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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36 5월호] 보건의료이슈 :: 건강보험 비급여의 확산과 대응방안


 


글. 정형선 교수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비급여란 ‘건강보험이 지불해주지 않는 의료서비스(이하 ‘행위’), 의약품, 치료재료’를 가리킨다. 급여와 비급여의 구분은 건강보험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비급여에 속한 것은 보험자에게는 부담이 적을지 몰라도, 환자에게는 본인이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 대상이며, 의료제공자에게는 가격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급여(비급여) 목록표’를 고시한다. 여기에는 가격(점수) 내지 상한금액도 포함된다. 2015년 기준으로, 행위 항목 9,002건 중 652건이 비급여이고, 치료재료 26,061 품목 중 3,213건이 비급여다. 의약품은 급여 대상인 20,401 품목을 제외한 모든 허가 의약품이 비급여라고 할 수 있다.


비급여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사실은 포함 범위에 따라 천양지차다. 건강보험이 대상으로 해야 할 것만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의료와 관련된 모든 의료행위, 의약품, 치료재료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 전자가 공단의 비급여실태조사에 근거한 비급여 규모이고, 후자가 국민보건계정에서의 ‘비급여 가계재원 (HF.3.1 Out-of-pocket excluding cost-sharing)’이다. 공단 비급여실태조사의 비급여는 선택진료비, 병실차액 등 약 11-12조원으로 추정되지만 여기에 간병비, 치과보철, 한방첩약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보건계정에서의 비급여 가계부담에는 의료적 성격을 가진 것이 모두 포함되어 25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의약품과는 달리, 행위와 치료재료는 ‘네거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급여목록(네거티브 리스트)과 비급여목록(포지티브 리스트)를 동시에 가지기 때문에, 둘 중 어느 것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제공되는 행위나 치료재료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그림의 음영처리 부분). 소위 ‘임의비급여’ 논란이 그것이다.

 

행위 및 치료재료의 급여 및 비급여


출처: 정형선, 제9회 한일 의료복지 심포지엄, 2014.10.18.

 


2010년부터 의료기관은 비급여 서비스의 항목 및 가격을 책자 및 인터넷 상에 고지하도록 되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이 제도를 인지하고 있는 소비자는 5명 중 1명도 안 되며, 한 번이라도 활용해본 사람은 2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2013년부터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한국소비자원의 홈페이지에 주요 비급여 항목의 가격이 비교되어 공시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급종합병원의 6개 항목을 대상으로 했지만 차츰 대상 병원과 항목이 확대되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고려할 때 비급여 서비스의 선택을 의사와 환자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일본의 경우는 ‘혼합진료 금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비급여를 동시에 제공하면 원칙적으로 건강보험 급여조차 부정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 비급여 진료 자체를 인정해온 우리의 의료제도에서 하루아침에 이 방식을 취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비급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공공이 하지 않으면 풍선처럼 늘어나는 비급여 서비스 부담으로 건강보험제도는 황폐화될 것이다.


첫째, 환자가 비급여 서비스의 내용과 가격을 알고 비교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급여서비스를 정형화 하고 코드를 부여하여 관리해야 한다. 의료법 개정에 따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금년 10월부터 실시될 비급여 현황조사는 이를 위한 근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기존의 비급여 중에서 성형미용과 같이 의료적 성격이 약한 것 외에는 가능한 한 모든 서비스를 급여권으로 끌어들이되, 그 대신 본인부담율은 50%에서 90%까지 높게 설정할 수 있다. 4대 중증질환에 적용하고 있는 소위 ‘선별급여’ 방식을 ‘본인부담 차등제도’로 일반화하고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면내시경을 건강보험에서 급여화 하되 본인부담율은 80-90%로 높게 한다든지, 로봇수술과 같이 아직 시장 가격이 더 내려가야 할 것은 현재 시장의 최저가격에 참조가격을 설정한 뒤 건강보험은 참조가격의 10%를 지불해 주는 것이다. 의료기관별로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는 있지만 시장가격은 점차 참조가격을 향해 하향 조정되게 될 것이며 이를 모니터링해서 사후적으로 참조가격을 인하해 나가면 된다.


비급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실손의료보험이다. 전국민 건강보험 하에서 민간보험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보충적 기능에 국한된다. 현재 실손의료보험의 60-70%는 건강보험 비급여에 대한 지불이지만, 비급여인 이유가 건보재정 때문인 경우만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필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급여로 되어 있는 경우는 굳이 실손형 민간보험에서 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법정본인부담은 도덕적 해이 방지 기능도 있고 본인부담 상한액이 있기 때문에 실손보험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보험에 해로울 수 있다.


3200만 실손보험 가입자 중에서 내용을 제대로 알고 가입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상품을 만들어 파는 보험사들은 그동안 가입자 확보에만 열중했지 잘못 설계된 상품이 가져올 손해는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결국 그 피해는 보험료 인상으로 가입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작년 한 해에 실손보험을 위해서 국민들은 보험료를 7조원을 내고 보험금으로 5조원을 돌려받았다. 80% 회수율이다. 건강보험에서는 보험료 41조원을 내고 45조원을 돌려받아 110%의 회수율을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국민과 정책 당국의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공감 NECA>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