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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36 5월호] 보건의료이슈 :: 비급여 관리, 뿌리 두고 나뭇가지 다루기?

 


 

 글. 이상무 선임연구위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총 의료비 지출에서 본인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대 초반의 38%대에서 10여년이 지난 지금 37%대로 주요 선진국이 10%대인 점을 감안하면 크게 줄지 못하고 있다. 의료비 본인지불비율이 정체상태라도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2000년대 초반 4%대에서 최근 7%대로 진입하는 것을 감안 할 때 본인이 부담해야 할 절대 액수는 크게 증가해 온 것인데 이러한 의료비 지출 증가는 보건의료정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크나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건강보험 전체 환자의 총 진료비 중에 공단 부담금이 차지하는 비율인 건강보험 보장률을 제외하면 법정본인부담금과 비급여 본인부담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되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5년 건강보험 환자진료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건강보험 보장률이 63.2%,  법정 본인부담률은 19.7%,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17.1%이다. OECD에 보고된 국민의료비에 대한 공적 보장률은 55.5%로 다소 차이가 나는데 이는 건강보험외적 의료비의 포함에 따른 차이에서 기인한다. 법정 본인부담금의 경우 건강보험의 정책에 따른 비율에 따라 정해지는 부분으로 재원 등을 감안해가며 관리적 접근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비급여의 경우 복잡한 구성요소로 이를 관리적 측면에서 다루기는 매우 어렵다. 최근 3년간의 신약의 급여신청현황을 보면 대략 75%가 급여로 결정되고 이중 6%는 가격협상에 결렬되므로 실재 70%가량이 급여품목이 되고 30%정도는 비급여로 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신의료기술(의사행위)의 경우에는 최근 5년간의 신청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볼 때 기존기술로 인정된 것 이외의 경우 52%정도가 신의료기술로 인정되었고 이중 비급여가 58%로 결정 되었는데 최근에는 급여로 결정되는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매년 차이가 있겠지만 신의료 중 약제는 30%정도 행위는 60%정도가 새로운 비급여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건수의 비율이 이렇다는 이야기지 이러한 신의료로 발생하는 비용은 이와 다를 것이다. 


보장성 강화정책에 따라 비급여부분을 다루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본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들이 발생하곤 하였다. 또한 이러한 관리적 차원의 정책결정들에도 불구하고 공적 보장률은 여전히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 뿌리를 다루지 않고 나뭇가지만 치다 보니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급여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비급여가 발생하는 기전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따른 대책의 수립이 필요하며 자칫 나타난 현상만을 다루려다가는 의료의 왜곡현상을 더 심화 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는 현재 의료현장에서의 의료전달체계의 훼손, 방어진료로 인한 불필요한 진료, 효과와 가치가 불확실한 의료사용의 증가, 병원 쇼핑, 합리적 이유에 기초하지 않은 고가의 건강검진 프로그램의 활성화 등의 왜곡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왜곡의 현상을 의료인의 잘못으로만 몰아가며 또 다른 정책을 편다면 왜곡 현상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 뒤에는 뿌리 깊은 의료외적 요인들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큰 뿌리는 첫째로 저수가와 행위별 수가제의 조합이며 둘째로는 의료현장의 신뢰의 붕괴이다. 첫 번째 뿌리는 정부와 의료공급자 사이는 사회주의적 계약관계이며 의료공급자가 사회에서 생존하는 방식은 철저한 자본주의적 방식인 이른바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한다. 특정 의료기술이 비급여 항목으로 결정되었을 때 경쟁력을 잃게 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 같지만 실손형보험의 도입으로 오히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저수가의 까다로운 급여보다 더 손쉽게 선택할 수 있어 경쟁력 우위에 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문제의 해결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근원을 해결하는 것이 늦지만 빠른 길이다. 정책결정자들과 정치가들은 빠른 가시적 해결을 원한다. 그러다 보면 관리적 측면의 접근에 의존하기 쉽게 되며 그럴수록 의료현장의 주연인 의료공급자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게 된다. 의료의 왜곡현상을 치유하고 의료가 의료다운 건강한 의료생태계를 만들도록 복구해주지 않는 한 관리위주의 정책은 또 다른 풍선효과를 만들며 결국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상업적 요소가 큰 의료들이 만연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이다. 의료를 공공재로 인정하고 사회주의적 개념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려 한다면 현재 민간위주의 의료공급체계를 공공병원형태의 의료공급형태로 대 전환을 해야 한다. 의료인력의 산출의 구조도 국가 주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가 주도형 의료의 공급과 체계를 세우기에는 크나 큰 국가적 투자를 요하게 됨으로 이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없는 한 이를 실행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국가주도형 의료공급을 택하지 못한다면 두 번째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필수적이고 정상적인 의료의 공급이 자본주의적 구조에서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필수의료 성격의 의료기술에 대해서는 약제를 제외한 진료 수가들에 대해 국가는 건강보험에서 보상하는 비율을 정하고 요양기관이 실제 환자에게 청구하는 금액은 시장 경쟁에 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필수적 성격을 띤 의료에 한하여 실비 보험은 일정 비율 보상을 해주도록 하며 전문가적 책임과 자율성이 작동하도록 정책방향을 갖도록 한다. 효과가 불확실하거나 가치가 적은 의료기술에 대해서는 실비 보험에서 보상 되지 않도록 법적인 제한이 필요하다. 주로 비급여 의료에 대한 평가를 체계적으로 행하여 근거기반의학이 의료공급자들의 수련 과정과 전문가들 간의 자율적 자정작용에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신뢰구축은 중요한 정책방향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문가들 간의 상호 자율적 감독 기능이 살아나고 의사들의 기사(knight)로서의 기능이 살아나며 필수의료가 중요시 여겨지게 되고, 방어진료도 감소하게 되어 왜곡현상이 줄어들어 의료생태계가 복원될 것이다. 필수의료분야에 증가된 의료비는 불필요한 의료의 사용 감소로 상쇄되게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단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관리적 정책을 계속 만들어 갈 수밖에 없고 그 부작용은 예기치 않은데서 또 다른 문제를 산출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이다.

 

* 본 내용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연구자 개인의 관점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