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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29 10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유전자도 뛰어 넘는 꿈- 영화 <가타카>

 

 

 

 

글. 양금덕(청년의사 기자)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영화사

 

태어난 순간에 언제, 왜 죽을지를 알게 된다면. 그대로 그저 그렇게 순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1997년에 선보인 영화 <가타카>는 자본이나 권력이 아닌 유전인자가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는 21세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빈센트 프리맨(에단 호크 분)은 열성 유전인자를 가져 하층계급에 속한 인물이지만 이를 뛰어 넘기 위한 험난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빈센트는 자연분만으로 태어나 ‘신경계질병에 걸릴 가능성 60%, 우울증 42%, 집중력 장애 89%, 심장질환 99%, 조기사망. 예상수명 30.2년’이라는 유전검사 결과를 받는다. 만성적인 질병에 조그만 상처에도 빈센트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부모는 늘 불안해한다. 이에 부모는 둘째아이를 인공수정으로 낳기로 한다. 성(性)도 결정하고 나쁜 유전인자를 제거해서 최상의 조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빈센트는 유년시절 내내 동생 안톤 프리맨(로렌 딘 분)보다 작고, 건강하지 못해 수영내기에서도 늘 진다.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영화사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영화사

 

그런 빈센트에게도 변하지 않는 꿈이 있다. 우주여행을 하는 것이다. 사실 그의 유전적 요인을 보면 이미 항법사가 되기에는 ‘부적격’한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동생 안톤과 수영내기를 하는데 빈센트가 이기게 된다. 늘 심장이 약해 동생에게 지고 겁쟁이라는 말을 들어야했는데 그날은 오히려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는 그는 홀연히 집을 떠난다.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듯.

 

집을 떠나 그는 전국을 누비며 청소일을 한다. 근시에 키 작고 심장까지 안 좋은 빈센트에게 더 큰 일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에 청소부로 입사하고 우주선 발사 장면을 매일 지켜보던 그는 마음을 굳혔다. 항법사가 되기로.

 

방법은 우성인 사람의 유전자 증명을 사는 것. 빈센트는 사고로 다리를 쓸 수 없는, 유망한 수영선수인 제롬 유진 모로우(주드 로 분)로 신분으로 위장한다. 염색을 하고 컬러렌즈를 끼고 작은 키는 다리를 늘리는 수술을 감행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혈액 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제롬의 피를 넣은 손 지문을 가짜로 만든다.

 

결국 그는 면접날 손가락 끝 피 한 방울로 가타카에 입사한다. 제롬의 신분이 확인됐기 때문에 더 이상의 면접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미 제롬으로 변장한 빈센트는 그의 유전자만으로 ‘적격자’임이 확인된 것이다.

 

앞으로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이 가능해 질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절단해 유전체를 교정하게 하는 리보핵산(RNA)기반 인공 제한효소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genome editing)를 이용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중국의 한 연구팀이 인간 수정란(배아)에서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영화사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영화사

 

국내에서도 서울대 김진수 교수가 혈우병 환자의 소변에서 세포를 채취해 유전자를 교정, 정상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연구들이 발전되면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 변경이 가능해 질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의 바탕에는 도덕적인 논란 등이 과제로 남는다.

 

유전자 이야기를 떠나 18년 전에 나온 이 영화는 여느 SF영화와 달리 지금에 와서 봐도 전혀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주어진 삶에 대한 태도를 반성하게 만든다. 아마도 영화 속에서는 현실에서 충분히 존재하는 차별을 맞서는 모습이 주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에도 곳곳에서는 차별이 존재한다. 성별과 나이, 피부색, 신체조건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직업과 능력이 평가받는다. 이런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환경에 속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엄밀히 사기이자 범죄인 빈센트의 행동이 가엽게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피부표피를 떼 내는 고통을 감수하고 신분이 들킬새라 끊임없이 청소하고 제롬의 흔적을 남기는 빈센트. 그렇다고 한들 그는 완벽한 제롬이 될 수는 없었다. 그저 제롬인 척 연기를 하고 그의 피와 소변 등으로 유전자검사를 속여 온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살인사건에 연루돼 신분이 노출될 위기를 수차례 넘기고 결국 그는 1년간 토성계의 14번째 달인 타이탄을 탐사하기 위한 우주선에 오르게 된다. 우주선에 오르기 직전 그는 소변검사를 받고 더 이상의 제롬신세를 포기하려 하지만 연구원이 빈센트의 부적격판정을 제롬의 적격판정으로 바꿔줬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자신의 아들이 제롬을 자랑스러워한다며 부적격인 아들의 이야기를 한다. 또 그의 연인인 아이린 카시니(우마 서먼 분) 역시 그가 제롬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를 이해하고 도와준다.

 

이러한 주변 인물들의 행동은 제롬으로 살아서라도 우주로 떠나는 꿈을 이루고자하는 빈센트를 이해하게 만든다.

우주로 떠나기 전 제롬은 빈센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들의 거래에서 내가 더 이득을 많이 봤어. 나는 너에게 몸을 빌려줬지만, 너는 나에게 꿈을 빌려줬잖아.”

 

다들 안 된다고 포기하라고 할 때,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고 수영내기를 했던 빈센트처럼,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이 인상 깊은 영화 <가타카>를 한번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