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 NECA
시민과 함께 가는 보건의료의 나침반 역할을 기대한다
글.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보건의료와 관련된 다른 국가 공조직과는 상당히 차별되는 특성과 역량이 강조되는 조직이다. 보건의료 및 건강보험 제도운영, 재정관리 등의 기능을 담당 하는 다른 정부 기관과는 달리 사람의 몸에 직접 관여하는 의료기술을 다룬다는 측면이 그렇다. 의료기술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불확실성과 위해 가능성은 환자나 일반 시민이 사전에 감지하거나 대처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국가 보건의료정책과 임상현장의 근거 중심의 의사결정 지원 등 거시 정책적 측면에서의 NECA 본연의 역할을 떠나 보건의료기술에 수시로 노출되는 투병 중인 환자와 의료이용을 하는 일반시민의 입장에서도 NECA는 필요한 조직이다.
그 동안 NECA는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평가 외에도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보건의료 이슈와 현안에 대해서도 꾸준히 대응해 왔다. 미용성형시술의 합병증·부작용 등 현황 파악과 이용자 정보집을 보급하였고, 오·남용 우려가 있는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대국민 정보집 개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외에 진료현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로봇수술 평가를 시행하여 국민들이 실제적 편익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고, 태반주사의 효과 검증,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 부작용 논란, 갑상선암 선별검사 유용성에 대한 근거 제공 등 국민적 관심이 있는 보건의료 이슈에 대해 근거 중심의 평가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최근에는 의료기술의 구현방법이 점차 복잡해지고 적용 범위도 점차 확장되는 추세로, NECA 본연의 기능을 보다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과거와는 달리 단순히 의료기기 제품에 기반을 둔 의료기술이 아닌 웨어러블(wearable), 빅데이터 등 다양한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결합하거나 인공지능, 3D 프린팅 등 특정기술과 접목된 의료기술도 주목을 받고 있다. 적용 범위도 질병 치료 목적을 벗어나 예방 및 건강관리서비스 등을 내세우며 개인의 일상생활 영역까지 활용성을 확장하는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의료기술이 국민건강 증진에 유용하다고 인정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무분별한 시장진입으로 진료현장과 국민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개연성도 다분하다. 특히, 현 정부의 ‘혁신성장’ 기조와 궤를 같이하면서 산업적 이해관계에 무게중심을 둔 의료기술 확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질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가운데 진료현장과 일상생활에 의료기술이 남용되지 않도록 NECA가 국민들에게 정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원탁회의나 의료기술평가 국민참여단 운영은 보건의료 쟁점 분야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의 기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사회적 합의나 참여자들의 숙의와 토론 과정이 좀 더 의미가 있으려면 전문가 중심의 논의 구조에서 벗어나 일반 시민의 관점을 반영하는 경로를 보다 강구해 볼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시민단체나 환자단체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으나 일반시민들로 부터 대표성이 위임된 것이 아니라면 시민의 관점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되는데 의료기술만 놓고 보아도 산업적 가치와 공익적 보건의료의 가치가 대립될 수 있고, 건강보험 급여보장과 관련해서도 특정 질환에 따른 요구와 보편성에 기초한 급여보장 사이에서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외에도 의료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집단의 영향력도 있는 것으로 정책적 의사결정이 왜곡되지 않도록 보다 공적인 통제력이 담보될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 쟁점 사항이나 가치충돌이 있는 경우 일반 시민의 참여와 숙의 과정을 통해 균형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를 마련하는 등 NECA 거버넌스의 변화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의료기기 규제혁신 등 현 정부의 규제 완화 일변도의 정책변화 속에 NECA 본연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혁신의료기술의 조속한 시장진입 등을 위한 별도 트랙 마련이나 신의료기술 평가 기간 단축 등 산업계 민원 중심의 제도변화가 주축이 되고 있어, 시민사회도 이를 예의 주시하는 상황이다. 의료기술의 사용을 위해 거쳐야 하는 의사결정 단계(식약처허가-신의료기술평가-건강보험급여결정) 중 일부를 축소, 생략하는 조치 등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근거생산 기반에 위협을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이 같은 정책 기조는 NECA의 기능과 역할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 기조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거나 산업적 이해관계에 치우치기보다는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짚어주는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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