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양금 기자 (청년의사)




어느 날 건강한 50대 남성이 상시적으로 자해와 마약을 일삼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숨진 이는 18년간 풋볼선수로 활약하며 오하이주의 프로풋볼 명예의 전당에 오른 마이크 웹스터(데이빗 모스 분).


풋볼 팬들의 영웅인 마이크의 사망사건은 단순 심정지로 종결될 뻔 했다. 하지만 담당 검시관 베넷 오말루 박사(윌 스미스 분)는 그의 진짜 사인이 풋볼이라고 주장하며 미식축구협회라는 거대 조직과의 전쟁을 시작하는데….


2015년에 개봉된 영화 <게임 체인저(Concussion)>는 한 검시관이 유명 풋볼선수의 사망원인을 세계에 알리기까지 겪은 과정과 시련을 담고 있다.


실제 2012년 5월 캘리포니아 유명 미식 축구선수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실존 인물 베넷 오말루 박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속 주인공인 베넷 오말루 박사는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검시관으로 근무하는 나이지리아 출신 신경병리학 전문의다. 


사체와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들으면서 부검을 하는, 다소 괴짜처럼 보이는 베넷 박사는 마이크의 사체를 부검하면서 이상함을 느낀다.


“뇌가 엉망이었어야 정상인데 너무 멀쩡해. 알츠하이머로 인한 수축도 없고 CT 스캔에서도 정상이야. 뇌 해부를 준비해줘.”


베넷은 동료의사 대니얼 설리번(마이크 오말리 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비 2만 달러를 들여 뇌를 해부하기로 한다. 그리고 뇌 속에서 충돌에 의한 내출혈이 계속됐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후 베넷의 풋볼경기 장면을 보는 등 경기과정을 연구한다.


ⓒ 영화 게임 체인저(Concussion)


그러던 중 그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시릴 웨트 박사(엘버트 브룩스 분)와 스티븐 데코스키 신경학과 박사(에디 마산 분)에게 알린다.


“마이크의 포지션을 연구해 보니, 뇌진탕에 버금가는 충격을 어릴 때부터 대학 때까지 받아왔어요. 머리를 무기로 삼은 게 지난 18년이었죠. 추정컨대 7만 번의 충격이 머리에 가해졌고, 이는 헬멧을 해머로 두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마이크의 사인은 풋볼입니다. 이런 경우가 또 있을 것입니다. 상식이지요.”


이야기를 들은 데코스키 박사는 달갑지 않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이런 말을 한다.


“난 상식에 관심 없네. 내가 관심 있는 건 과학이야. 과학의 힘을 아는데 있네. 맘에 안 들어. 하지만 과학자로서 부인할 수는 없군.”


이렇게 베넷은 이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풋볼이 만성 외상성 뇌질환(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CTE)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내 베넷은 미국 프로풋볼연맹 NFL로부터 연구결과를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게 되고 언론을 통해 그 사실을 알리는 등 거대 조직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이후 거세진 협박에 시달리고 있던 즈음 마이크의 팀 닥터였던 줄리안 베일스 박사(알렉 볼드윈 분)가 그에게 연락해왔다.


ⓒ 영화 게임 체인저(Concussion)


그는 그간 두통과 복시, 환청에 시달리던 마이크를 허망하게 잃은 데에 힘들어 했으며, 연맹에서 뇌진탕 지침을 만들고 위원회를 꾸려 이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왔던 사실과 지난 수년간 피츠버그 스틸러에서 선수 12명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려줬다.


“선수들을 경기에 뛰게 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테이프, 주사, 바이코딘, 토라돌, 리도카인, 퍼코세트, 렉사프로, 졸로프트. 타이어와 오일과 같은 것이죠. 다 비즈니스입니다. 더는 선수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이같은 이야기를 들은 베넷은 NFL의 팀 닥터 조셉 머룬 박사(알리스 하워드 분)에게 선수들에 대한 정식통계를 내자고 제안을 한다.


영화에서처럼 진실을 말해 문제점을 알리려고 하는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최근에만 해도 성형외과에서 발생하고 있는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하는가하면, 치과의 과잉진료 실태를 고발한 의사도 있다.


그러나 이들처럼 의학자로서의 진실을 알리고 양심을 지킨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비난과 시련이 돌아오기도 한다.


최근 ‘양심치과 의사의 눈물’이라는 동영상에서도 알 수 있듯, 부조리를 알린 의사는 치과계에서 공공의 적으로 치부됐고, 유령수술을 비판한 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유령수술 의사를 강력히 처벌해야한다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생체실험’ 등의 발언이 도를 지나쳤다는 게 이유였다. 


베넷 박사 역시 조셉 머룬 박사에게 “당신은 선서를 한 사람이다. 진실을 말하라”고 설득했지만 되돌아온 것은 베넷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불명예였다. 


이는 시작에 불과, 계속된 협박과 미행으로 아내는 유산을 하고, 시릴 박사는 그와 함께 논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FBI로부터 84건의 연방법 위반 혐의를 받고 직위 해제됐다. 결국 베넷은 모든 책임을 지며 사표를 쓰고 캘리포니아 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의학자가 기존의 사회와 환경을 깨뜨릴 수 있는 진실을 밝힌다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줄리안 역시 NFL 뇌손상위원회 회의 참석을 앞두고 “내일 보게 될 사람들은 모두 내가 아는 사람이요. 당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한 느낌 있죠? 그 사람들이 내일 그런 기분을 맛볼 것이요. 나 때문에요.”라며 베넷에게 털어놓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잘못된 의료인들의 행태로 인해 고통 받는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용기를 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의 변화이다. 


최근 들어 국내 의료계에서는 저마다 자정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겠다는 선언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도 불편한 것은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폐쇄적인 행동들이다. 


ⓒ 영화 게임 체인저(Concussion)


영화에서도 풋볼에 의한 CTE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의학자들의 윤리의식에 의한 고백과 개선이 아닌, 마이크와 동일하게 고통 받다 숨진 선수 데이브 두어슨(아데웰 아킨누오예 아바제 분)이 죽기 전 남긴 뇌 기증 유언 때문이었다. 그가 CTE를 인정하고 검사를 해줄 것을 요구한 것인데, 이로 인해 결국 NFL은 숨겨왔던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이 사건은 실제 2011년 5천명이 넘는 NFL 은퇴 선수들이 뇌진탕 발생 위험을 숨긴 풋볼 연맹을 고소하면서 마무리가 됐다. 하지만 이때 역시 NFL은 뇌진탕 연구 등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을 걸고 합의를 하는 선에 그쳤다.


미국은 이 사례처럼 과학이 통했지만 국내는 아직 집단주의에 따른 폐쇄적 환경과 집단이기주의로 인해 과학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경향이 적지 않아 보인다.


집단이 만들어놓은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사회에서 매장되거나 병원 문을 닫아야하는 이가 있는 한편, 아예 분야를 바꾸고 어렵게 살아가야하는 사례도 있다.


영화 속 베뎃 박사의 이야기는, 진실을 말한, 잘못한 게 없는 이가 벌을 받아야만 하는 사례가 더는 없어야하고, 진실을 숨김으로서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억울하게 죽어가는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발전하는 의료기술과 높아지는 국민들의 의료에 대한 요구만큼 과학이, 진실이 받아들여져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베뎃의 말을 통해 전하고 싶다.


“역사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의사 교육을 받아놓고 과학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역사는 비웃습니다. 내 연구를 무시한다면 이 세상도 무시하겠지요. 하지만 사람들, 당신의 사람들은 계속 죽어가고 가족들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진실을 말하십시오. 진실을.”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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