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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35 4월호] 보건의료이슈 ::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 개선






글. 정연이 실장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연구개발실)



우리는 살면서 병원의 신세를 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특히 나이가 들면서 그 빈도는 더욱 잦아진다. 이렇게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 심신이 매우 취약한 상황이므로 병원에 의존하며 좀 더 안전하게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병원은 안전한 곳인가?


환자안전에 대한 관심은 의료행위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함무라비법전이나 히포크라테스 선서 등에서도 환자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기록이 있다. 최근에 환자안전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게 된 시점은 1999년 미국의학원(Institute of Medicine, IOM)의 ‘To err is human’이라는 보고서에서 의료오류로 인한 사망 내용이 일반인에게 알려지면서 부터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 병원에서 의료과실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40,000~99,000명으로 추정되며 이는 자동차 사고, 유방암 등의 사망보다 더 많아 미국 사망원인 순위 8번째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뒤이어 세계보건기구(WHO)는 2002년 세계보건기구총회에서 회원국들에게 환자안전에 대한 면밀한 관심을 기울임과 동시에 환자안전 및 보건의료 질 개선에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강화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각 국가들은 공공 또는 민간부문에서 환자안전을 위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기구를 설립하는 등 활발하게 환자안전 개선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환자안전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자료조차 구축하지 못했고 정부와 일반인들의 환자안전에 대한 관심 또한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의료과실의 발생 규모를 추정하는데 사용할 만한 실증적인 자료도 없다. 단지 의료사고의 심각성을 환기하기 위하여 미국의 자료를 우리나라의 의료 이용 자료에 적용하면 연간 약 4,500~10,000명이 의료과실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 환자안전에 괄목할 만한 변화는 지난해 통과된 환자안전법이다.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백혈병 환아의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환자안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환자안전법’ 제정으로 이어졌으며 올해 7월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환자안전법의 핵심은 오류의 재발방지이며 환자안전사고 보고·학습시스템을 구축하여 자율적인 보고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보고된 자료의 분석을 통한 예방대책이 마련되고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의료 환경은 나날이 급변하고 있다. 최신의 의료장비와 의료기술은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의료기관은 더욱 복합적으로 변화하고 상호 의존적으로 연동된 시스템과 과정은 의료과오의 기회를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 엄청난 양의 정보 증가로 인해 병원종사자들이 모든 정보를 습득하기 어렵고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지만, 짧은 시간의 교육과 훈련 후 업무에 투입되면서 오류의 가능성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질이 떨어지는 의료서비스로 인해 낭비되는 비용을 COPQ(Cost of poor quality)라고 하며 이 비용이 전체 의료비용의 25%(Crosby, 1979)를 차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러한 질 낮은 의료는 환자와 가족을 고통스럽게 할 뿐 만아니라 병원의 경영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이에 따라 병원의 경영자들이 의료의 질 관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질 향상을 중요시 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의료오류가 발생한 후 대응하고 수습하는 사후적인 방식에서 탈피하여 사전에 문제를 파악하여 예방하고 개선하는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다. 특히 환자에게 가해진 위해의 원인을 의료인 개인에게 돌리기보다 관련된 여러 요인들의 상관관계를 고려한 폭넓은 시스템적 시각을 가지고 사고에 접근하고 있다.  


James Reason은 오류가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지려면 여러 불완전한 방어층(스위스 치즈의 여러 층)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스위스 치즈모델’ 을 개발하였다. 이 모델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위험이 스위스 치즈의 모든 구멍들이 일렬로 정렬될 때 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모든 장벽에 구멍이 생기는 순간, 위험요인이 환자에게 연결되어 해를 입힐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여러 방호벽들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가 된다. 따라서 스위스 치즈모델이 의미하는 것처럼,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과정에 시스템 차원의 다각적인 장벽을 만들어 철통같은 방어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James Reason의 스위스 치즈 모델

출처: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wiss_cheese_model



환자접점의 실무자들은 경미한 사고라도 환자에게 위험이 초래되지 않도록 보고하고 의료기관의 리더들은 안전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사고의 심각성과 발생가능성을 분석하여 인적·물적 투자를 결정하되,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미국의학원(IOM, 1999)은 기존의 연구들을 검토하여 의료기관이 안전한 시스템을 설계할 때 준수하여야 할 5개 원칙을 제시하였는데, 예를 들면 환자안전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놓고 시스템 차원의 개선을 하며 프로세스를 단순화하고, 팀 단위로 훈련하며 오류의 피드백 및 학습 그리고 오류보고를 장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거나 너무 늦음을 비꼬는 속담이다. 그러나 환자안전에서는 소를 잃어버려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의료기관이나 개인을 비웃는 일도 없어야 될 것이다. 故정종현군의 약물오류 사건으로 의료계 전반의 안전에 대한 인식변화와 근본적인 대책들이 논의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러한 재발방지를 위한 철저한 노력으로 환자안전은 한걸음씩 더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김은경 외. 환자안전의 이해. 현문사. 2011.

이상일. 의료의 질과 위험관리. 한국의료QA학회. 8(1), 96-106.

Institute of Medicine.(2003). Patient safety: Achieving a new standard for care. Washington D.C,National Academy Press.

Philip B. Crosby, Quality is Free: The Art of Making Quality Certain. New York: McGraw-Hill, 1979.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공감 NECA>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