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욱 교수(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암건강증진센터)
2014년도 개봉된 장 마크 발레 감독의 ‘댈러스 바이어스클럽(Dallas Buyers Club)’은 죽음을 앞둔 에이즈 환자가 신약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심리, 허가되지 않은 약을 사용할 권리를 위하여 FDA와 투쟁하는 과정, 그리고 개인적으로 동성애 및 HIV감염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과정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은 매튜 맥커너히의 명연기를 통해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실제로 1985년에 에이즈에 걸린 론 우드루프라고 하는 실존 인물이 1987년 미국에서 허가되지 않은 약물을 회원제로 판매하는 Dallas Buyers Club을 설립하고, 미국 FDA와 제약회사에 맞서 '에이즈에 관한 자율 처방 권리'를 주장했던 실화를 담은 영화이다.
1985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주인공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 분)은 마약과 자유분방한 섹스, 그리고 로데오 경기를 좋아하는 전기 기술자이다. 어느 날 작업 도중 감전사고가 나 병원에 실려 갔는데 뜻밖에 HIV에 감염된 에이즈 환자임을 알게 되고, 이미 말기 상황으로 앞으로 한 달밖에 살수 없다는 선고를 듣는다.
<본인이 HIV에 감염된 사실을 듣고 부정하는 Ron> ⓒVoltage Pictures
론은 동성애자나 걸리는 병인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리가 없다면서 본인이 에이즈 환자라는 것을 처음엔 부정하지만, 동성애를 하지 않더라도 HIV에 감염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HIV감염을 받아들이고 좌절하는 Ron> ⓒVoltage Pictures
몸 상태가 점차 악화되고 있던 론은, 에이즈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AZT라는 약을 알게 된다. AZT의 임상시험에 참여하고자 하지만, 절반의 환자는 가짜약(위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 직원을 매수하여 뒷거래로 구해서 복용한다. 그러나 큰 효과 없이 병은 점점 악화되고, 그나마 약을 더 구할 수도 없게 된다. 이때 그간 약을 대어 주던 직원의 소개로 멕시코의 의사를 찾아간다.
<병원 직원을 통해 AZT를 몰래 빼돌려 구입해 먹는 Ron> ⓒVoltage Pictures
멕시코에서 론은 펩타이드T와 ddC, 비타민과 알로에 등 다른 약물과 건강보조식품 처방을 받고 기적적으로 상태가 호전된다. 이에 론은 이들 약물을 밀수하여 월 400불의 회비를 받고 다른 에이즈 환자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Dallas Buyers Club. 클럽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창한다.
<Ron이 판매하는 약물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Voltage Pictures
그러나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 FDA(식약처)가 론의 활동을 제지하고, 모든 ‘불법’ 약물을 수거해 간다. “각종 논문과 다른 나라의 의학저널이 이 약의 안전성을 입증한다. 제약회사만 보호하지 말고 내가 가져온 이 자료들을 검토해달라"는 론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Ron의 Dallas Buyers Club의 약품들을 압수하는 당국> ⓒVoltage Pictures
생존을 위해 벌이는 론과 FDA의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진다. 거대 제약사와 FDA를 상대로 한 소송은 기각되지만 판사는 "약자를 무시하고 안전한 약물도 인정하지 않는 이기적인 FDA의 정책에 본 법정은 불쾌하다"는 말을 남긴다.
<FDA의 설명회에서 항의하면서 자신의 치료법을 알리는 Ron> ⓒVoltage Pictures
이 영화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자신과 동료 환자들의 생존을 위해 애쓰는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HIV 감염자에 대한 편견을 극복해가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서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무작위 배정 위약 임상시험은 환자를 실험용 쥐로 보는 비윤리적인 행위인가?
불치병 또는 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이 아직 효과가 검증되지 않는 약을 구하여 먹는 것은 규제되어야 하는가?
FDA는 정말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 효과가 없는 치료제를 허가해주는 것일까?
왜 론은 AZT에는 효과가 없고 Peptide T와 ddC에 효과를 보였을까?
불치병 또는 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치료법은 모두 해보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말기 암환자들 중 다수는 실제로는 본인에게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5-10%밖에 되지 않고, 상당한 독성이 있을 수 있는 항암신약에 대한 1상 임상시험(Phase I clinical trial)에 참여해보고 싶어한다. 의료윤리적인 측면에서 어떤 학자들은 과연 말기 환자들이 헛된 희망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그들이 임상시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제인 글리벡의 사례에서 보듯, 한때 난치병이었던 병들이 만성질환으로 바뀌는 것도 바로 이런 임상시험을 거쳐 얻어낸 결과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효과 없이 나쁜 약’으로 묘사된 AZT(azidothymidine, zidobudine)은 누클레오시드유사체역전사효소억제제(nucleoside analogue 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 NRTIs)중 최초로 개발된 약물로서, 현재도 가장 기본적인 에이즈의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약물이다. 이 약은 HIV 바이러스가 증식하는데 필요한 역전사효소가 작용하지 못하도록 저해함으로써 항 HIV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이다. 론이 AIDS감염을 알게 된 1985년으로부터 2년 지난 1987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의학잡지인 미국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는 AZT의 효과에 대한 연구 논문이 실렸는데, AZT를 사용한 군에서 위약(placebo)를 사용한 약제에 비해서 사망률과 기회감염(면역력이 약해진 환자들에게 생기는 감염 – 면역이 정상인 사람들에게는 생기지 않음)을 줄일 수 있었다는 연구결과였다.
<NEJM에 실린 AZT의 효과성에 대한 논문>
이 연구에서 아래 그래프를 보면, 세모 (▲)는 가짜약을 받은 그룹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망률이 증가하여 24주가 지난 후에는 대략 0.6 (60%)의 환자들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반면 원(●)은 AZT를 투여 받은 그룹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찬가지로 사망률이 증가하지만 24주정도가 되어도 0.4 (40%)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AZT를 복용한다고 해서 모두가 호전되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는 AZT를 복용한 사람들이 더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길이 막히는데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어떤 직장에 들어가야 자아 실현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행복할지? 등 세상의 대부분의 결정에는 불확실성이 따르고, 따라서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듯이 의학적 결정도 확률에 의해 이루어진다.
<AZT와 위약의 효과>
론은 영화에서 AZT를 복용하고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데, 그래프로 치면 약을 투여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이 발생할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위의 임상시험이 보여주는 바는 불특정 다수들이 복용을 해보았다면, AZT로 인해서 효과를 보고 더 오래 사는 사람도 많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사람들마다 효과가 달랐던 것이다.
반면 이 영화에서 론이 효과를 본 것으로 나오는 ddC(Zalcitabine, dideoxycytidine)과 Peptitide T는 실제로 어땠을까? ddC는 AZT와 같은 원리를 가진 뉴클레오시드역전사효소 억제제로 이후 FDA에서 허가를 받았지만, 다른 약물들에 비하여 효과가 약하고 하루 세 번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 그리고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하여 현재는 HIV치료제로 거의 쓰이지 않고 많은 나라들에서는 이미 퇴출이 되었다 (Wikipedia). Peptide T는 실제 연구에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Heseltine PN et al, 1998), FDA의 승인을 받지도 못했으며, 현재 누구도 쓰지 않고 있는 약이다.
어떤 약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 무작위 배정으로 위약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료실에서는 “누가 무슨 약을 먹어봤는데 효과가 있더라”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인체는 기계와 달리 사람마다 효과나 부작용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무작위로 배정된 두 집단에게 약을 주어보고, 어느 집단이 평균적으로 더 나은 효과를 보이는지를 보는 것이 현대 의학에서는 효과성을 검증하는 표준이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 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론의 ‘Dallas Buyers Club’ 활동으로 AZT대신 ddC와 peptide T를 구해먹었다면 확률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효과 없는 치료를 받았을 것이고, 병이 악화되고 죽었을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영화에서 보듯 론은 Dallas Buyers Club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도 말기 암환자 등 절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효과가 없는 치료들에 대해 ‘치료 경험담’, ‘완치 사례’ 와 같은 말로 현혹하고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많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FDA(식약처)와 같은 기관을 통해서 약물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만 허가를 내주는 절차를 가지고 있다. 제약회사는 FDA가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기 위하여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통상적으로는 8억달러(약 1조)원과 10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 신약을 사용해볼 수 없는 환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이 없이 약을 자유롭게 허가해주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임산부들이 입덧을 줄이기 위해 사용했던 Thalidomide인데 이후 팔다리가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
<Thalidomide의 부작용 사례>
AZT는 단독으로는 효과도 낮은 편이었고 처음에 시도한 용량은 부작용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내성 바이러스의 출현을 막기 위하여 AZT를 기반으로 다른 약제들을 추가하는 칵테일 요법(HAART)이라고 불리는 복합치료가 생기면서 에이즈의 치료 성적은 현저하게 발전하여, 현재는 약물을 계속 투여하면 일반인들과 거의 같은 수명 동안 살 수 있게 되어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처럼 되었다. 아래 그림에서 복합요법의 사용(파란선)이 증가함에 따라 사망이 급격히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론의 투쟁을 영웅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론의 요법은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 HIV감염 치료의 발전은 제약회사들의 연구 개발과 FDA의 검토 및 승인에 기반한 발전이라 볼수 있을 것이다.
<HIV에 대한 HAART 요법의 사용과 사망률 추이>
당시엔 지금 알고 있는 지식들이 생기기 전이었고, 현재처럼 과학적 방법론이 잘 정립되지도 않았던 시대였다. 죽음을 앞두고 본인이 효과를 본 치료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던 론의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조금 더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그가 최선의 치료법으로 믿었던 치료법은 사실 그렇지 않았으며, 그의 노력은 더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어쩌면 더 많은 죽음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론을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제도와 맞서는 사람으로, FDA와 제약회사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규제와 로비를 하는 것으로 그린 이 영화의 시선은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참고문헌>
Heseltine PN, et al.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trial of peptide T for HIV-associated cognitive impairment.Arch Neurol. 1998 Jan;55(1):41-51.
Fischl MA, et al. The Efficacy of Azidothymidine (AZT) in the Treatment of Patients with AIDS and AIDS-Related Complex. N Engl J Med 1987; 317:185-191.
Wikepedia.
Matthews D. What ‘Dallas Buyers Club’ got wrong about the AIDSCrisis.Washington Post.2013 Dec.
Hannaford A. Dallas Buyers Club: The not-so-straightTruth. Telegraph. 2014. Feb.
오명돈. HIV 감염증의 치료. J Korean Med Assoc 2007:50(4);316-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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