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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36 5월호] 보건의료이슈 :: 한국 의료 보장 체계의 맹점, 비급여




글.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정부가 주도하는 단일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한국 의료 보장 체계에서 가장 큰 맹점은 높은 비율의 비급여이다. 즉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진료비를 직접 부담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의미다. 전체 진료에서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은 최근 10년 동안 정체됐다. 급여 비율이 60~65%를 오감에 따라 비급여는 35~40%를 차지한다. 정부가 보장률을 끌어올리려고 애를 쓰지만, 고가 또는 부가적인 비급여가 올라가면서 보장률은 60% 초반에 갇혀 있다. 


비급여는 한국 의료 보장 체계에서 여러 부작용을 낳는 근원지가 되고 있다. 낮은 보장성을 파고든 것이 민간보험이다. 이른바 실손 보험을 말한다. 질병이나 상해로 발생한 의료비 중 환자가 직접 내는 금액을 보상해주는 민간 의료보험 상품이다. 2015년 초 기준으로 가입자는 2800만여명이다. 전 국민 두 명 중 한 명 이상이 가지고 있다. 환자는 본인이 내야 하는 진료비 중 10%만 내고 나머지 90%는 실손보험이 내는 식이다. 


"실손보험 가입돼 있나요?" 요즘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꼭 물어보는 말이다. 이유는 그 질문 하나로 환자가 진료비 부담을 어느 정도 느끼는지 간단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스라면, 의사 측은 "진료비 부담 걱정 덜고, 치료나 잘 해보자"는 말이 된다. 환자 측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것저것 다 해보겠다"는 뜻이 된다. 


병원은 환자 접수 기록란에 실손보험 유무를 표시해놓고, 어디까지 검사나 치료를 받으면 실손보험이 적용된다고 친절히 안내하기도 한다. 이러다 조만간 사달이 나지 싶을 정도로 실손보험을 둘러싸고 환자와 의사 간에 의료행위 과잉 조장과 영리화가 심하다. 가입 실적 올리기에 급급했던 일부 보험회사 영업 직원들도 여기에 가세해 고객 관리 차원에서 거꾸로 의료행위 남용을 부추긴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적극적인 건강 증진을 통해 의료비를 낮추려는 절박한 이유도 없다. 문제는 그렇게 들어간 진료의 상당수는 국민건강보험 속에서 이뤄져 건보 재정에서 부담하는 의료비도 덩달아 늘어난다는 점이다. 심하게 말하면 실손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이 실손보험 가입자의 과잉 진료 비용을 대주는 꼴이다.


병원비 부담 느끼는 높은 비급여, 이를 이용한 민간 보험의 무분별 실태가 현재의 건강보험 보장 체계의 모순이다. 비급여 문제 개선의 시급성이 아이로니컬 하게도 민간의 실손 보험 파행에서 더 절실하게 느끼는 형국이다. 이 문제는 정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가 건강보험료를 올려서라도 건강보험 급여 비율을 높이고 비급여를 낮추겠다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기꺼이 민간보험에 쓸 돈을 건강보험료에 지불한다. 


그런 정책의 효율성을 국민이 피부로 느끼려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죽고 사는 문제인 암 진료에서 보장성을 우선 높여야 한다고 본다. 암 진료는 환자들이 건강보험 급여 해당분의 5%만 낸다. 하지만 고가의 항암 치료가 비급여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암 치료 보장성 선진국보다 많이 뒤떨어져 있다. 진료비 5%는 허울 좋은 5%일 뿐 실제는 비급여가 많아서 절반 정도에 머문다. 


우리나라는 최근 10여년간 암 생존율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는 건강검진 활동으로 초기 암이 많이 발견된 덕이 크다. 실제 4기 암 환자의 생존율은 증가하지 않았고, 선진국보다 낮다. 최근 6년간 새로 허가받은 항암 신약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29%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62%에 한참 못 미친다. 항암 신약이 사용 허가를 받고 나서 건강보험에 급여화되기까지 OECD 국가는 8개월 걸렸으나, 우리나라는 1년 8개월 걸린다. 이런 지표들은 암 치료 보장성이 낮아 충분한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비급여를 급여화한다고 모두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의료 제도와 모순을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비급여 해소가 되려 환자에게 손해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무릎 관절경 수술하고 마무리할 때 넣어주는 유착방지제는 비급여로 환자가 부담했다. 이 경우 비용은 들지만, 환자는 유착 방지되어 좋고, 병원은 합법적인 마진이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이게 최근 급여화됐다. 그러자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병원들은 유착 방지제를 넣어줘 봐야 급여 재료대 그대로 정산되니 넣을 이유가 없어졌다. 괜히 넣었다가 삭감될 우려가 있으니 아예 하지 않는 곳도 많다. 유착방지제 투여 시 기술료나 관리료 같은 것도 없으니 병원들은 유착 방지제가 급여화되면서 쓸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이 급여화로 되려 도움을 못 받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형 의료 보장성 확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비급여를 줄여 의료비 부담을 줄이도록 해야 하지만, 정말로 효율적이고 환자 친화적인 방식을 찾아야 한다. 한국 의료 보장 체계의 최대 맹점인 비급여 문제를 혁신적인 사고로 풀어가야 한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공감 NECA>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