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19 11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빅데이터와 진실 -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글. 양금덕 기자 (청년의사)

 

20th Century Fox

 

‘지금으로부터 24분 13초 후 40대 남성이 그의 아내를 죽일 것이다.’

 

살인이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인을 미리 알 수 있다? 당연히 누구든지 시간이 되기 전에 현장으로 달려가 범인을 막거나 피하려고 할 것이다.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달한 2054년, 미래의 범죄를 예측해 ‘살인 없는 세상’을 현실로 만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가 2002년에 등장했다.

 

톰 크루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속 배경인 미국 워싱턴 D.C는 ‘범죄예방시스템’을 도입해 불의의 사고로 소중한 가족을 잃을 염려도 불안과 공포를 두려워할 일조차 없다. 범죄예방시스템은 3명의 예지자들이 본 미래의 범죄 장면을 최첨단 시스템과 연결해 디지털 영상으로 만들고, 이것을 기존의 다양한 데이터와 결부해 앞으로 범죄가 발생할 현장 등을 유추해내는 것이다. 그러면 예방수사국 요원들이 사건 발생 직전에 범인을 검거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도입 한 달 만에 D.C의 살인사건을 90%까지 감소시켜 6년간 단 한건의 살인사건도 발생하지 않는 안전지대로 만들어 줬다. 나아가 예방시스템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국민들을 자유롭고 안전한 삶을 살게 만들자는 국민 투표까지 진행되는데….

 

20th Century Fox 20th Century Fox

영화처럼 예지자들이 범인 검거에 동원되지는 않지만 국내 경찰도 범죄예측시스템인 ‘지오프로스’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tvN 드라마 <갑동이>에서도 등장한 지오프로스는 연쇄 살인범 갑동이의 모방범죄 사건 위치 데이터를 활용해 범인 위치를 예측했다. 

 

이처럼 최근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분야가 넓어져 제품광고, 정책수립, 연구 등 주변 곳곳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보건의료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대부분 개인 정보나 개인별 진료 정보라서 데이터 분석이나 활용에 제한이 있어 왔지만 최근에는 그 공개 규모나 범주가 확연히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질병별, 의료행위별 등 진료정보와 병원정보를 민간에 개방하고 학계뿐만 아니라 병원, 기업 등에도 이 데이터로 각종 연구를 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 가입자 중 100만명의 진료내역과 건강검진 결과, 거주지, 요양기관 정보 등의 표본 데이터베이스를 연구용으로 제공한다. 그 외에 식품의약품안전처, 국립보건연구원 등에서도 그들이 보유한 각종 정보의 공개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환자 개인의 신상정보 등이 노출 되지 않도록 암호화하거나 제외하는 과정은 필수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공개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도 쓰인다. 이를 테면 건보공단이 국민건강정보 DB에다가 (주)다음소프트가 보유한 소셜미디어 정보를 더해 계절이나 주기에 따라 식중독 등 질병 위험도를 알려주고 있고, 심평원은 건강보험 청구 자료와 기상청 날씨를 더해 날씨변화에 따른 질병발생 위험도를 안내하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다. 그 외에도 치매 예방과 치료를 위한 애플리케이션 ‘브레인닥터’, 유방암환자 치료를 위한 소셜네트워크 게임인 ‘알라부’ 등도 등장했다.

 

이 모든 사례들의 바탕에는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정확도가 높아져 영화에서처럼 범죄를 예방하는 순기능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범죄예방시스템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예방수사국 팀장 존 앤더튼(톰 크루즈 분) 조차 본인이 누군가를 살해한다는 예언을 접하고서야 음모가 있을 거라고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가 도망을 다니는 길목마다 눈(안구)을 통해 위치와 신분 등 정보가 드러나고 각종 시스템이 그를 쫓는다. 자신의 미래를 바꾸겠다며 피살자를 찾아 나설수록 시스템의 오류도 하나 둘 드러난다.

 

행동만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프로그램 개발자인 라마 버제스 (막스 폰 시도우 분)가 이를 악용해 범죄 장면을 조작한 사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을 체포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시스템 오류를 주장했던 대니 워트워(콜린 파렐 분)의 말대로 빅데이터는 데이터일 뿐 100% 정확성을 가질 수는 없다. 우리는 흔히 ‘데이터에 따르면’이라는 인용 문구를 써가며 주장을 뒷받침하곤 하는데 이를 100% 신뢰하거나 100% 반영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처럼 사람의 목숨과 인생을 좌우할 만한 데이터의 활용은 더욱 신중해 질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도 이같은 점을 우려, 빅데이터는 활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데이터가 가공돼 생활 곳곳에서 그 결과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만드는 것만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패턴 속에 숨겨진 소수의 패턴도 간과하지 않는 현명함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