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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44 17년 제1호] 보건의료이슈 :: 난공불락의 성: 보장성 강화 정복하기



- 청년의사 [칼럼] 기고(2016.12.20.)

 


글. 이상무(보건의료근거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Pixabay


의료복지는 의식주와 더불어 인류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문제로,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 당사자들이 존재한다. 이해관계로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시발점은 환자이다.


환자의 가치가 최대한 반영될 때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풀릴 가능성을 보인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어느 한쪽, 혹은 일부 이해당사자의 입장에서 풀려고 한다면 이 실타래는 더욱 엉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국가마다 환자들에게 불평등 없이 개인의 부담을 최소화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보건의료정책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2010년 WHO 건강보고서에 제시된 보편적 의료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의 개념을 3가지 차원에서 살펴보면, 첫째가 인구집단(population), 둘째가 비용, 셋째가 서비스이다.


첫째 축인 인구집단 대상 의료보장제도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제도를 통해 전 국민 수준에 도달하였고, 이에 대한 자부심은 한때 대한민국 의료의 우수성을 표방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로 회자되어 왔다.


두 번째 비용 측면은 의료분야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공적사회적 시스템에서 얼마나 보장해줄지에 관한 것으로, 바꾸어 말하면 공적인 보장 이외에 얼마만큼의 의료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지에 관한 축이다.


OECD 데이터로 설명하면, OECD 국가보장률 평균은 80%대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65% 안팎에 머무르고 있어 이 지점에오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서에서는 보장률이 55% 이하가 되면 중대한 문제가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GDP 대비 의료비 증가율이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을 다투는 상황에서, 보장률이 65%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동안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알 수 있다.


건강보험정책에 있어서 보장성 강화는 언제나 최우선 과제로 다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65%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또 다른 차원인 어디까지 보장을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서비스 축에 있다. 지금까지는 암질환, 심혈관질환,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 등과 같이 질환별 접근방식을 선택해왔다.


그러나 질환중심의 보장성 강화정책은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고, 의료현장에서는 보장성이 강화되면 오히려 불필요한 진료가 늘어난다는 부작용 문제를 제기했다.


저개발 국가와 개발도상국들은 이 축에 대응하기 위해 필수의약품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국가는 공적인 보상의 분모를 정하고 그만큼을 보장함으로써 정부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수준은 이미 넘어섰지만, 현 시점에서 이 축의 분모를 한정지을 것이 마땅히 없다는 것과 의료시장 진입단계에서 비급여 영역으로 결정된 것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 보장성 강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근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신의료기술 중 약제는 30%, 행위는 60%정도가 새로운 비급여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건수가 그렇다는 것이지 비용은 이와 다를 것이나 비용의 데이터는 찾지 못하였다.


이렇게 서비스 축에 새로운 비급여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이에 대한 평가와 정보는 제대로 제공되고 있지 못하다.


공적 보장 체계에서 급여화 되지 못한 기술들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야 하나, 실손형 사보험이 제도적 안전장치 없이 도입됨으로써 오히려 시장에서 공급자 주도로 경쟁력을 얻어 사용이 증가할 수 있다.


서비스 축을 정복하지 않고는 비용 축을 잡을 길이 없다. 갑자기 석유가 터져 나오거나 대체 에너지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국부가 급신장을 하여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되더라도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고가의 의료기술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므로 이 축을 정복하는 길은 건강보험과 실손형 보험이 제공할 서비스의 분모를 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의학적으로 합리적이고 필요한 의료’를 보장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분모가 없다. 이 축은 전쟁터에서 결국은 보병이 한걸음 한걸음 걸어 정복하듯 투명한 과정을 거쳐 의료기술평가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용할 수 있게 제공함으로 성취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료기술평가연구를 근거로 정책결정자들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 가치 판단을 하여 분모를 정해야 한다.


어디까지가 공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제도에서 보장할 서비스인지를. 그리고 그 외의 부분은 의료공급자와 환자의 손에 맡겨야 한다. 과학적 평가와 가치 판단을 거친 충분한 정보를 주고서 말이다.


보편적 의료보장을 강조해오던 WHO가 2014년에 의료기술평가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큰 폭의 보편적 보장성 강화는 사회적이고 정책적인 리더십으로 시작되고 유지될 수 있으나, 결국 전쟁의 최종 완결은 보병이 해야 하듯 보장성 강화의 완결은 어디까지 공적, 사회적 보장을 할 것인지에 대한 분모설정의 철학을 세우고 의료기술평가연구를 통해 이루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 원문: 청년의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