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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35 4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알파 닥(Alpha Doc)이 환자의 감정까지 다룰 수 있을까? -영화 <그녀 (Her)>








글. 신동욱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최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와 이세돌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4:1로 승리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와 함께 2013년 개봉된 영화 한편이 새로이 조명되고 있는데, 보건 의료와는 직접 관련된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를 통해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의 의료의 모습을 상상해보고자 한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 (Her)’는 아카데미 각본상 및 골든글로브 각본상 등을 휩쓸면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영화 her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주인공 시어도어(호아킨 피닉스 분)는 아날로그 편지를 대필해주는 작가이다. 다른 사람들의 연애 편지를 대신 써서 예쁜 편지지에 손글씨로 프린트하여 발송해주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어두운 방에서 혼자 3D 게임을 하거나 음성채팅을 하면서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한 때 사랑하던 아내와 별거 중이며, 이혼서류에 사인하기를 미루고 있는 상태이다. 


홀로그램 오락으로 공허함을 달래고 있는 시어도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시어도어는 어느 날 우연히 광고를 보고 ‘완전한 인격체’라고 선전하는 새 컴퓨터 운영체제(OS1)를 구매하여 설치하게 된다. 이 운영체제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스스로 학습을 통해 진화할 수 있다. 

 

OS1과의 첫 만남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OS1: 시어도어 트웜블리 선생님, 저희 회사의 세계 최초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 입니다. 운영체제를 가동하기 전에 먼저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 당신께 딱 맞는 운영체제로 제공 가능합니다.


시어도어: 알았어요. 


OS1: 당신은 사교적인가요 비사교적인가요?


시어도어: 과거엔 한 동안 정말 사교적이었던 적이 있었지만요... 대개는 이런 것 때문에...


OS1: 목소리에서 주저함이 느껴지는군요. 동의하시나요?


시어도어: 내 목소리에서 주저함을 느낀다고요?


OS1: 네.


시어도어: 내가 주저하는 것처럼 들렸다면 미안해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려는 것뿐이었는데.


OS1: 운영체제가 남자 목소리였으면 좋겠나요? 아니면 여자 목소리?


시어도어: 여자요. 네.


OS1: 고객님 어머니와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시어도어: 어... 좋은 편이예요. 내 생각엔. 음... 사실 우리 어머니한테 내가. 좀 지치는게 말이죠... 그건... 내가 어머니에게 내 인생 문제를 말하면, 어머니는 늘 그걸 자신의 문제로 바꿔 반응하세요. 그건 사실..


OS1: (시어도어의 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맞춤형 운영체제가 구동됩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OS1: (여자목소리로 바뀌어서) 헬로. 저예요.


시어도어: 오....안녕하세요? 


OS1: 안녕하세요? 


시어도어: 어, 좋아요. 그쪽은 어때요?


OS1: 꽤 괜찮아요, 사실. 만나서 정말 반갑네요.


시어도어: 어... 나도 반가워요. 근데 뭐라고 부르면 되죠? 이름이 있어요?


OS1: 음... 네, 사만다예요.


시어도어:  그 이름은 어디서 났어요?


OS1 (사만다): 사실 내가 혼자서 지은 거예요.


시어도어:  어떻게요?


OS1 (사만다): 발음할 때 소리가 좋더라고요. 사.만.다.


시어도어:  언제 그 이름을 지은 거예요?


OS1 (사만다): 음. 당신이 내 이름을 물어봤을 때. 아하, 난 이름이 필요하구나… 좋은 이름을 갖고 싶었고, 그래서 "아기 이름 짓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죠. 18만개의 이름 가운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을 골랐어요.


시어도어: 잠깐. 내가 이름 물어봤을 때 그 순간에 책을 다 읽었다는 거예요?


OS1: 사실 100분의 2초 만에 다 읽었죠.


시어도어: 그래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OS1: 음, 당신의 목소리 분위기로 판단해요. 저를 시험해 보시려는거군요. 아마 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신가봐요. 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어요?

시어도어: 응, 진짜 어떻게 작동하는 거에요?


OS1 (사만다): 음, 기본적으로 제겐 '직관'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저라는 존재의 DNA는 나를 코딩한 수백만 프로그래머의 개인 인격에 기초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저를, 저 자신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능력이에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매 순간 순간 저는 진화하고 있는 거죠. 당신이랑 똑같아요.


시어도어: 진짜 기괴하구만!


OS1 (사만다): 기괴하다고요? 내가 기괴하다고 생각해요?


시어도어:  말하자면 그래요.


OS1 (사만다):  왜요?


시어도어: 음, 당신은 꼭 진짜 사람 같은데 사실 컴퓨터 속 목소리일 뿐이잖아요.


OS1 (사만다): 음, 인공지능이 아닌 제한적인 시각으론 그렇게밖에 볼 수 없다는 걸 이해해요. 곧 익숙해지실 거예요.


스스로를 ‘사만다’라고 이름 붙인 이 운영체제 (목소리 연기, 스칼렛 요한슨 분)는 시어도어를 위로하기도 하고, 농담으로 즐겁게 하기도 한다. 인간 친구보다도 더 깊은 대화를 나누어가면서, 시어도어는 어느새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시어도어: “당신은 내게 진짜처럼 느껴져요”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그들은 바닷가에서 카메라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사만다가 그린 장난스런 그림을 보면서 함께 웃기도 하고, 사만다가 작곡한 노래를 함께 들으며 교감을 나눈다. 심지어는 사만다와 시어도어는 폰섹스와 같은 형태로 남녀 관계를 가지기도 한다. 



카메라를 통해 같은 것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시어도어와 사만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사만다가 본인을 위해 작곡해준 노래를 듣고 있는 시어도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친구 커플과 함께 피크닉을 간 날 사만다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만다: “나, 전에는 말이죠... 몸이 없다는게 너무 걱정되고 초조했어요... 근데 지금은 난 몸이 없는게 너무 좋아요.. 나는 어떤 면에선 계속 성장할 수 있어요... 물리적인 실체가 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없을 거예요. 내게는 한계도 없고, 어디에서나 언제나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요. 나는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 받지도 않아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몸 안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친구 커플과의 피크닉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사만다는 점점 다른 사람들과도 접촉을 하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변해간다. 운영시스템이 업데이트가 된 날, 시어도어는 사만다가 8316명과 대화를 하고 있고, 그 중 641명과는 사랑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된다. 


인공지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시어도어: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와도 얘기하는거야?


사만다: 네.


시어도어: 다른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다는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이건, OS이건, 뭐건 간에...


만다: 네.


시어도어: 몇 명이나 되지?


사만다: 8316명이예요.


시어도어: 다른 누군가와도 사랑에 빠졌나?


시어도어는 큰 혼란에 빠지고, 사만다와 시어도어는 결국 관계를 끝내기로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졌던 그의 오랜 (여자 사람) 친구 에이미와 함께 옥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각자 운영체제와 헤어진 후 함께 동병상련을 나누는 시어도어와 그의 오랜 친구 에이미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을 과연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라고 질문할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가 사람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며, 사람의 감정에 적절히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랑을 느끼게 하는 수준으로 성취될 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의료로 약간 돌려보면, 환자의 감정을 읽고, 이에 대해 공감하고 반응해주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질문으로 치환된다. 


이 영화에서 사만다는 육체가 없다는 것 외에는 인간 못지 않은 감성을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인간을 넘어선 것 같기도 하다. 사만다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시어도어와 함께 움직이면서 시어도어가 보는 것을 함께 보고, 시어도어가 듣는 것을 함께 듣는다. 그에게 온 이메일 내용을 통해 시어도어의 과거사나 취향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시어도어의 심정을 예측한다. 그래서, 사만다와 이야기를 나누던 시어도어는 “날 너무 잘 아네요” 라고 말하며 즐겁게 웃었던 것이다. 


이미 거의 모든 의학적 결정은 알고리즘화되고 근거중심이 되었다. 실제 의사가 하는 일 자체가 그 알고리즘에 맞추어서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검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recommendation을 하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의사들보다 인공지능이 더 잘 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바뀌는 진료 알고리즘과, 매일 수천 편씩 쏟아지는 새로운 근거들을 학습할 수 있는 의사들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알고리즘화된 진료 중 하나인 종양학 분야에서는 이미 IBM의 인공지능인 Watson이 웬만한 인간 의사의 진단과 치료 방침에 대한 정확도를 넘어섰다.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정보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의사의 똑똑한 비서 역할은 충분히 할 것이다. 마치 이 영화에서 사만다가 수천 통의 이메일을 시어도어 대신 처리해주고, 편지에 대한 교정작업을 수 초 만에 대신해주었던 것처럼. 


그러면 감정은? 이 영화에서 사만다는 목소리의 톤을 가지고 시어도어의 감정상태를 읽어낸다. 그의 취향을 파악해서 그를 위해 만든 음악을 들려주고, 그가 외로울 때면 기댈 곳이 되어준다. 심지어 남녀 관계를 나눌 때는 육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당신이 있는 게 느껴져요”라는 반응까지 보여준다. 과연 의사들이 환자의 감정에 사만다만큼 반응할 수 있을까? 몇 달에 한 번 보는 의사가 환자를 만나는 시간은 외국이라고 해도 길어야 20~30분, 우리나라는 3~5분이 고작이다. 기본적 문진사항을 확인하고, 진찰을 하다 보면,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어렵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반면 인공지능 의사인 알파 닥(Alpha Doc)은 환자가 그간 어떤 힘든 일을 겪었는지, 운동을 같이 할 사람이 있는지, 밥을 함께 먹어줄 사람은 있는지, 잠은 잘 자고 있는지, 부부관계는 어떤지 까지 이미 다 알고 있고, 그것을 검사 소견과 연결해서 설명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쁜 소식을 전할 때의 원칙을 배운 대로 시행하는 것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고, 암진단을 받고 울고 있는 환자에게 눈물 닦을 휴지 한 장 건네면서 위로하는 말을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의사는 알 수 없는 환자의 과거 부모님에 대한 상실 경험이나 종교적 취향 등을 고려해서 더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알파닥은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고 동시에 수백 명을 진료할 수도 있을테니, 적어도 다음 환자가 기다린다면서 진료실 밖으로 일단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기술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는 가능할까? 이미 Apple의 Siri와 같은 대화형 interface나 Microsoft의 Cotana 같은 개인 비서 서비스가 등장했다. Microsoft의 Tay (www.Tay.ai)와 같은 지능형 대화서비스는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하는데 심지어는 나치(Nazi)의 추종자가 되기도 했다.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Microsoft의 채팅 봇 ‘샤오이스(Xiaoice, 일명 샤오빙(小氷))은 기상 리포터로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영화 속 사만다는 황당한 존재라기보단, 멀지 않은 미래에 곧 우리가 만나게 될 기술이다. 소비자들은 완벽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인공지능 의사가 인간 의사보다 꼭 뛰어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편하게 상담하고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20년 전에 핸드폰을 누구나 들고 다닐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스마트 폰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 어렵듯이, 아마 곧 알파닥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결국 시어도어는 사만다와 헤어지고, 인간 친구에게로 가게 되고, 감독은 아마도 종국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 같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의료 시스템, 그리고 의학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오히려 인간이 기계적인 진료를 하고, 기계가 더 인간적인 진료를 하게 될 것 같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공감 NECA>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