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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37 6월호] 보건의료이슈 :: 보건의료산업 육성과 환자안전 사이의 딜레마



 

글. 박병주 교수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천연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적극적인 신의료기술 개발을 통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보건의료산업을 육성하여 경제활성화를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책방향이다. 


보건의료분야에서의 신의료기술은 질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조기에 정확하게 진단하며, 효과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의약품이나 새로운 시술 및 수술법, 진단법 및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 정부는 다른 나라보다 앞서서 줄기세포치료제를 임상에 사용하도록 승인하였고, 건강기능식품법을 제정하여 적극적으로 건강기능식품의 산업화를 유도하였으며, 민간에서도 유전자검사를 포함하여 각종 진단법들을 개발하여 신의료기술평가를 받고자 신청하고 있고, 전자업체들에서는 다양한 Wearable device들을 적극 개발하는 등 보건의료산업을 육성하는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하여 잇달아 규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불필요한 과잉규제로 인하여 새로운 기술이 시장으로 유입되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은 경제활성화를 저해시키는 요인이 된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이러한 규제 개혁을 통하여 신의료기술이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하여 환자들이 도움을 받게 하고, 보건의료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들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면, 2014년 11월에 국민들이 더 쉽고 빠르게 우수 의료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요양급여 등재절차를 개선하여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의 품목허가를 받은 의료기기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고 요양급여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어 2016년 2월에는 의료기기 허가-신의료기술평가 통합운영 시범사업을 실시하여 신의료기술평가를 간소화함으로써 의료기기의 시장진입을 촉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같이 신의료기술의 승인과 관련된 각종 규제를 완화하여 신의료기술이 신속하게 시판을 허가받아 환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한 지 여부는 그와 같이 신속히 승인받은 신의료기술들이 환자들에게 이로운 혜택만 줄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Fast Track Policy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Fast Track Policy는 중증 질환이나 아직 충족되지 못한 의료상의 요구가 큰 질환을 대상으로 현재 진행 중인 새로운 약물 또는 백신의 개발 및 허가 심사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국 FDA에서 FDA근대화법(FDA Modernization Act of 1997)을 통해 도입한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를 적용한 최초의 약물은 에이즈 치료제였다. 20세기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에이즈는 1981년 미국 질병관리본부(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에 의해 처음 보고된 후 감염자수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치료제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질병이 악화되고 환자가 죽어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에이즈환자단체에서 정부에 새로운 치료제를 속히 개발하여 제공하라고 엄청난 압박을 가하였기 때문에 에이즈치료제를 임상시험 2상 결과를 근거로 시판을 허가하였다. 


새로운 치료제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혜택을 받았지만, 새로운 치료제가 시판되기 시작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미국 FDA는 다시 환자단체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다. 새로운 치료제의 부작용이 너무 심하여 환자들이 고통 받고 있으니 안전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졸속으로 시판을 허가해준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와 유사하게 의료기기인 metal-on-metal hip implants에 Fast Track Policy를 적용한 사례가 있다. 시판 전 통보(Premarket Notification, PMN)라고도 불리는 510(k)과정은 미국 FDA에 정보를 등록해야 하는 제조자가 시장에 제품을 시판하기 적어도 90일 전에 해당 사실을 통보해야 함을 규정한 미국의 FD&CA(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의 조항 번호이다. 


1976년 미국 FDA의 의료기기 허가규정이 바뀌기 전에 제조하여 시판한 의료기기들은 FDA에 시판전 통보로 시판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metal-on-metal implants도 이러한 과정으로 시판허가를 신속하게 받았다. 그러나 metal-on-metal hip implants는 시판 후 환자에게 시술한 건수가 늘어나면서 malposition, metallosis, dislocation 등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유해사례들이 보고되면서 가장 높은 위험단계인 Class 3로 판정이 되었다.


이에 근거하여 제조사는 시판 전 허가과정(Premarket approval application)을 다시 밟도록 추가로 전임상실험과 임상시험을 수행하여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여야 하였다. 그 결과 3개 제조사의 Total hip system은 퇴출되었다. 이와 같이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경우 시판을 허가하기 전에 안전성에 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판을 허가하는 경우 시판 후 불거지는 안전성 문제로 인한 피해가 클 수 있기 때문에 위해와 이득간의 균형 잡힌 평가(balanced evaluation between risk and benefit)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접근하여야 할까? 천연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보건의료산업을 육성하여 국민들이 더 잘 살게 만들어야 한다는 실리환자의 안전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신의료기술의 승인까지 기간이 연장되더라도 시판을 허가하기 전에 안전성을 철저히 확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명분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토끼 두 마리를 동시에 잡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무엇을 우선시 하여야 하는가? 그 답은 람의 건강과 질병을 다루는 보건의료산업의 특성상 무엇보다 안전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과도한 행정적 규제는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람의 안전과 관련된 규제는 사람들과 기업을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그리고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과 제도는 불편하지만 모든 국민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으로 발전할 때까지 꾸준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안전을 보호 하는 책임은 일차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산업계가 져야 하지만,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계에만 책임을 맡겨두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각 보건의료기술별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신의료기술이 시판을 승인받은 이후에 지속적으로 안전성을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하여 부작용을 조기에 발견하여 의료계와 정부기관에 알려야 하고, 정부는 이에 따라 신속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최근 유럽에서 들려온 소식이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유럽의회 환경보건식품위원회는 4년간 끌어온 의료기기규정(Medical Device Regulations, MDR) 개정안을 6월 15일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의료산업 규제 및 감독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환자의 안전을 더욱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약물역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박병주 등. 근거중심 보건의료. 고려의학, 2009

http://www.fda.gov/MedicalDevices/Safety/AlertsandNotices/ucm335775.htm

 

Pharmaceutical and medical device companies often get their products approved quickly by the FDA through fast-track and the 510(k) premarket processes..

Date Issued: Jan. 17, 2013. Audience: Orthopaedic surgeons; Health care providers responsible for the ongoing care of patients with metal-on-metal hip implants.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공감 NECA>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