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22 3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암경험자의 사회 복귀에 필요한 것은-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글. 신동욱 교수(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암건강증진센터)

 

리리코, 섬세하고 시적인 표현.
스핀토, 관객의 심장을 관통하는 목소리.

 

더 테너 리리코스핀토, 아시아 오페라 역사상 100년에 한번 나올만한 목소리로 주목 받으며 유럽무대에서 활동하는 배재철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최고의 테너이자 오페라 스타이다. 일본의 오페라 기획자 코지 사와다는 그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일본에서의 공연을 제안하고, 두 사람은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친구가 된다.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그러던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잃었다.

 
갑상선암을 진단받고 간단할 것이라고 듣고 수술에 들어갔지만, 이미 성대 신경까지 갑상선암이 퍼져있어 암조직을 떼어내면서 목소리를 내는데 꼭 필요한 성대 신경을 손상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 


의사: “성대 한쪽이 마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윤희(재철의 아내); “그이는 가수에요. 오페라 가수라고요.”
의사: “뭐가 더 중요합니까? 목숨인가요, 노래인가요?”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결국 한쪽 성대가 마비되면서 다시 노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는다. 노래는커녕 말조차 하기 힘들어진 재철. 그리고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아내 윤희는 그의 성대를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인터넷에서 일본의 이시키(Ishiki) 교수의 갑상선 성형술에 대해 알게 된다.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재철이 전화 연락을 안받자 코지는 일본에서 그를 찾아와 CD를 내자는 제안을 한다. 재철은 처음엔 곧 나을 것이라고 둘러 이야기를 했으나, 윤희를 통해 코지는 재철이 목소리를 잃은 것을 알게 되고, 재철은 그간 억눌렸던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재철: “여기 왜왔어? 나를 봐. 난 완전히 끝났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 빌어먹을 오텔로 주역도 뺏기고. 내 분장실도 형편없는 놈이 차지했어. 내 포스터도 걸레처럼 찢겨졌다고.”
코지: “재철, 그만해!
재철: “CD. 네가 말한 그것.. 페데리코의 탄식, 이걸 첫 곡으로 해줘. 페데리코는 그 노래를 부르고 자살하잖아. 그래, 내 상황이랑 딱 맞아.”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재철의 계약 해지 통보, 윤희의 오디션 실패 등 더 이상 유럽에 남을 수 없는 재철과 윤희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 사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윤희가 전한 이시키 수술에 대한 작은 쪽지 하나를 받은 코지는 이시키 수술을 받게 하기 위해 전력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이시키 교수: “제 환자들은 밀을 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평범한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건 그 동안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수술입니다.
코지: “그의 노래가 담긴 CD입니다. 한번만 들어봐 주십시오. 그에게 노래는 목숨과도 같습니다”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어려운 수술이 될 것이라는 이시키 교수를 간신히 설득했지만, 이번엔 재철을 설득하기가 어렵다.

 

코지: “그래,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재철: “코지, 나 이제 더 이상 노래 안해. 이미 그렇게 결정했어. 지금 다른 일도 알아보고 있고.”
코지: “다른 일? “너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봐. 다시 노래하고 싶지 않아? 가수가 아닌 네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
재철: (잠시 간격을 두고) “나 노래하고 싶어.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 싶어. 수술 받을게”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국소마취 후 목소리를 내게 하면서 마치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해야 하는 수술. 조율 후 최선의 목소리에서 고정을 하고, 테스트를 위해 노래를 해보게 한다. 이에 재철은 찬송가를 부른다.

 

재철: “소리가 단단한 느낌이 없고 호흡이 새는 느낌이에요”
(조율 후)
재철: “훨씬 소리가 굳는 느낌이에요”
(고정 후)
의료진: “아무거나 한번 노래해보시겠어요? “
재철: “노래요?”

(노래)“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목소리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긴 재활의 과정. 목소리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재철은 여전히 망설인다. 윤희와 코지는 그런 재철을 계속 북돋아주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다른 사람의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결국 무대에 서보기로 결심한다. .

 

코지: “오늘 무대 보니까 어때?”
재철: “응, 좋더라.”
코지: “내 말은, 네가 어떻게 느꼈냐고?”
재철: “그야, 솔직히 부럽지.”
코지: “부러우면 너도 해.”
재철: “이봐, 코지, 넌 내가 지금 무대에 설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 아서라.”
코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난 너의 20년 후를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고. 중요한 건 다시 시작하는 시점이야. 이번 공연이 그 시작이 되는거야. 윤희, 어떻게 생각해”
윤희: “음, 어떤 노래를 부르는게 좋을까?”
재철: (웃음) “너희 둘이 짰지?”
코지: “아니거든”
재철: “좋아, 해볼게.”
코지: “정말?”
재철: “그래. 지금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안하게 되겠지. 아직 때가 아니라는 핑계를 대면서 미루고 또 미루고, 결국 아무것도 안하게 되겠지. 움츠러들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해보자. 해볼게”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공연을 하기로 한 날.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소리를 길게 낼 때 중간에 호흡이 떨어지는 이유를 질문하다가, 사실 호흡을 도와주는 횡경막 신경이 손상되었던 것을 새로 알게 된다.

 

이시키 박사: “문제는 호흡량입니다. 폐에 공기를 넣고 빼는 횡격막에 문제가 있어요. 암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성대신경뿐만 아니라 횡격막 신경도 함께 망가진 것 같습니다.”

 

재철은 이에 다시 절망하여 병원을 떠나버리고, 공연시간이 되도록 공연장에 나타나지를 않는다. 재철은 그렇게 거리를 방황하다가 윤희가 이전에 했던 말을 기억해낸다.

 

재철: “내가 무대에 다시 서는 것, 백 년 뒤에나 가능할 걸?”
윤희: “그 백 년, 전부 보여줘도 되잖아. 조금씩 변해가는 당신 모습 보여주자. 사람들에게 전부 보여줘.”

 

공연장으로 다시 돌아온 재철. 무대에 오르기 전 코지에게 말한다. 

 

재철: “코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병에 걸린게 좋았던 거라고. 이제야 알았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왜 노래를 해야 하는지. 비록 형편없는 목소리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내 노래를 듣고 싶어한다면 나 노래할게. 최선을 다해서.”

 

그의 무대를 기대하지 않는 많은 관객은 자리를 떠났지만,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남은 사람들을 위해 그는 다시 무대에 오른다.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이 영화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최고의 오페라가수가 되었다가, 갑상선암 진단 후 목소리를 잃었던 테너 배재철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름다운 음악과 감동적인 스토리, 그리고 이 영화를 위해 혼신을 다한 유지태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개인적으로는 암경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는 의사  연구자로서 암경험자들이 겪고 있는 사회 복귀의 문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박재현 등 (2008)의 국내 암환자의 직업 상실과 복귀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암 환자의 약 47%가 진단 후 1년 이내에 실직하게 되며, 이들 가운데 이들 가운데 70%는 5년 동안 직장에 복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환자들이 영화 주인공인 테너 배재철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겠지만, 암치료 후의 신체적인 기능상실은 물론, 정신적인 고통, 자신감의 상실, 사회의 차별적 시선 등이 이러한 문제에 연관되어있다. 암환자들이 직업에 복귀하지 못하면 이는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자존감의 저하, 우울, 자살 등의 문제로도 연관될 수 있고, 국가적으로는 노동 생산성의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에서는 이들의 재활과 사회복귀를 도울만한 시간적 여력이나 경제적 유인이 없는 상황이고, 사회복지 차원의 정책적 지원도 거의 없는 상태이다.

 

또 하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가족과 친구의 역할이다. 암치료, 그리고 재활과정에서는 가족과 친구로부터의 지지가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아내 윤희가 이시키 교수의 수술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고, 코지가 이시키 교수와 재철을 설득하여 수술을 받게 하고, 윤희의 도움으로 재활을 하였던 과정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모든 환자가 이런 극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오는 실질적인 도움들과 정서적 지지는 암을 극복하고 정상생활로 돌아오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암 진단은 많은 이들에게 인생을 바꾸는 큰 사건이 된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신감을 잃고 우울함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잘 극복하고 오히려 전에 깨닫지 못했던 의미를 찾아내고 더 긍정적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뜻하지 않은 병마로 한때 음악 인생을 접어야 했던, 그러나 아내와 친구의 믿음과 지지로 이를 극복하고 새 삶을 시작한 테너 배재철의 스토리는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