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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6 10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 이야기


 

 

            글 이재우 (서울대학병원 마취과 전공의)


 

 

 신드롬에 걸린, 전혀 사회화되지 않은 새내기 의사가 병원에 들어오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좌충우돌 의학 성장 드라마 ‘굿닥터’. 다소 진부한 제목과는 달리 드라마에서는 한 주에 한 케이스 정도의 빠른 전개로 새로운 환자들을 앰블런스에 싣고 등장시키며 최연소 ‘명의’에 곧 섭외될 것 같은 레지던트 1년차 주인공의 활약과 달달한 애정라인, 때로는 의료법인 민영화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화두로 던져가며 또 한번 의학드라마 붐을 이끌고 있다.

 


사실 내가 이 드라마를 눈 여겨 보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단 하나, ‘좋은 의사’라는, 대놓고 평범하거나 지나치게 교훈적인 제목 때문이었다. ‘실력도, 심성도 뛰어난 능력자 의사 한 두 명이 슈퍼맨 놀이 하는 한 편의 휴먼 드라마겠지? 저런 비현실적인 것을 보고 오니까 환자들의 기대감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굿닥터’라는 단어 자체가 의사들에게 던져주는 무언의 의무감, 그리고 그러한 의무감이 압박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퍽퍽한 의료 현실 속에서 그리 ‘good’ 하지 못했던 병원에서의 하루가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첫날부터 수술장에서 쫓겨나는 주인공                    모의 수술 중에도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박시온

 

 

드라마는 서번트 신드롬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특정 영역에서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을 보이는 자폐아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아 외과 의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성원대학교 병원에 일으키는 파장을 때로는 극적으로 때로는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유치한 듯 지나치게 바른 말투, 한쪽 어깨만 꼽추처럼 솟아있는 어색한 모습에 뭔가에 홀린 듯한 눈빛으로 종종 걸어 다니는 주인공 시온이. 자폐 성향이 강해 감정 조절에 미숙하고 수술장에서 응급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여 주저앉는가 하면, 복사기처럼 한번 본 내용은 그대로 암기해버리는 능력으로 누구보다 의학지식에 있어 앞서 있으며, 이차원 영상을 삼차원으로 재구성해는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 영상 판독은 물론 수술 field 에서 해부학 구조를 찾아내는 데 교수들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동네 친구들은 물론 친아버지에게까지 학대 받고 자란 탓에 전혀 다듬어지지 못한 시온이의 행동 양태는 동료들과 환자들에게 큰 민폐를 끼치기 일수였고 결국 의국에서 뿐 아니라 병동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무시당하곤 한다. 그런 그를 늘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소아 외과 펠로우 차윤서. 병원에서는 ‘누가 요구르트에 빨대만 꼽아줘도 눈이 맞는다’ 는 오랜 속담이 있다. 그만큼 이해 받고 배려 받기 힘든 곳이거늘, 이처럼 미모의 여 선배가 막강한 지원 사격을 해주는데 박시온 선생이 그녀를 사모할 수 밖에. 선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가면서 주인공은 한 남자로 그리고 어른으로, 의사로 성숙해나간다. 그리고 그런 그의 가능성을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김도한 교수의 엄하지만 사랑 가득한 가르침 속에서 주인공은 조금씩 그가 꿈꿔온 서전으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가게 된다. 
 


무엇보다도 드라마는 ‘정말 좋은 의사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대놓고, 모두에게 던지고 있다. 일방적으로 주인공을 돕는 역할이었던 선배와 교수들까지도 환자를 위하는 마음과 뛰어난 의학적 능력을 가진, 그러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같이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모두를 곤란하게 만드는 주인공 박시온을 접하며, 잊고 지냈던 의사 본연의 모습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폭력과 불화로 가득한 가정에서 자라 일찍이 형을 잃고 엄마 마저 집을 나간 주인공은 물론, 그를 도와주기만 해야 될 것 같았던 선배 의사들도 알고 보면 연애와 인생 그리고 의사로서의 사명감, 초심, 능력이라는 면에서 모두 조금씩은 병들어 있는 환자들이었다. 쉴 새 없이 병원 일만 하다가 기념일을 챙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며 휴가를 가서도 늘 긴장한 상태로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랜 연인과 멀어지는 김도한 교수, 능력이 부족해 언제부터인가 힘든 환자는 수술을 거부하고 이사장을 꿈꾸는 매형에게 붙어 비열한 권력 싸움에만 혈안이 되었던 고충만 과장, 좋지 못한 의대 성적임에도 과장의 배려로 최고 대학병원에 입성했지만 원하는 만큼 훌륭한 서전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늘 어딘지 모르게 비뚤어져 있는 우일규 선배 등등 주요 등장 인물들 대다수가 알고 보면 주인공의 장애만큼은 아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삶의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굳은 살을 보며 수술을 결심하는 과장                            든든한 지원군 차윤서 선배 

 

 

이 드라마는 표면적으로는 서번트 신드롬이라는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다양한 문제들로 나름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의사들의 모습과, 그들이 자신의 삶을 치료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정말 좋은 의사의 모습이 무엇일까 되묻고 있다. 어쩌면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기막힌 암기력과 초능력에 가까운 3D 투시 능력으로 환자를 살려내는 비현실적인 의료 행위 자체보다도, 장애를 딛고 일어서며 꿈을 이뤄내는 인간 박시온의 모습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때로는 한없이 따뜻한, 한 여자의 남자이자 한 후배의 선배로서의 김도한 교수에게 깊이 감동하며, 자신의 굳은 살을 훌륭한 서전의 징표로서 존경해 마지 않는 주인공 박시온 때문에 어려운 수술의 집도를 맡아 결국 환자를 살려내는 고충만 과장의 변모된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요건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의사가 가장 좋은 의사인지에 대한 답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우리는 그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드라마 ‘굿닥터’가 가장 의미 있었던 점 중 하나는 ‘정말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가’ 라는 불편한 질문이 결국에는 과연 나는 좋은 의사이기 전에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들이며 좋은 친구, 좋은 동료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해주었다는 점이었다. 아니, 어쩌면 ‘좋은 의사’ 라는 말 자체가 사실 그렇게 여러 질문들을 함축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그 드라마 제목이 나에겐 그렇게 불편했는지도 모른다.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흔히 그런 말을 한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 분야를 깊이 판 사람들일수록 자기 분야만 익히기에도 벅찬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평균 이하의 교육을 받아왔는지도 모른다. 나만해도 고작 의대에 들어와 의사로서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모르는 게 못해본 게 얼마나 많으며, 당직과 시험 그리고 환자를 핑계로 지금껏 어쩌면 대다수의 남들은 당연히 하고 살아야 했을 일들에서 얼마나 자주 면제되었는가?  그러다 보니 자칫 눈을 돌려보면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직장 밖에서의 내 인생과, 그 인생을 믿고 따라와준 가족들에게 본의 아니게 희생을 요구해야만 하는 상황도 자주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와서 고백하건대, 지방에 계신 어머니가 교통 사고로 그 쪽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셨을 때 나는 당시 응급실 당직 인턴이라 찾아 뵐 수 없었던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당시 내가 당연히 병원에서 못 나올 것을 아시고서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연락하셨던들 과연 나는 그곳으로 바로 달려갈 수 있었을까? 결국 그 날 멀쩡한 의사 자식을 둔 어머니가 정작 응급실 차트에 의지할 곳 없는 노인으로 분류되었던 일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가슴 아픈 기억이 되고야 말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삶 역시 그랬을 것이다. 숨가쁜 병원 생활을 그린 의학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보듯 그 주변 인물들의 크고 작은 삶의 문제들을 바라보며 어쩌면 우리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 박시온 보다도 이미 더 많은 것을 남들에게 빚지고 요구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이 ‘굿닥터’인 드라마를 보면서 내 머리 속을 맴돌던 생각들은 주로 이런 류의 내 인생에 대한 의심과 점검 그리고 주변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었다.

 


좋은 장사꾼은 남을 속이지 않으면서도 이윤을 남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자동차 수리공은 고장 난 자동차를 잘 고쳐내는 사람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좋은 의사가 무엇보다도 환자의 병을   헌신적으로 잘 치료해내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대상이 사람인지라, 물건이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직업 이상의 사회적, 윤리적 책임이 요구됨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거창한 수식어의 대상이, 비단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바로 나와, 내 주변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의사가 해야 할 가장 값지고 기본적인 의료 행위임을 너무나 쉽게 잊고 지내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좋은 의사’란 애초에 ‘좋은 사람’, ‘건강한 직업인’의 또 다른 이름 중 하나 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좋은 의사’가 되라는 말은 사실 그렇게 유별나게 특수하거나 외로운 주문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 삶이라면, 다른 직업을 가지고 또 다른 곳에서 인생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삶과 결국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TV 드라마 제목 하나 가지고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오늘부터 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 먼저 찾아봐야겠다. 일단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단체로 애교 가득한 문자나 하나 보내고 시작해볼까?  -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