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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37 6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강남역 사건과 강제입원 - 영화 <날, 보러와요>




글. 양금덕 기자 (청년의사)

 


영화 <날, 보러와요> 스틸컷 ⓒ (주)파노라마엔터테인먼트


평소처럼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달려온 남자들이 강제로 강수아(강예원 분)를 차에 싣고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정신병원.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그녀는 병원에 갇혀 구타를 당하고 정체 모를 약을 먹어야 했다. 그곳에는 자유는커녕 최소한의 인권조차 없었다.


정신보건법 제24조. ‘보호자 2인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날, 보러와요>는 이 같은 법을 악용해 환자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영화 <날, 보러와요> 스틸컷 ⓒ (주)파노라마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주인공인 강수아는 그녀의 어머니 재산을 노린 의붓아버지인 강병주(지대한 분) 경찰청장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힌다. 강병주가 그의 후배인 장원장(최진호 분)에게 입원을 사주한 것이다. 병원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강수아가 가까스로 병원을 탈출했지만 그녀를 본 경찰들은 상부의 지시를 받아 다시 그녀를 그 정신병원에 보내고 마는데….


영화는 정신보건법의 허점을 이용해 누구든 타의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관심을 끌었다. 안타까운 것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됐던 장항 수심원의 사례다.


1992년 외딴섬인 유부도에 있는 장항 수심원에는 100여명이 넘는 정신질환자를 수용하고 있었다. 배를 타야만 이동할 수 있는 이곳에는 강제로 끌려온 이가 적지 않았다.


수용 당시 수시로 구타를 당하고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고 마치 동물이 사육되는 듯한 환경에 수많은 이들이 갇혀 지내야만 했다. 이 사실이 방송을 타고 알려지면서 2달 만에 폐쇄됐다.


장항 수심원처럼 극한 경우는 드물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격리하거나 강제 입원을 하는 사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정신병원(22개소)에 입원한 환자의 45%는 격리와 강박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격리실 수준도 27.2%만 양호한 수준이었다. 인격모독과 수시로 강박당하는 등 인권침해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환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지난 5월 정신건강증진법이 개정 공포됐다. 입원의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성이 있어야만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은 공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다. 사건의 원인이 조현병 때문이라는 경찰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정부가 조현병 환자에 대한 행정입원명령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한 것이다. 또 인신보호관제도, 실태파악을 위한 전수조사 등도 거론됐다. 그러면서 경찰은 정신질환자 보호관리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렇게 정부가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 환자들의 인권은 또 한 번 짓밟히고 있다.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날, 보러와요> 스틸컷 ⓒ (주)파노라마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강수아 역시 화재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는 점, 살인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오롯이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건 나남수(이상윤 분)PD뿐이었다.


이 영화와 함께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한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또다시 많은 이들이 정신질환자와 정신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마치 조현병 환자가 일반인보다 살인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할 것이라거나 정신과 의사가 의학적인 근거 없이 환자를 격리하거나 감금할거라는 등.


언론과 방송에서 비춰지는 모습은 극히 일부이거나 예외적인 사례일 수 있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사회적 불안감과 분위기는 하나를 전체로 오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사건의 진실이라는 해답이 아닌 사건의 보도라는 목적을 위해 취재를 했던 나남수가 진짜 범인을 놓아주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것처럼.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정신보건법도 어쩌면 그 본질을 잊고 방법을 위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영화 <날, 보러와요> 스틸컷 ⓒ (주)파노라마엔터테인먼트


정신보건법의 목적은 ‘정신질환의 예방과 정신질환자의 의료 및 사회복귀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정신건강증진에 이바지함’이다. 그 기본 이념은 ‘모든 정신질환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는다’이다. 우리가 정작 격리하고 감금하고 있는 것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공감 NECA>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