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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NECA/언론보도

[청년의사] [칼럼] 터무니 있는 정책 위한 의학과 비평

[청년의사] [칼럼] 터무니 있는 정책 위한 의학과 비평

 

2016년 5월부터 의학전문지 청년의사에 월 2회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칼럼을 게재합니다.

원문보기 ☞  http://www.docdocdoc.co.kr/202331

 

 

NECA의 터무니 있는 이야기

-이상무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문학을 우리나라에 뿌리내린 대표적 소설가 염상섭은 1921년 개벽(開闢)지에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라는 소설을 쓰며 작가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는 청개구리 해부과정에 대한 ‘김이 모락모락’ 난다는 묘사에 대해 비과학적 묘사임을 지적하며 ’비실증적 안이한 제작 태도’라고 비평한다. 개구리는 양서류로서 변온동물이고 외계의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므로 포유류와 같은 정온동물과는 달라 해부할 때 김이 모락모락 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이 문학 활동에는 흔히 ‘문학 비평’이 존재한다. 그럼 의학 분야는 어떨까? 의학의 발전 과정에서도 문학의 창작활동에 해당되는 수많은 발견이 이루어져 왔고, 비평에 해당되는 반론들을 제기하는 과정을 통해 의학은 학문적으로 완성되어 왔다. 이러한 과정은 주로 동료의학자들의 학술적 검토활동으로 이루어졌고, 임상연구 방법론들의 발달과 체계적 문헌고찰 방법론의 적용, 의료기술평가의 활동 등을 통해 더 체계화됐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내용들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퍼지며 일반인들을 현혹시키거나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SCI급 학술지에 게재되어 치료법을 인정받았다’거나 일부 환자들의 말을 빌려 치료법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간증’식이거나, 실험실 연구 결과를 실제 환자에게 적용한 결과인 것처럼 표현하는 경우 등이 그 예이다.

 

특정 치료에 따른 효과를 증명하려면, 즉 치료와 개선된 효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려면 치료하기 전과 후를 단순히 비교한 통계적 수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치료와 무관하게 자연적으로 환자의 상태가 개선될 수도 있고, 통증과 같이 효과의 측정이 주관적인 경우 어떤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환자가 개선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를 ‘위약효과’라고 한다. 또한 일부 환자들에게 실제 효과가 있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을 동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새로운 치료법의 검증은 충분한 수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효과와 위해 발생 여부에 대한 관찰을 해야 하며, 동시에 이러한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들과 비교 관찰하여 ‘득과 실’을 따져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럼 논문을 통한 동료의학자들의 심사를 받은 치료는 효과를 인정받은 것인가? 교통사고와 같은 외상성 뇌 손상환자들에서 스테로이드 주사가 뇌의 부종을 줄이고, 사망률을 줄인다는 후향적 관찰연구를 기반으로 의료현장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상당기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 치료법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1999년부터 2만 명의 환자의 참여를 목표로 무작위배정 비교임상연구가 시작되었고, 2004년 목표의 반인 만 명 정도 참가했을 때 연구가 중단됐다. 중단된 사유는 예상을 뒤엎고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군에서 사망자가 더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보다 더 잘 설계된 양질의 연구에 의해 결과가 뒤집힌 순간이었다.

 

이같이 의학적 근거에는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의학적 근거의 수준을 나타내는 근거 피라미드는 다음 그림과 같다.

 

이 피라미드 그림의 2단계 이하의 연구들은 관찰된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리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기 때문에 근거의 활용 수준이 제한적이다. 반면 양질의 대규모 다기관 무작위배정 비교임상시험을 통해 산출된 근거이거나 이런 근거들을 바탕으로 수행된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결과라면 이득과 위해를 저울질하여 종합적으로 근거의 유무를 제시함으로 근거 피라미드의 제일 상위에 위치하게 된다. 물론 이 피라미드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제대로 계획되지 않았거나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무작위배정 비교임상시험이 잘 계획되고 수행된 비교관찰연구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므로 개개 연구들에 대한 비평적 평가가 필요하다.

 

선진 각국에서는 이런 ‘의학비평’에 해당되는 활동들이 민간 차원 또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민간 학문적 차원에서 코크란 그룹의 자발적 체계적 문헌고찰과 국가적 차원에서 미국의 AHRQ, 영국의 NETSCC와 NICE, 프랑스의 HAS, 및 캐나다의 CADTH 등과 같은 정부산하 기관들의 의료기술평가 활동이 그 예이다. 우리나라도 민간 차원에서 2009년 코크란 한국지부의 활동이 시작됐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2007년 이후 신의료기술평가제도의 도입 및 2008년 12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설립으로 이러한 의료기술평가연구의 장이 열려 국민들에게 양질의 평가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을 우리는 흔히 ‘터무니없다’고 표현한다. 어떤 치료법을 먼저 받아들이거나 개발한 연구자들의 열정은 의학 발전의 원동력이므로 존중되어야 하나, 이러한 열정이 때로는 주관적으로 흐를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연구들에 대한 건강한 비평은 객관적인 근거 생산에 기여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터무니 있는’ 보건의료정책은 국민들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효율적인 재원배분의 근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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