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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4 8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 이야기




   글. 신동욱(서울대학교 가정의학과 진료조교수)



이다는 남편과 성인이 된 딸, 아들과 함께 단란하게 살아가던 덴마크의 한 미용사다. 작년에 찾아온 유방암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갓 마치고, 과일을 사들고 집에 들어오면서 남편이 직장 여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다 "이제 다 나아서 재밌게 살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얼마나 된거야? 마누라         는 사투를 벌이는데 우리 엄마가 사준 소파에서 그짓을 해?"

남편 "다 나았대놓고 사투는 무슨 놈의?"

이다 "그걸 누가 알아. 계속 검사하래. 하고 또 하고

남편 "솔직히 당신 혼자만 힘든 것 아니잖아. 당인 아픈거 보는 난 편했겠어? 그런 모습 지켜         보는게 어떤건 줄 아냐고?" 

 

 

남편은 이태리에서 보자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가버리고, 이다는 과일을 주워담고는 화장대에 앉아서 대머리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태리에 있는 시댁 소유의 농장에서 결혼할 예정인 딸 애스트리드에게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다가 장애인 주차구역에 세운 것을 알고서 차를 뺴기 위해 후진을 하다가 지나가던 고급 승용차를 받게 된다. 화가 난 고급승용차의 주인이 나와서 " 이차 좀 보라구요" 라고 따지는데, 이다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다시 액셀을 밟다가 벽에 부딪히고 에어백이 터진다. 


가발이 비뚤어져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차에서 내려 사고처리를 하다가, “딸이 이태리에서 결혼을 해서 비행기를 타야한다”고 말하게 되는데, 바로 그 고급승용차의 주인은 바로 딸의 남자친구의 아버지, 즉 사돈이 될 농산물 회사의 경영자 필립이었다. 

 

공항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이태리의 한 농장까지 가는 동안,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아래 사람들을 거칠게 대하는 필립의 모습이 처음에는 비호감으로 다가온다. 


며칠간의 결혼식 준비가 한창일 때, 필립은 물에서 알몸으로 수영하는 이다를 발견하고는 걱정되어 화를 내면서 옷을 건네는데, 이를 계기로 둘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필립이 젊은 시절 아내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고 아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내재된 분노를 이해하게 된다.  





 


결혼식 준비가 한창 진행되던 날, 이다는 우연히 목을 만지다가 혹이 만져지는 느낌을 갖게 되고, 불안한 마음으로 종양내과에 예약을 잡는다. 결혼식 전날 피로연장 바깥 정원에서 둘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필립 “지금은 다 나았죠?”

이다 “모르겠어요… “치료는 끝났는데, 완치됐는지는 몰라요. 지금 전 별에 별 생각이…” 



필립은 이 장면에서 손에 키스를 하며 더 이야기를하지 못하게 한다. 



이다 “왜 나에게 잘해주지요?”

필립 “근사한 여자니까” 

이다 “아닌데”

필립 “또 아름답고”

이다 “그건 더더욱 아니고, 다 옛날 얘기죠”

필립 “아직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본인이 그렇다는 것을 몰라서 탈이지. 진심으로 당신 너무         도 아름다워” 

 






결혼식을 준비하던 도중 스스로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된 패트릭,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애스트리드. 결국 둘은 결혼을 포기하고, 이다는 딸의 슬픔을 보듬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장미꽃으로 드리워진 집에는 남편이 장미꽃을 들고 “다시 받아달라”고 서있고, 이다는 다시 남편과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실제로는 혹이 만져지지 않는다고 안심시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검사를 받아봐야 개운할 것 같아요” 라면서 검사를 받는다. 그러나 병원에서 온 검사 결과지를 뜯지 않고 가방에 집어넣는다. 그녀의 머리는 어느덧 다시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필립은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녀가 일하는 미용실로 찾아온다. 


본인은 이태리 농장으로 갈 예정이라면서, 이태리 농장으로 와달라는 그를, 이다는 “나 같은 사람하곤 안 어울려요. 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요.”라면서 내쫓아버린다. 


그러나, 결국 남편에게 우린 이제 끝난 것 같다면서 이별을 통보하고 이태리 레몬 농장으로 향하고 만다.

  

이태리에서 재회한 필립과 이다. 검사 결과지 봉투를 혼자 뜯을 용기가 없었다는 이다에게, 필립은 검사 결과지를 뜯기 전에 이다에게 고백한다.  


 

“여기에 뭐라고 써있든 당신이 와줘서 하늘을 날것만 같아요. 당신을 다시 본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네요. 가슴이 벅차요. 앞으로도 그럴거고. 당신이 곁에 있어만 준다면, 그게 10분이든 2년이든 30년이든…  키스부터 해도 될까요?” 

 

 






다소 뻔한듯한 스토리의 중년 남녀의 로맨스 영화를 흥미롭게 만든 것은, 단순히 미국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았던 수전 비에르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라거나, 이태리의 빼어난 경관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의료계에 종사하는 나에게는 암환자가 경험하는 사건들과 그들이 느끼는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 때문이었다. 


유방암 치료로 인해 유방이 변형되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여성성이 상실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다의 표정. 본인도 힘들어서 바람을 피게 되었다고 항변을 하는 남편의 모습. 갑자기 만져진 혹으로 인해 당황해 하는 이다의 모습. 스스로에 대한 자신 없음으로 사랑하는 필립을 돌려보내는 이다의 모습. 바로 이런 모습들 속에는 암환자들이 외모의 변화를 겪으면서 겪게 되는 심적 부담감, 간병 가족이 느끼는 관계적 어려움, 치료는 끝나도 계속되는 재발에 대한 걱정,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자신 없음이 녹아 있다.  

 

암에 대한 재발 여부에만 초점을 맞춘 진료, 특히 3분 진료로 정형화된 우리나라의 진료 시스템에서는 이와 같은 환자들의 개별적인 아픔과 어려움들을 어루만져 주길 바란다면 사치일지 모른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암환자와 간병 가족들이 겪는 여러 심리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몇몇 병원에는 암교육센터 등이 설립되어 암환자들에 대한 심리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가정의학, 정신종양학, 재활의학 등의 전문의들이 암환자들의 건강관리와 정상적인 가정 및 사회생활로의 복귀를 돕기 시작했다.  

 

아직도 많은 암을 다룬 영화들이 “암= 죽음”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음에 비해, 이 영화는 “암=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실제 진료실에서 보게 되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암 진단 후 오히려 삶에 감사하게 되고, 더 건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본 영화에서 이다가 자신감의 상실과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냈던 것처럼, 암 진단을 받은 모든 이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건강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런 시스템이 갖추어지기를 바래본다. 그들이 다시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