같은 문제를 초래한다. 이와 같은 환자들은 본인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기존에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밝힐 기회를 원천적으로 가질 수 없었던 경우이므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반드시 가족 전원 합의 또는 친권자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임종과정에서만 이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본인이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에는 가족 전원 또는 친권자가 연명의료에 대하여 미리 결정하여 서식을 작성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 해당 결정의 이행은 의사 2인이 임종과정을 판단한 이후에만 가능하도록 하는 개선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의사 표현을 못하는 상태로 힘든 시간을 살아온 환자의 임종기에 허겁지겁 가족 전원을 모아 서명을 받도록 하거나, 미리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임종기에 연명의료를 적용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생의 마지막 시기에 대한 숙고를 통해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보장하고자 한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의 제정 이유가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환자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치료 결정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환자의 치료 등에 대한 윤리적 의사 결정에서는 의학적 조건 외에도 삶의 질, 환자의 선호, 배경적 특징 등을 충분히 고려하도록 되어 있으나 연명의료결정법은 매우 좁은 범위의 치료 결정에 대한 세부 규칙에 집중되어 있어 오히려 현장의 의료진이 환자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윤리적 의사결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현대의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출생 체중이 1kg 미만인 초극소저체중출생아의 생존률은 1980년대 10% 전후였으나 현재 70%가 넘는다. 또한 인공호흡기 등 여러 생명유지기기의 소형화 및 간편화로 이전에는 중환자실에서 오랜 기간 입원해 있다가 사망하였던 여러 희귀 질환 환자들이 휴대용 인공호흡기와 산소발생기, 위루관 등을 가지고 수년 이상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너무나 일찍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을 곁에 두고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현대의학의 발전에 힘입은 것이나 그와 함께 중증 질환을 가진 소아에서의 윤리적 이슈가 나타나고 있다.

 

수호는 만 6세의 남자 아이이다. 수호는 출생 당시 난산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응급 제왕절개술로 출생하였으나, 출생 당시 호흡이 매우 약했고 늘어진 모습이었다.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인공호흡기 치료와 몇 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저산소성 뇌병증’이라는 진단명을 받고 3년간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았다. 현재 수호는 눈을 뜰 수는 있으나 적절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며, 심하게 보챌 때 안아주면 조금 달래지는 경향이 있으나 주돌봄 제공자인 엄마와 눈을 맞추거나 웃지는 못한다. 수호는 출생 이후 지속적으로 비위관으로 영양 공급을 받았으며 사지에 경직이 있어 약물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 수면유도제를 사용하나 조금 용량을 늘리면 호흡이 저하되고 용량을 줄이면 경직과 불면이 심해지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호흡이 불완전하여 24시간 산소 투여를 필요로 하며 최근 1년 사이 4차례(총 9주) 폐렴, 호흡곤란 등으로 입원하였고, 그 중 한번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수호의 부모는 현재까지 아이를 정성스럽게 돌봐 왔으나, 만약 다시 폐렴 등으로 인해 심각한 호흡곤란이 발생한다면 인공호흡기 등의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며 더 이상의 치료는 아이가 ‘숨만 쉬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수호는 여러 차례 폐렴을 겪었고 심한 호흡곤란이 발생하였을 때 중환자실에서의 체류 기간은 수일에서 수주까지 다양했지만 적극적 치료를 하고 나면 호전되었다. 즉 수호가 만약 다시 폐렴으로 심각한 호흡곤란이 온다면 이는 가역적인 상태일 가능성이 높고 수호가 진단 받은 ‘저산소성 뇌병증’은 진행성 질환이 아니므로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정의한 임종기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저산소성 뇌병증을 가진 환자의 경우(생존 기간은 뇌손상의 정도나 기타 장기의 동반 문제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지막 시기에는 여러 차례의 감염과 호흡곤란, 대사성산증 등의 상황을 겪다가 사망하게 된다. 이런 환자의 경우 임종기는 언제일까? 응급 상황 발생 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면 회복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이전의 적극적인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고 사망하게 된다. 환자에게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수호에게 의견을 물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의료진은 부모의 의견을 묻게 되는데, 부모의 의견은 부모 또는 가족의 가치관, 간병 도움 여부, 사회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부모는 결정을 내릴 때 환자의 이익과 함께 가족(예를 들면 환자의 형제)의 이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같이 재택의료 및 간병 지원이 없고 장애에 대한 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가족 중 1명 이상이 아이의 365일 간병인이 되기로 결정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중증 질환을 가진 환자에 대한 치료 결정은 당연히 의학적 근거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의사 결정(decision making)에는 법·제도, 사회적 환경, 의사 개인의 가치관, 전문가 집단의 분위기, 환자 및 보호자의 선호 등 여러 요인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특히 중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소아 환자의 치료 결정에 있어서는 당연히 장애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관점과 사회적 지원 체계가 결정 당사자의 생각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같은 의학적 상태를 가진 소아 환자의 여명 또는 삶의 질이 부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상이하게 결정되어도 되는 것일까? 소아 치료의 결정에 있어 부모의 권한은 어디까지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흠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deformed child)는 키우지 않도록 한다.”라고 말하였고 영아살해가 금지된 것은 겨우 서기 374년에 이르러서였다. 더 가까이 1984년 미국에서 위장관폐쇄증을 가진 다운증후군 아이의 엄마가 수술을 거부하여 법정 소송이 진행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많은 시민들은 “집에서 다운증후군 아이와 함께 자라는 것이 다른 형제들에게 좋지 않다.”라며 수술을 거부하는 것에 동의하였다고 한다. 이후 ‘Baby Doe Rules’이 제정되었고, 어떤 아이도 불충분한 치료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목적에 의해 1) 아이가 비가역적인 혼수 상태이거나, 2) 치료가 생존 측면에 있어 무의미하거나, 3) 치료가 생존 측면에 있어 ‘사실상 무의미’하고 비인간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최대한의 치료(maximal treatment)를 제공하지 않으면 아동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적 행위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는 장애 아동이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나 이후 의료진은 환자의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최대한의 치료를 해야 하는 것으로 이 법을 이해하였고,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의식 수준이나 치료로 인한 고통 등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고 사망할 때까지 중환자 치료를 지속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1986년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이 법은 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흐름은 바뀌지 않다가 2003년 Baby Miller 사건이 발생하며 많은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24주에 출생한 미숙아의 부모가 아이의 생존 가능성이 낮고 신경학적 예후가 불량한 것을 이유로 중환자 치료를 적용하는 것을 거부하였으나 병원이 치료를 지속하여 발생한 사건으로, 이후 신경학적 손상이 심한 상태로 생존한 밀러로 인해 그의 부모가 병원을 고소하여 법정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당시 주법원 판결은 의료진이 응급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료진이 치료를 한 것은 적절했다고 판단하여 병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병원이 부모에게 2,9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아 당시 치료 결정에 있어 아이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하는 부모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있음을 드러내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장애에 대한 심한 편견과 중증 장애인의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부재, 그리고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시하는 엄격한 임종기 판단의 기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부모와 의료진은 아이에게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을 매일 받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최대한의 치료‘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 사회와 의료진에게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하여 치료를 결정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던져 주었다. 환자와 가족을 둘러싼 의료적·사회적 상황은 법령이 세부사항을 정해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연명의료결정법을 보완해 가는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치료의 적용과 중단 등 중증 소아 환자를 둘러싼 여러 이슈의 합의점을 모색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지속하여 큰 틀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사회의 흐름에 따라 보완해 가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또한 의료진과 부모가 간병 지원의 부재나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환자의 이익을 중심 가치로 두고 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우리 사회가 해야 할 몫일 것이다.

 

참고문헌

  1. Cha JM, Kim HS, Kwak MS, Park S, Park G, Kim JS, Kim J-H, Kim WH. Features of Post-colonoscopy Colorectal Cancer and Survival Times of Patients in Korea. Clinical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 2018. DOI: 10.1016/j.cgh.2018.06.03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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