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욱(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 JTBC
암, 관절, 척추 전문 병원인 미래 병원. 이곳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일반외과 의사 이해성과 응급실장인 강주란 실장. 그리고 로봇수술센터의 일반외과 한우진 교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이지만 이들이 겪는 일은 많이 다르다.
# 장면 1
일반외과 펠로우: “우리 TA (traffic accident, 교통사고) 환자 안받는 것 아시잖아요. 딴 병원 데려가세요.”
응급 구조사: “아는데요, 환자 상태가 워낙 급해서 딴 병원에서 안받아줘요.”
일반외과 펠로우: “여긴 자리가 없다니까요. 전화도 없이 무조건 끌고 오는 겁니까?”
이해성은 펠로우를 제치고 바로 환자를 받고 검사실로 보낸다.
응급구조사에게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돌려보내려는 응급실 의사 ⓒ JTBC
# 장면 2
강실장: “Brain, 복부 CT, 어깬 MRI (를 찍으세요)”
이해성: “실장님 너무 검사가 과한 것 아니에요?”
환자는 검사를 위해 검사실로 이동하다가, 이송에 동행한 일반외과 펠로우가 원장과 마주친다.
원장: “TA인가? 강실장이 받았어? TA를?”
응급실 의사: “예, 저는 말렸는데, Brain이랑 복부 CT, 어깨 MRI 응급으로 냈습니다.”
원장: (흡족해하며)“그래.”
교통사고 환자지만 검사를 많이 할 것이라는 말에 흡족해하는 원장 ⓒ JTBC
# 장면 3
이해성:”초음파 (가져와) , 빨리!”
강실장: “CT찍지? Brain, 가슴, 복부 다.”
이해성: (대꾸 없음)
강실장: "이해성 선생 CT실로 가지?”
이해성: “(피가) 꽉 찼다잖아요.”
강실장: “이해성, CT실로 가라고, 어? ”
이해성: “이거봐, 피가 가득한데. 야, 복부 대동맥 터졌어, 인턴 당장 수술방 잡아. 마취과에도 연락하고, O형 혈액 모두 달라고 해. 흉부외과, 혈관외과에도 콜해. 뭐해, 박간호사. 따라들어와야지.”
강실장: “환자 바이탈(vital, 생체 활력징후) 아직 CT찍을 수 있어.”
이해성: “급하다구요. CT찍으러 가다가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올지도 모른다구요.”
강실장: “너 방금 소송 끝나고 왔어. 너 소송이 즐겁니? 응급이었다는 것 뭐로 증명할건데?”
CT검사 필요여부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이해성과 강실장 ⓒ JTBC
이 때 원장이 나타난다.
원장: “그 환자 전원합시다. 방금 흉부외과 과장님과 통화를 했는데, 애석하게도 모두 수술중이라서 지금 불가능하답니다. 정밀한 진단 후에 정확한 수술. 이게 최상의 성적을 자랑하는 우리 미래 병원의 정신입니다. 인턴선생 전원 가능한 병원 알아봐요.”
이해성: “이 환자 병원 찾다가 길에서 죽습니다.”
원장: “그럼 받지 말았어야지? 우리 병원 암, 척추, 관절 전문 병원이에요. 해결할 수술만으로도 수술은 꽉 차서 TA 받지 말라는 건데, 수술할 수 없으니까 빨리 다른 병원 찾아서 보내는게 환자에게 더 나아요.”
이해성: “원장님, 환자가 위험합니다.”
원장: “대동맥 출혈, 사망률 90%는 됩니다.”
이해성: “생존률 10%나 됩니다. 방금 9%됐네요. 원장님이 시간 끌어서.”
원장: “긍정적인 낙관이 환자를 죽게 만들 수도 있어요. 보내세요.”
이해성: “차라리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이 폭탄환자 돌려보내고 싶다고. 우리 병원에서만 안터지면 그만이라고.”
환자의 수술 또는 전원 여부를 놓고 서로 대립하는 원장과 이해성 ⓒ JTBC
이해성은 억지로 환자를 수술장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긴박한 수술. 그러나 심정지가 발생하고, 무리한 수술을 하고 있다고 다른 의사와 갈등까지 발생하지만, 결국 심폐소생술 후 환자를 살려낸다.
응급 수술 중 심정지가 온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는 의사 이해성 ⓒ JTBC
# 장면 4
같은 순간 옆방에서는 유유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한우진 교수가 로봇수술을 하고 있다.
로봇수술중인 한우진 교수 ⓒ JTBC
# 장면 5
한우진: “위암이 진단되셨습니다. 물론 조기위암이라고 생각되기는 하는데, 수술 범위 결정을 위해서 복부CT와 내시경적 초음파 검사가 필요하고, 혹시라도 다른 장기에 전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PET CT와 뼈 스캔도 하시죠.”
환자: “PET CT요. 아니 그거 꼭 찍어야 하나요? 인터넷에 확인해보니까 그거 그럴 필요 없다고 하던데.”
한우진: “저보다 인터넷을 더 신뢰하십니까?”
환자: “아니 그건 아니구요.”
한우진: “조기위암 진단만 믿고 제가 수술했는데, 생각보다 침범된 범위가 많아서 수술이 불가능해지면 어쩔까요. 환자분께서도 제가 환자분 목숨을 놓고 도박하는 것은 원하지 않으실 텐데요. 그럼 검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진료 마치겠습니다. 대화 내용 여기 녹음되어 있습니다.”
환자에게 진단을 설명하면서 검사를 권하는 한우진 교수 ⓒ JTBC
# 장면 6
원장: “서울에 재난이 올 확률이 얼마죠? 또, 3일치 재난 물품 구매비용은 얼마고, 유통기간이 지나면 폐기비용은 얼마입니까? 벌금이 더 쌉니다. 재난 대비는 공공의 영역입니다. 병원의 책무가 아닙니다.
예산은 이만하면 됐고, 수익률 이야기를 해볼까요? 응급실 강진환 실장님, 저번 분기에 적자 1위였는데, 이번에 수익률 1위입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수) 비결이 뭡니까?”
강실장: “검사를 강화한 게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원장: “아, 역시 검사. 검사, 또 검사. 검사 강화는 병원의 수익과 정확한 진단, 소송 예방까지 일석 삼조의 방안입니다.”
수익률이 개선된 응급실 강실장에게 박수를 치도록 유도하는 원장 ⓒ JTBC
재난의 날을 의미하는 JTBC의 드라마 디데이(D-day). 이 드라마에는 최근 우리나라 의료의 민낯이 그대로 들어있다.
미래 병원은 암, 척추, 관절 전문 병원. 전문 병원은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해당 분야의 의료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해준다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개인 사업자가 민간 자본으로 병원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한편으로는 가장 수익이 높은 영역에 집중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암은 수술 비용도 비싸지만, 수술전 검사, 수술후의 정기검사까지 가장 검사를 많이 하고 의료수익이 높은 분야. 특히 이 드라마에 나오는 로봇수술은 비급여 수술로서 건당 1000~2000만원에 해당하는 고가의 수술이다. 또한 척추, 관절은 주로 50만원~100만원씩 하는 MRI를 비급여로 촬영하게 되고, 수백만원씩 하는 시술 또한 비급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외상과 같은 분야는 모두 국가의 건강보험이 적용되는데, 이에 대한 보상은 매우 적다 못해 원가 이하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진찰, 수술, 처치에 대한 수가는 원가자체의 75~80%수준이라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는 바. 대신 이것을 검사와 비급여 의료행위로 채우고 있다. 혹자는 결국 의료기관이 버티고 의사들이 여전히 고소득이 될 수 있는 것은 손해 보는 부분을 검사와 비급여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병원장 입장에서 보면 그게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게 되지만, 비급여와 검사가 많은 과는 수익이 높고 개인에 대한 보상이 큰 반면, 필수의료여서 비급여가 별로 없거나 검사보다는 상담이 위주가 되는 과는 수익도 낮고 개인은 보상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이해성을 보면서 열광할지 모른다. 자기 방어를 하거나 병원의 수익을 위한 검사는 거부하고, 위험한 수술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병원장과 맞서면서 병원에서 잘리고, 소송으로 법정에 끌려다니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의 자녀가 현재 의대생이라면 그런 선택을 하게 하고 싶은 부모는 얼마나 될까? 성형외과나 피부과같이 편하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비급여진료과나, 정신과나 재활의학과처럼 상대적으로 응급이 적고 시장에서 월급을 많이 받는 과를 하도록 하고 싶지 않을까? 위험한 수술이나 분만을 하다가 생기는 의료사고로 법정에 다녀야 하고, 밤늦게 병원에서 콜을 받고 나가야 하면서도 이에 맞는 보수도 받지 못하는 외과나 산부인과 의사를 의사의 사명이니 하라고 권유할 부모가 얼마나 될까? 같은 일을 한다면 좀 더 좋은 경제적 보상과 직업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일까?
드라마에서 강실장은 검사를 많이 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이해성에게 이야기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응급의료센터를 유지할 수 있고, 정부지원금을 받으면 원하는 외상센터를 세울 수 있다고. 세상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명감이 우선이고,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는 훌륭하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좋은 정책은 그런 대다수 사람들의 자연스런 선택이 전체적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기적인 의사나 이기적인 병원장이 아니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인 것이다.
분만 의사가 없다며, 외상 외과가 없다며, 흉부외과 의사가 없다며 이런 저런 대책들이 쏟아진다. 무슨무슨 센터 건립비 지원, 기피과 전공의 수련 특별 지원금 같은 몇년치의 예산을 받아서 담당 공무원들이 생색내기 좋은 선심성 정책들. 그러나 센터를 건립해도 이후 매년 적자를 본다면 그런 센터를 계속 운영할 병원도, 전공의 때 몇 백 만원 더 받는다 해도 이후 30년을 격무와 소송위험에 시달리고 싶은 의사도 별로 없다. 이국종 교수님이 계시는 아주대병원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해준 대가로 2억 여 원의 손실이 발생했으나 정부로부터 보전받지도 못했다. 반면 미국은 외과계 의사들은 일이 힘든 만큼 수입이 내과계의 2~3배에 달하고, 외상 진료도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센터 건립비 같은 지원이 없어도 외상환자들을 기피하는 일이 없다.
자비로 의대를 다니고 자기 자본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과 의사들에게 '의술은 인술'이라면서 사명감을 강요하고 적자와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국민들이 사명감이 없다면서 의사 집단만 매도하고, 정부는 이슈가 터질 때 마다 생색내기 식으로 땜질식 처방을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재난 대응, 전염병 대응, 분만 서비스, 예방 서비스 등 꼭 필요하지만 제대로 보상되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며, 불필요한 과잉 검사와 효과가 불분명한 비급여 의료행위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국종 교수님도 아래와 같이 말했다.
“어떻게 보면 국내는 외상에 대한 수가가 낮다보니 생긴 일이 아닐까 싶다. 병원 입장에서는 외상을 전문으로 보겠다는 것은 그냥 적자를 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최근에 정부가 외상외과 전문의 교육에 지원하겠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전반적인 수가가 올라야 하고 정부는 관리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만약 수가가 높으면 병원들이 서로 외상센터를 하려고 할 것이고, 외상외과 전문의 지원도 늘 것이다.”
참고문헌:
청년의사. 외상센터 정부지원, 美•日은 이렇게 한다. 2014.11.18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4111200037
라포르시안. 아주대병원, ‘석해균 선장’ 치료비 2억여원 결국 못 받았다. 2014.2.27.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1288
의협신문. 진료•수술 수가 올리고 검체•영상 낮추고. 2014.10.7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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