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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15 7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SBS 드라마 <닥터 이방인>

 

 

글. 양금덕 기자(청년의사)

 

(C)SBS


만약 당신이 그토록 기다렸던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사가 북한출신이라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심장 수술을 맡길 수 있겠는가?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닥터 이방인>은 북한 이탈 의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박 훈(이종석 분)은 북한이탈 의사로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들게 ‘가리봉의원’을 운영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하나원(북한 이탈주민 정착지원 사무소) 동기인 이창이(윤보라 분)의 생수배달을 도우러 명우대학병원에 왔다가 심근경색에 심부전까지 온 응급환자를 만나게 되면서 기로에 서게 된다.

 

당시 병원에는 대형교통사고 환자들이 수송돼 이 환자의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없었고, 환자는 어레스트(심장정지)까지 일으켜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이때 환자의 딸인 여자아이가 박 훈에게 수술을 해달라며 수술비 500원을 손에 쥐어주며 운다. “저 아빠랑 있고 싶어요, 아저씨.” 그 말을 들은 박 훈은 “앞으로 네가 의사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생각나 수술실로 들어간다.


박 훈은 케비지(관상동맥 우회로술)와 셉탈 럽처 리페어(심실중격파열 회복술)를 실시한다. 그는 수술부위 절개시 피가 나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의술을 선보이고 이윽고 낯선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중단 위기에 직면하지만 환자부터 살리자며 수술은 계속된다. 성공적인 수술 장면을 목격한 前 흉부외과 과장인 문형욱(최정우 분)이 그를 스카웃하기로 한다. 박 훈은 어린 시절 아버지인 의사 박 철(김상중 분)과 본인을 북한으로 내몬 명우대병원이 싫지만, 잃어버린 여자친구 한승희(진세연 분)를 찾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제안을 받아들인다.

 

의료진들도 박 훈의 수술 장면을 보고 그의 실력에 감탄하지만 정작 평양의과대학 출신이라는 말을 듣자 고개를 돌린다. “저 친구 데려다 누구를 수술하려는 거였냐, 총리야. 탈북자한테 잘도 심장을 맡길 겁니다. 그렇죠?”, “탈북자한테 어떤 환자가 몸을 맡기겠어?”

A급 실력은 인정하면서도 북한출신이라는 이유에서 그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박 훈은 아버지 박 철과 함께 일했던 병원장 최병철(남명렬 분)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다.

 

(C)SBS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남한 땅에 정착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주변인들의 시각이었다’는 한 탈북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북한에서 30년을 의사로 살아왔는데 아무도 나를 쓰려고(고용)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평생 매스를 잡아왔던 그이기에 의사국시를 치기로 했고 생소한 영어와 국내 의술을 습득했고 지금은 당당히 지역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그나마 탈북 후 자신의 업을 이어온 몇 안 되는 의사다. 사실 탈북한 의료인의 절반 가량은 본업을 포기하고 있다. 의료체계나 수준이 달라서 국내 의료활동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지난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북한이탈의료인 중 80명이 국가시험 응시자격을 신청한 것으로 나온다. 이들 중 절반 정도인 48명만 구술면접 형태의 자격인정시험, 자격심사를 통과해 시험을 쳤고 최종 합격한 사람은 23명에 불과했다.

그렇게 현재에는 탈북 출신 의사 15명, 간호사 3명, 한의사 3명, 치과의사 1명, 약사 1명만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물론 탈북자 중에서 국내 정규대학과정을 거쳐 의료인이 되는 경우는 제외했다.

이처럼 힘들게 면허를 취득했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억양이 다르다고, 탈북자라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로 또한번 상처를 받고 있다.

 

드라마 속 박 훈도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매번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그래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그의 진심을 겪은 이들은 하나 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때로는 그만이 가진 북한의 수술경험이 빛을 발하기도 하고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늘 차가운 이성으로 환자를 대하는 엘리트 의사인 한재준(박해진 분)을 교화시킨 것도 박 훈이다.

복수를 위해 의사가 됐다는 한재준은 박 훈을 찾아와 이런 말을 남긴다.

 

"그동안 박 선생이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이방인은 나였다. 진심으로 환자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의사는 이방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도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진짜 이방인은 있는지. 우리의 편견이 서로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