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노진섭 의학기자 (시사저널) 





서울대병원장 출신 한만청 박사는 팔순을 넘겼지만, 얼굴은 매끈하고 허리가 꼿꼿하다. 평생 의사로 살아왔으니 건강 유지에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싶지만 사실 그는 술과 담배를 달고 살았고 건강검진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1998년부터는 여러 차례 암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그런 그가 약 20년 동안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20년 전 한 박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고 그동안 어떻게 건강을 유지해왔을까. 그는 이에 대한 답을 책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에 남겼다. 필자는 이 책을 읽은 후 한 박사를 만나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한 박사는 서울대병원장이던 시절(1993~95년)에 건강검진센터를 만들었다. 병원 수익을 위해서였다. 퇴임 후인 1998년 건강검진센터 소속 교수가 한 박사에게 신체검사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신체검사를 받는 도중, 간 초음파검사를 하던 여의사가 손을 떨며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재검사를 받아보니 간에 1~2cm짜리 암이 있었다. 에탄올 주입술로 제거했고, 3개월 후 간 상태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또 암을 발견했고 재차 에탄올을 주입했다. 다시 4개월 후 간에서 14cm 크기의 암 덩어리를 또 발견했다. 수술로 제거해도 2~3년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태였다. 간암 전문가인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교수에게 수술을 맡겼다. 수술 2개월 후 CT 검사에서 이번에는 폐 결절이 다수 발견됐다. 생존율은 5% 미만이어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젠 죽는구나 생각했지. 당시 전이된 간암에 효과적인 항암제는 없었고, 그나마 항암제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는 방법이 있긴 했는데, 나도 그렇고 의사도 이 방법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죽을 때 죽더라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에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체중은 12kg 이상 빠지고 머리카락과 눈썹이 모두 없어졌다. 8주 후 검사를 받았는데 폐 결절 숫자가 줄었다. 기적이었다.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먹고, 운동해서 힘을 키웠다. 6개월 후 폐 결절이 모두 사라졌다.


“왜 나한테 항암제 반응이 나왔을까. 내 생각에는 내가 평생 웬만해서는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야. 집에 그 흔한 해열제나 소화제 등 상비약이 없어. 열이 나면 좀 쉬고, 소화가 안 되면 굶으면 돼. 후배 의사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지만, 나는 그렇게 믿어. 그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정기적으로 간과 폐 검사를 받았다. 2006년 어느 날 촬영한 간과 폐 사진에서 방광암이 우연히 찍혔다. 경요도 방광종양 절제술과 BCG 주입으로 암을 제거했다. 6개월 후, 이번에는 방광 상태를 검사하다가 간에 1.5cm짜리 암을 또 발견했고 고주파 열로 치료했다. 이후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검사를 받고 있다. 한 박사가 암에 걸렸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별의별 식품을 보내왔다. 


"심지어 집사람이 암을 극복한 의사들에게 연락해서 암에 좋은 음식을 물었나 봐. 한 의사는 굼벵이를 먹고 암이 나았다고 하자 집사람이 제주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굼벵이를 구해왔어. 삶아서 내 앞에 내미는 거야. 입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버리라고 했지. 의사가 굼벵이를 권할 정도니 일반인은 오죽 그런 식품을 찾겠나. 또 내 친지는 아가리쿠스라는 버섯을 먹어보라고 권했어. 일본 교수가 암에 특효약으로 검증하고 책까지 썼다고 했다나. 그 책을 읽어보니 순 엉터리인 거야."


그는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피하는 만큼 나쁜 음식도 멀리했다. 비타민, 오메가-3, 녹즙, 특정 버섯 등 건강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이나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라면, 통조림, 병 등에 들어 있는 가공식품을 먹지 않았다. 항암 식품이 없듯이 발암 음식도 없다는 게 한 박사의 지론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어. 비가 오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건데, 우산을 쓰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암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암을 극복할 힘을 기르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지. 나는 암에 걸린 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하루 세끼를 꼭 챙겨 먹었어."


한 박사는 신선한 음식을 강조했다. 한꺼번에 음식을 많이 만들어두고 냉장고에 넣었다 뺐다 하며 먹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그때마다 만들어 먹는 것이 핵심이다. 제철 나물 2가지, 김치 2가지는 기본이다. 김치는 배추김치에 요즘에는 나박김치를 곁들인다. 물론 그 외 반찬도 골고루 먹는다. 그는 고기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몇 차례씩 먹는다. 특히 아침 식사를 정성스럽게 챙긴다. 항상 그의 아침 밥상에는 소스(드레싱) 없는 생채소가 오른다. 달걀과 우유도 빠짐없이 먹는다. 


"하루에 필요한 단백질과 칼슘을 섭취하는 데 달걀과 우유만큼 좋은 식품은 없어. 달걀에는 생명을 만드는 성분이 다 들어 있고, 우유는 생명을 기르는 성분이지. 달걀은 삶거나 수란으로 조리해 먹고, 소금 등 간을 하지 않아. 어떤 사람은 노른자를 먹지 않는데 노른자를 먹어야 해. 달걀 프라이는 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좋지 않아."


아침에 죽이나 떡을 먹을 때도 있다. 그러나 빵은 피한다. 밀가루보다는 쌀을 먹는 게 좋다고 한다. 같은 탄수화물이라도 쌀이 칼로리가 적고 변비에 좋기 때문이다. 노인은 변비가 문제인데 그는 하루 1번 화장실에 갈 정도로 배변 활동이 양호하다. 그렇다고 집 밖에서까지 까다로운 식성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달걀 프라이도 먹고 단 케이크도 즐긴다. 다만 무엇을 먹든 밥상을 깨끗이 비우려고 노력한다. 


“상하수도 시설이 좋지 않았던 그 옛날, 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물장수가 있었어. 함경도 북청 출신이 많아서 흔히 북청물장수라고 불렀지. 단골집은 고맙다며 그들에게 밥상을 차려주기도 했는데, 힘을 많이 쓰는 북청물장수는 먹성이 좋아 밥과 반찬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 음식은 북청물장수처럼 먹어야 해. 골고루 양껏 먹어야 체력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키울 수 있거든.”


한 박사가 암에 걸리기 전에도 그런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역 의사 시절에는 아침밥 먹을 시간에 잤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출근하기 바빴다. 술과 담배도 했다. 미국에서 3년 동안 연구원으로 있을 때 B형 간염에 걸렸다. 그런 데다 본래 술을 좋아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 술을 마셨다. 간염과 술 때문에 간암에 걸린 것 같다고 한다. 암에 걸린 후 술과 담배를 끊었다. 요즘 술은 반주로 포도주 한 잔 마실 때도 있고 안 마실 때도 있다. 식습관을 바꾼 것이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일반인에게 권할 수 있을까. 


“암 예방은 몰라도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암 등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 몸 상태를 만들 수 있지. 체력과 면역력이 높아 병에 걸려도 몸이 견디는 거야. 특히 나는 암에 걸린 사람에게 일단 체중을 3kg만 늘리라고 해.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들이 모두 체력을 떨어뜨려. 그래서 버틸 체력을 평소에 길러둬야 하는 거야. 이를 위해 하루 세끼를 챙겨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해.”


이따금 산책과 골프를 즐기지만 매일 빼놓지 않는 운동은 스트레칭이다. 나름의 아침 운동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변비 예방과 신체 유연성을 목적으로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누운 자세에서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는 죔죔을 100번, 발만 직각으로 구부렸다 폈다를 100번, 항문을 조였다 풀기를 100, 회음부 마사지를 100번 한다. 손을 올리고 숨을 마음껏 들이마시고 버티다가 손 내리면서 숨 뱉기를 한 세트로 10번, 무릎을 모아 위아래로 뒹굴며 숫자 열까지 세는 것을 10번 한다. 자전거 타기 발동작을 50번, 발바닥 치기를 50번 한다. 등과 배만 올리기를 20번 한다. 침대에서 나와서 선 자세에서 등을 굽히고 팔을 뻗는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50번 한다. 한쪽 팔을 다른 팔로 끼고 돌리는 스트레칭을 좌우 각 10번 한다. 무릎 굽히기를 50번 한다. 


“침대에서 30분, 침대 밖에서 20분, 모두 50분 걸리거든. 이 정도 스트레칭을 하면 화장실에 다녀오는 기분이 달라.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루 1시간도 못 낸다면 할 수 없지.”


한 박사의 건강론은 명료하다. 건강 유지는 음식과 운동, 질병 치료는 의사에 맡기라는 것이다. 병에 걸려도 이겨낼 수 있도록 평소 체력을 길러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루 세 끼를 같은 시각에 챙겨 먹는 게 중요하다. 몸에 나쁜 음식은 피하되, 좋은 음식을 찾을 필요는 없다. 인체는 자연에서 얻은 음식으로 유지되므로 인위적으로 만든 건강기능식품은 불필요하다. 또 병에 걸린 후에는 의사의 치료방침을 따르라고 강조한 그는 산책하기에 좋은 날씨라며 자리를 떴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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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ㅎㅎㅎ 2017.05.02 21:21 신고

    재밌는 칼럼이네요. 이런 흥미로운 기고문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addr | edit/del hi_neca 2017.05.08 10:02 신고

      안녕하세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공감NECA>에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게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