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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18 10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진실게임 -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글. 양금덕 기자 (청년의사)

ⓒsbs

 

학창시절 MT를 가면 꼭 한번 씩은 해본다는 진실게임(true or dare).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자가 한명을 지목해 질문을 한다. 만약 답을 못할 경우 참석자들이 정한 벌칙을 받게 되고 다른 이에게 질문할 자격을 잃는다.

 

차마 말 못할 예민한 질문을 할수록 분위기는 진지해지고 진실과 벌칙 사이에서의 고민해야 하는 짜릿함도 맛볼 수 있다. 단순할 것 같은 이 게임은 성인이 된 뒤에도 워크숍 등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다들 ‘괜사’라 부른다) 또한 한 편의 진실게임 같다. 숨겨왔던 속내를 털어놓고 이해와 공감을 하듯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숨김없이 서로를 대하고, 그들이 가진 상처나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서로가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정신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괜사’는 병원을 주 배경으로 하는 기존 의학드라마와 다른 점이 많다. 카페, 방송국, 집 등 다양한 장소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물론이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죄수, 주부, 작가, 의사, 사업가, 학생 등 다양하다. 의사들의 성공을 향한 살벌한 경쟁 대신 다양한 이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처가 때론 상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심할 경우 정신질환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주인공인 장재열(조인성 분)은 인기 추리소설 작가이면서 어릴 적 사고 후유증으로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그의 연인이자 정신과 펠로우 1년차인 지해수(공효진 분)도 어릴 적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이후 불안장애가 생겼다.

 

해수의 룸메이트인 박수광(이광수 분)은 부모의 무지로 틱 증상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투렛증후군(특별한 이유 없이 얼굴, 목 등 신체를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틱 증상이 심화된 질병)으로 악화됐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이해하는 가족과 친구, 동료가 있다. 극중 정신과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오히려 그들은 환자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때로는 그들의 상처도 치유 받는다.

 

해수가 어릴 적 엄마인 해수모(김미경 분)가 아빠의 친구인 김 사장과 키스하는 장면을 본 이후, 스킨십을 못하는 불안장애가 있지만 재열과 만나면서 극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sbs ⓒsbs

 

수광이 갑작스레 머리를 때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투렛증후군 증상을 보였을 때도 ‘또라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이들에게 ‘내 친구, 또라이가 아니라 투렛증후군야’라며 감싸주는 이들도 있다. 화장실에서만 잠을 자는 재열은 해수에게 어릴 적 계부에게 폭행을 당할 때 유일한 대피처가 된 화장실 사연을 털어놓기도 한다.

 

재열이 조현병을 앓아 한강우(도경수 분)라는 환시를 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절친인 양태용(대항호 분)과 정신과의사 조동민(성동일 분), 해수 등 다수가 가슴 아파한다.

 

물론 극 중에서 보여지는 조현병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치료약 부작용으로 입이 마르거나 졸리기는 하지만 환시보다는 환청이 주로 나타나고, 사회적 기능도 많이 떨어져 재열처럼 3년간 아무렇지 않게 사회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다. 
 
재열의 형인 재범(양익준 분)을 최면상태로 만들어 과거 기억을 떠올리게 할 때 쓰인 ‘아미탈소디움’이라는 약물이 진실의 약이라는 건 과장이다. 최면학회서 아미탈 인터뷰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다 말한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정신과 레지던트가 인턴을 구박하면서 머리를 때린다거나 환자에게 고함을 치면서 공격적으로 대한다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좀 멀긴 하다.

 

그러나 정신질환이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우리 모두 환자라는 점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은 전염병보다 무서운 질병처럼 여겨 감추고 피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재열이 라디오 방송 중에 “감기를 앓듯 마음의 병은 수시로 온다”고 말한 것처럼 정신질환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한두 번 게임을 통해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곤 하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보듬어 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함을 전달하고 있다.

 

여기에 잘 생긴 조인성과 신비한 매력을 지닌 공효진,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 조연들까지 더해져 괜사 열풍을 불러왔다. 그것은 보는 이들에게 정신질환에 대한 낯설음 대신 공감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으로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괜사 속 인물처럼 공감과 이해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를 마음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한 정신질환자의 고백이 떠오르는 날이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보다 사람들이 날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가장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