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대석(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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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제정된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공식적인 약칭이 연명의료결정법이다. 이 법안의 내용 중 호스피스 관련 부분은 2017년 8월부터, 연명의료결정 관련 부분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이 입법되기까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난관을 거쳐야했고, 준비부족과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시행규칙들로 인하여 의료기관에서 적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7년 의학적 충고에 반한 퇴원(자의 퇴원)의 형태로 인공호흡기가 제거되어 환자가 사망하자, 환자 보호자와 담당의사가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보라매병원 사건’은 의료계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은 병원에서의 임종 문제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첫 번째 사건으로 우리사회에 임종문화의 새로운 규범 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도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의료계에 확산되면서, 의료진들은 방어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처럼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연명의료 관련 입법 노력은 안락사를 우려하는 종교계와 의사를 불신하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십년이 넘게 결실을 맺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보라매병원 사건과 다른 상황에서 발생한 ‘김할머니 사건’에 대한 대법원판결은 연명의료결정법의 필요성에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있으니 인공호흡기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병원의 주장과 무의미한 연명의료이기 때문에 중단해 달라는 환자 가족들의 요구가 충돌한 ‘김할머니 사건’에서 대법원은 환자 가족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최종 판결하였다.


2009년 5월 김할머니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주관기관이 되어 관련 학회 및 사회단체가 함께 연명의료결정 문제에 대해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여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보고서를 발표하였고, 이런 노력은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에 기여하였다.[각주:1]


 존엄한 죽음


어떤 죽음이 ‘존엄’한지 여부는 개인의 주관적 가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을 정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죽음을 먼저 정의하면 ’존엄한 죽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월호나 천안함 사고가 있은 뒤, 가장 많은 고통을 받는 이들은 가족의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이었다. 히말라야 등반을 하던 산악인이 실종되면 그의 시신을 찾기까지 가족들의 몸과 마음은 쉬지 못하고 산속을 헤맨다. 이에 반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임종은 가족들에 둘러싸여 눈을 감은 노인의 모습이다. 누구나 가능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삶을 마무리하길 원하고, 남은 가족들도 망자가 편안히 누워있는 모습을 확인하면 조금이나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위로받는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적용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은 육신의 측면에서 큰 고통이다. 또한 이로 인해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격리된 상태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한을 품고 죽는다’는 것은 영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임종을 표현하는 말이다. 누구나 죽음을 앞두게 되면 살면서 남에게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싶어 한다. 말기 환자들을 상담하다보면, 대부분 가까운 가족관계에서 발생한 상처에서 큰 고통을 느끼고 있다. 의식이 있고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할 때가 이런 상처를 치유하기 적절한 시기이다.[각주:2] 


마지막까지 항암제 치료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못한 암 환자들은 그 부작용으로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다 삶을 마감한다. 환자가 사망한 뒤, 대부분의 가족들은 환자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기 전에 가슴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환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잘 마무리하는 과정은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남은 유가족에게도 중요하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기기에 의존하여 임종과정을 연장하기보다, 호스피스에서 완화의료를 통해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는 환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연명의료결정 대상 질환과 의료기술


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서는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연명의료라는 논쟁이 발생할 수 있는 영역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1) 대상 질환

기저질환에 관계없이 말기 상태나 지속적 식물상태가 논의의 대상이다.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오랜 경험이 축적된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지속적 식물상태까지 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부터 법을 시행하고 있는 대만이나 2007년부터 국가지침을 제정한 일본의 경우, 말기상태로 한정해서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말기 상태 중에서도 더 제한적으로 임종기 상태로 한정하고 있다. 법이 오남용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로 반영된 결과이다.


질환 상태는 담당의와 해당분야 전문의 1인 등 2명 이상의 의사가 판단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의사 1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비해 엄격하다 보니, 소규모병원에서는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연명의료기술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4가지만 논의할 수 있다. 영양 및 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의료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승압제나 체외산소막공급(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ECMO) 등 연명의료기술은 다양해지고 있다. 또, 임종에 임박한 환자에게 어느 수준까지 검사를 하고, 항생제와 같은 통상적인 치료행위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등 법으로 세부사항을 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지속적인 의료기술 평가가 필요하다.


 연명의료결정에 사용되는 양식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의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고통 받는 기간만 연장하는 악행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의료기술적 평가와 함께 가치 판단도 중요하다.


누구의 가치관을 반영하여 결정할 것인가? 당연히 환자 본인의 자율적 의사가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연방법은 「환자자기결정법(Patient Self-Determination Act)」으로 명명되었다. 윤리 원칙으로 해설하면 ‘자율성 존중의 원칙’을 반영하자는 것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반영하기 위해 고안된 법적 양식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s)’이다. 자신이 중증 질환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을 때 연명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건강할 때 미리 사전 유언을 해두는 양식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1990년부터 연방법으로 이 서식 작성을 의무화했음에도 실제 본인 작성비율이 30%를 넘지 못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개발된 서식이 ‘연명의료계획서(physician orders for life-sustaining treatment, POLST)’이다. 이 서식은 환자가 실제로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연명의료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 작성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연명의료계획서’는 보호자에 의한 대리 작성을 허용하고 있다. 


‘심폐소생술하지 않기(do-not-resuscitate, DNR)양식’은 ‘연명의료계획서’와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영국, 호주, 캐나다 등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DNR 양식을 사용해 왔으나,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따라 법률적으로 인정되는 양식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이다. DNR 양식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문제점


우리나라에서는 서구보다 30~40년 늦게, 대만이나 일본보다도 10년 이상 늦게 법이 제정되었다. 또한 법제정 과정에서 시행령 및 시행규칙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많았고, 실제 법을 적용해야 하는 의료현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첫째, 회생 가능성이 없는 시기를 말기와 임종기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는 점이다. 말기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적용하는 기준으로, 가능한 빨리 건강보험의 지원을 받기 위해 그 기준이 포괄적이다. 임종기는 연명의료결정의 기준점으로, 오남용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병세는 말기와 임종기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의료계의 의견에도 무리하게 이를 구분한 법적용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둘째, 자기결정권을 반영하기 위하여 환자 본인의 서명이 있는 서식만 합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환자 본인이 서류를 완성하는 경우는 10%를 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환자 본인이 서류에 서명을 하지 못한 90%는 고통스러운 임종을 원한 것과 동일하게 법적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강조한 요식적 절차로 인해 오히려 자기결정권이 무시당하는 아이러니가 생기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의료진과 보호자(가족)가 함께 상의해서 결정하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원칙을 허용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평소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향을 알고 있는 가족에 의한 대리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은 환자 본인의 서명을 전제한 서류만 유효하도록 법제화하였다.


연명의료결정 문제는 의료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측면을 많이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에, 법 시행과 처벌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변화된 사회 환경을 고려하여 임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적절하게 규범화해 갈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1.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 제시. 2009 [본문으로]
  2. 허대석.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글항아리. 201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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