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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NECA/NECA 24시

[NECA 실습 체험기] NECA, 넓은 세상을 보는 눈

NECA, 넓은 세상을 보는 눈
-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실습교육 체험수기

이영진 (중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실습기간: 2015. 3. 30. ~ 4. 10.


 

 

△ 성익현, 이성규팀장, 문선재, 이영진(왼쪽부터)

 

 지난 3년간의 의학전문대학원을 다니면서 언젠가는 의사가 되겠지 하는 타성에 젖어서 일까... 해부학, 병리학, 내과학, 외과학 등등 높은 산들을 넘어, 어느새 병원에 나와 빳빳하게 다려진 와이셔츠에 마치 의사인척 하얀 가운을 입고 이등병처럼 허둥지둥 뛰어다니던 나에게는 빅데이터, 원격의료, 보건의료정책은 그저 지나가는 명사(noun)들에 불과 했다. 남들은 이런 단어에 담긴 의미가 우리의 미래라고 부르짖던 말던 나는 그저 어떻게 하면 임상실습을 편하게 보낼까, 어떻게 스케줄을 비워 국시공부나 할까 하는 궁리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방대한 의학지식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하는 와중에 우물 밖 세상에 신경 쓰는 것은 사치라고 자기 위안을 해왔던 걸까..
  이런 상황에서 2주간 주어진 외부 실습 기관을 정하는 과정은 그리 건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그렇듯이 어디로 가야 자유시간이 많고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려 사항이었고, 실제로 무언가를 배워 오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고 NECA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한 채 덜컥 학교에 신청서를 내게 되었다.


  실습 첫날, 그동안의 임상실습보다 무려 3시간이나 늦춰진 출근시간에 좋아하며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충무로역에 도착하였다. 바쁘게 각자의 회사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로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며 천천히 NECA로 향했다.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에 조금 긴장도 했지만 널찍한 자리에 최신형 노트북까지 배정을 받고나니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할 것 같았던 ‘오피스’의 느낌에 심취하게 되었다. 관심이 있었던 ‘신개발유망의료기술탐색연구팀’이 아닌 ‘국제교류 Unit’에 배정을 받아 첫 회의에 참석하고 나서야 이곳이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보건의료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uroScan과 같은 국제기구의 회의에서도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신의료기술 평가 정책을 개발하기 위한 워크샵을 개최하는 등의 성과를 듣고나서, “그렇게 가볍게 올 곳이 아니었구나”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공과대학을 나와서 의사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의전원에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서 새로운 의료기술에 항상 관심를 가지고 있었고, 병원에서 보는 의료장비들을 유심히 지켜봐왔다. 졸업 후 의공학 쪽으로 진로를 정하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빈치수술’, ‘3D 프린터’와 같이 새로 나오는 기술에 대해서 남들보다 큰 흥미 가지고 있었고, 주말에 시간을 내서 KiMES 같은 의료기술 박람회에 구경을 가기도 했지만, 이런 기술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임상에 사용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엔지니어들이 기술을 개발하면 의사들이 몇 번 시험해보고 좋으면 쓰겠지”, “정부에서는 의료보험적용을 할지 정도에만 관여하지 않을까”하는 단순한 개념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NECA와 같은 기관에서 수행되는 연구를 통해효과, 위험도, 경제성 등이 평가가 되고 이 결과가 직접적으로 국가 정책을 만드는데 참고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원장님 말씀과 같이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환자를 상대로 실험을 할 수 없는 의학의 특성상 가설을 입증하는데 사용되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EBM 또는 Evidence라는 말은 자주 들어 왔다. 하지만 NECA에 오기 전 까지는 환자를 진료할 때나 의학연구를 할 때만 사용되는 개념으로만 알고 있었고, 진료지침을 개발하는 의사나 대학병원의 스탭이 아니라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보건의료정책을 세우고 나아가 입법 과정에서도 이러한 evidence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처럼 NECA에서 보고 들은 것들은 그야말로 넓은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어느덧 2주간의 인턴실습이 끝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지만, NECA에 있는 동안 보고 들은 것들은 내가 앞으로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는 데에 큰 통찰력을 갖게해준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남산의 벚꽃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의 여유가 정말 좋았고, 열심히 일한 뒤 친구들과 함께 걸은 명동, 충무로에서의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의사가 될 후배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신 임태환 원장님, 안윤옥 본부장님, 2주 동안 너무나도 따뜻하게 챙겨주신 이성규 팀장님, 조송희, 강민주, 백하나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