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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34 3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장기, 이식과 매매 그리고 우리 -영화 <공모자들>-





글. 양금덕 기자 (청년의사)

 

 

영화 <공모자들> 스틸컷 ⓒ(주)영화사 채움

 

신장 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인 병든 아버지를 둔 딸. 수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녀는 갑자기 수술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일방적으로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이번에도 수술 못하면 우리 아버지 어떻게 해요. 무슨 말이라도 해주세요”라며 매달려보지만 의료진은 외면한다. 애원하는 그녀에게 원무과장은 혼잣말로 “성의표시라도 했어야지”라고 말한다.


영화 <공모자들>의 주인공 유리(조윤희 분)는 이렇게 아버지의 마지막 신장이식 수술 기회를 잃고 강제 퇴원을 당하게 된다. 화장실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벽에 붙어있는 장기매매 광고. 결국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장기매매상을 찾아간다.


이 영화는 병든 아버지의 장기이식을 위해 중국으로 떠나는 유리를 둘러싼 불법 장기매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와 수술을 위해 중국 웨이하이행 여객선에 탑승하고, 그곳에는 불법 장기매매를 위해 납치와 장기적출을 공모한 범죄조직도 함께 한다.


영화 <공모자들> 스틸컷 ⓒ (주)영화사 채움영화 <공모자들> 스틸컷 ⓒ (주)영화사 채움


아이러니하게 장기밀매를 지휘하는 주범은 유리를 염모해 온 영규(임창정 분)다. 영규가 납치 할 타깃은 그와 3년 전 함께 장기밀매를 시도하다 사고로 숨진 동료의 여동생인 채희(정지윤 분)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불법 장기매매는 결국 모두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다.


이 영화는 2009년 실제 중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장기매매로 희생된 부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살기 위해 장기가 필요한 부유층과 먹고 살기위해 장기를 팔려는 이들, 이들의 심리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브로커가 등장하는 것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암암리에 불법 장기매매가 이뤄지고 있고 이 가운데 납치, 입양, 살해 등 피해가 발생한다.


영화는 채희를 장기적출의 타깃으로 넘긴 남편 상호(최다니엘 분)와 서류를 조작하고 납치를 지휘하는 영규, 운반책 준식(조달환 분), 장기를 적출하는 출장외과의 경재(오달수 분) 등 각 역할을 나눈 치밀한 범죄의 모습을 그리며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물론 영화가 모든 진실을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영화 속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이처럼 장기매매가 여전히 뿌리 뽑히지 않는 것은 국내 장기기증이 활성화되지 않아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뇌사자 발굴이나 장기기증은 그 수를 따라가지 못한다. 국내 뇌사자 수가 500명 정도인데 이들이 기증할 수 있는 장기의 수는 신장 1000개, 간 500~600개 정도다.

 

영화 <공모자들> 스틸컷 ⓒ (주)영화사 채움

 

때문에 지난해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 수는 1,961명에 그친다(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자료). 2000년 231명과 비교하면 매년 그 수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장기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는 수도 이식자의 10배가 넘는 2만151명 수준이다.


더욱이 장기이식은 수술을 할 때까지 평균 1,122일이 걸리는 등 대기시간이 길다. 짧게는 1년이지만 길게는 7년 이상이 걸리기도 하다 보니 그야말로 기다리다 죽는 환자도 적지 않다. 실제로 같은 증상으로 이식을 기다리던 두 명의 환자 중 한명만 장기 수혜를 받아 건강을 회복하고 다른 이는 사망하는 사례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돈을 주고서라도 장기 이식을 받으려는 이들이 있는데 당연히 불법이다. 이식 수술을 받으려면 KONOS의 승인을 받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장기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했을 테다.


현재 국내 의료기관에서는 잠재 뇌사자를 발굴해 관리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완전 뇌사자로 진단되면 신경계 치료보다는 장기치료를 해 실제 장기기증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뇌사자 발굴 건수에 비해 실제 장기기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1/3에 불과하다. 


한 의료진은 “장기를 받고는 싶어하면서도 기증을 하겠다는 생각들은 안한다”며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보는 사회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제아무리 의술이 발달해도 의료진의, 환자의, 환자 가족의 동의와 참여가 없이는 장기기증 활성화는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결국에는 제2의 유리가, 제2의 채희가 나타나고 이를 노리는 제3의 상호와 영규가 등장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기적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생명을 나눈다는 것은 새 생명을 받는 기적이 된다. 장기, 인체조직, 조혈모, 혈액 등의 생명 나눔은 질병치료의 한계를 뛰어넘어 수혜자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심부전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극적으로 심장이식을 받은 한 여성은 말했다. “세상에 많은 영웅이 있지만 생명을 나눠주신 가족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