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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28 9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누가 죽고 누가 살아야 하는가?- 영화 <마돈나>

 

 

 

 

연명치료와 안락사, 미혼모와 영아 살해

 

 

글. 신동욱 교수(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한 병원의 VIP 병동. 한 노인이 의식 없이 누워있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 10년째 누워있는 산 송장과 다름없는 환자. 그는 원래 원자력 분야에 유명하던 사람으로 이 병원의 실소유자인 회장. 이미 심장이식수술까지 받았지만, 벌써 이달에만 두 번의 심폐소생술을 받은 상태. 이식 거부 반응으로 다른 심장으로 재이식이 필요하다. 회장의 아들 상우(김영민 분)는 중국에서 심장을 구해오라고 하지만 중국에서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태. 상우에게 회장이 계속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회장이 살아 있어야 돈이 들어오기 때문. 신규 간호 조무사 해림(서영희 분)은 회장의 담당조무사가 된다. 
 

<10년째 의식 없이 누워있는 회장> ⓒ리틀빅픽처스

 

그리고 어느 하루, 금발 가발을 한 의식 불명 상태의 젊은 여자가 그 병원에 실려온다. 임신한 배를 하고서. 이 환자를 맡게 된 해림은 회장님 친척이라는데 이름이 없고, 문이 잠겨있는 병실에 배치되는 것에 의문을 가진다. 상우는 해림을 불러 사실은 무연고자임을 이야기하면서, 이 여자의 성매매 광고 명함을 내민다. 그 이름에 써있는 이름은 마돈나. 상우는 해림에게 가족을 찾아 장기 기증 동의서를 받아오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한다. 
 

<상우가 해림에게 건네는 마돈나의 명함과 돈 봉투> ⓒ리틀빅픽처스

 

거래를 받아들인 해림은 마돈나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뇌사 상태의 여자인 마돈나가 살던 사창가를 찾아가게 되고, 임신 중에도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알게 된다. 

 

 <임신한 상태에서 성매매를 하는 마돈나> ⓒ리틀빅픽처스

 

“아버지, 아버지에게 새 심장이 생길 거에요. 근데 그 심장 기증자가 임신한 여자더라고요. 아버지에게 두 생명이나 바치는 겁니다.” 
 

<아버지에게 심장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는 상우> ⓒ리틀빅픽처스

 

해림은 마돈나의 핸드폰을 통해 요양원에 전화를 하게 되고, 마돈나의 진짜 이름이 ‘미나’라는 사실과, 유일한 가족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뿐임을 확인한다. 아이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장기기증 동의서에 할머니의 지장을 받아와서 상우에게 건넨다.

 

 
<마돈나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 해림> ⓒ리틀빅픽처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마돈나와 아이에 대한 연민이 싹트고, 해림은 마돈나의 과거를 파헤친다. 할머니와 둘이 살던, 타고난 갈색머리를 검게 염색할 돈이 없어서 잉크로 머리를 염색했던 아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교를 그만둔 후 텔레마케터로 일하던 미나는 상사인 박과장으로부터 성적으로 이용당하고, 고객 명단을 빼돌리는데 이용당한다. 이후 나온 화장품 공장에서 사장 조카인 박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에 박기사를 둔기로 때리고 회사를 나온다. 사창가에 있던 미나는 복수를 벼르던 박기사 일당에게 납치되어 집단 강간을 당한 후 개천에 버려졌던 것이다.

“환자 의식 돌아온 것 같아요”

 

 
<마돈나의 동공반사를 확인하는 의사>  ⓒ리틀빅픽처스

 

해림은 상우에게 마돈나의 의식이 돌아오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마돈나와 아이를 살려보려고 한다.

해림: “의식이 돌아왔어요”
상우: “그런 적 없어”
해림: “눈동자를 움직였어요”
상우: “착각하지마”
해림: “아기를 살려주세요”
상우: “해림씨, 나도 살려보려고 했는데, 아기에게 신경 쓰면 심장에 무리가 간대”
해림: “살인이에요”
상우: “태아는 인간이 아니라서 살인죄가 성립 안돼. 어차피 누구 자식인지도 모르는 애, 태어나서도 행복할까? 그리고 혹시 알아요? 이 여자도 여기서 끝내고 싶어할지.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사람들이 있거든”
해림: “그만해요”
상우: “우리 아버지 덕분에 몇 명이 먹고 사는 줄 알아? 간병인은 아버지 덕분에 아들을 대학에 보냈어. 재활치료사는 전세금을 마련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들, 운전사, 세탁도우미, 반찬도우미, 청소부. 그뿐인 줄 알아? 한 달에 병원비만 1억이야. 그 돈으로 당신 월급도 주는 거고.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면 모두 실업자가 돼요. 이 여자 하나 없어지면 그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린다고.”

 

<해림에게 반박하는 상우> ⓒ리틀빅픽처스

위압적인 상우에 말에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는 해림. 그러다가 해림은 꿈속에서 미나를 만나게 된다.

해림: “미나씨, 왜 아기를 지우지 않았어요? 그 아기 태어날 가치가 없어.”
미나: “가치요?”
해림: “사랑해 생긴 아기가 아니잖아”
미나: “난 별로 사랑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근데 이 아기가 날 사랑해줬어요.”
해림: “난 내가 살려고 아기를 죽였어.”

 

<꿈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해림과 미나> ⓒ리틀빅픽처스


드디어 마돈나는 심장 이식을 위해 수술 장으로 옮겨진다. 탯줄을 목에 감고 있는 태아의 모습을 보던 해림은 병실로 가게 되고, 회장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한다. 마돈나의 심장을 떼어내기 위한 수술은 중단되고, 마돈나는 죽지만 아이는 무사히 태어난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해림> ⓒ리틀빅픽처스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었던 신수원 감독의 영화 <마돈나>. 이 영화는 연명치료와 안락사, 미혼모와 영아 살해라는 민감한 의료 사회적 문제들을 끄집어 낸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야 하는가?”

회장을 살리기 위해, 무연고자인 마돈나의 심장을 꺼내려는 상우. 그리고 막대한 권력 앞에서 저항하지 못하고, 동조할 수밖에 없는 의료진. 회장을 살리기 위해, 마돈나를 죽이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인가? 그러면 반대로 뱃속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회장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여 직접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해림의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보통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고들 말을 한다. 지위 고하나 경제상태와 무관하게 그러나, 당위와 달리 자원이 제한되어있는 현실에서도 정말 그럴까? 회장의 생명에는 많은 사람들의 고용이 달려있다는 상우의 말이 은연중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병원비를 낼 돈이 없을 때 가족이 데리고 가겠다고 하면 곧 돌아가실 것을 알면서도 보내주는 것이 당장 10년 전만 해도 일상적 진료였고, 보라매 병원 사건이었다. 중국에서 신장이나 간이식을 받은 사람이 2005년 기준으로 신장 205명, 간 286명이었다고 하는데, 일본이나 미국이 아닌 중국이라는 것은 경제력이 낮은 사람들의 장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는 하나의 심장을 필요로 하는,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사람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생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한정된 의료자원을 놓고 경쟁한다. 장기이식 기술은 발전했지만, 장기는 항상 희소한 자원이다. 그래서 장기이식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우선순위가 있다. 혈액형 등 기본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연령, 대기시간, 거주지역 등을 통해서 정해진다. 확률적으로 그 장기가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장기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준이겠지만, 그러면 우선순위가 낮은 사람들의 생명은 덜 가치 있는 것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해림은 과거에 인적 드문 호수에 갓난 아기와 돌을 담은 여행용 트렁크를 물에 던져 넣었다. 해림의 사연이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미혼모로서 본인이 살기 위해 아이를 죽인 것이다. 이는 명백한 범죄이며, 본질적으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마돈나와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상우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낳은 아이를 트렁크에 넣어 물에 가라앉히는 해림> ⓒ리틀빅픽처스

 

해림의 과거는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마돈나의 삶과 유사했을 것이다. 해림은 아이를 버렸고, 마돈나는 끝까지 지킨다. 해림은 꿈에서 마돈나와 조우하여 “그 아기 태어날 가치가 없어” 라고 말하지만, 마돈나는 “가치요?”라고 반문한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해림은 인공호흡기 제거라는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탄생과 교차되며, 그렇게 마돈나는 트렁크에 가두어 버렸던 아이를 목의 탯줄을 풀면서 건져 올린다.

 

<물 속에서 아이를 건져 올리는 마돈나> ⓒ리틀빅픽처스

 

영화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한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쉽게 선악의 대결 구도로 해석하고 감독이 내린 해결책에 동조하게 되겠지만, 해림이 과거에 현실적으로 내렸던 결정처럼 누가 죽고 누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현실에서는 모호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