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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46 17년 제3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왜 신 회장은 김사부에게 수술을 받았나?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글. 동욱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1. 한 소년이 응급실로 야구배트를 들고 쳐들어 와서 기물을 파괴한다. 얼마 전 아버지를 잃었던 한 중학생. 아버지보다 늦게 온 옆 환자가 먼저 수술을 받았는데, 그 ‘의원님’이라고 불리는 환자는 살고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던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먼저 왔는데… 그 사람보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먼저 왔잖아요.” 


차별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하는 어린 강동주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그는 한 의사에게 제압당한다. 다친 학생을 치료해주던 그 의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착각하지 마라. 분풀이 좀 했다고 복수가 되는 거 아니다. 야구 빠따 같은 것 백날 휘둘러봐야 그 사람들은 네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할걸? 진짜 복수 같은 걸 하고 싶다면 그들보다 나은 인간이 되거라. 분노 말고 실력으로 되갚아줘. 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2. 그 학생은 결국 일반외과 전문의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전도유망한 의사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던 그 거대 병원으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동년배 외과의사인 원장 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처지를 극복할 수 없음에 좌절한다. 


도 원장의 아들에게 쏠린 관심을 부러워하는 강동주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그러던 중 전직 국회의장이었던 VIP의 수술을 맡으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강동주: “죄송하지만 오늘 수술일정은 모두 잡혔는데요, 과장님.”

외과 과장: “어허 이사람 답답하긴. 그런 거야 강선생이 알아서 조정해야지. VIP를 강선생에게 맡기는 게 무슨 의민지 몰라서 그래?”  

강동주: “환자 케이스가 아주 지랄 같은 모양이죠.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여 책임을 묻기 쉬운 사람이 필요했을 거고, 그 중 제가 제일 만만했던 거 아닙니까?  

예정대로 제 환자부터 수술하겠습니다. Sepsis (패혈증) 환자라 수술을 미루면 상태가 위급해질 수도 있어서. ” 

도윤완 원장: “자네는 왜 의사가 된 거야? 만두집 아들이 죽자 살자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건 결국 성공하고 싶어서잖아. 그럼 기회를 잡아야지. 그때 응급실에 쳐들어와서 몽땅 깨부순 게 자네 맞지? 그래, 자네 말대로 까다로운 케이스야. HCC rupture (간암 파열). 잘해봐야 수술 성공확률 30% 미만. 그래도 기회를 잡으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설마 그 정도 배포도 없이 나랑 맞장 뜨겠다고 이 자리에 서있는 건 아니겠지?” 

 

강동주에게 성공하려면 VIP 수술의 위험을 감수해보라는 유혹을 던지는 도 원장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결국 강동주는 본인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예정된 수술을 미루고 VIP 수술을 감행한다. 그러나, 환자는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강동주는 정선 시골의 돌담병원이라는 거대병원의 분원으로 좌천 발령이 난다. 


#3. 그렇게 돌담병원으로 온 강동주는 김사부라는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14년전 도원장의 간교에 의해 쫓겨났던, 전설의 외과의사 부용주 선생이다. 이 곳에서 그는 여러 사건을 겪으며 김사부의 모습을 본다. 


칼에 찔려 온 환자를 치료하던 도중, 그 환자가 아내와 아이를 성폭행한 파렴치범을 남편이 응징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수술을 중단하라는 남편의 위협 속에서도 김사부는 끝까지 수술을 포기하지 않는다.  


음주 운전으로 6중 추돌 사망 사고를 낸 가해자인 국회의원 아들의 죄책감조차 없는 모습에 어처구니 없어 한마디 한 자신의 제자 윤서정 선생이 곤란에 빠지자, 김사부는 윤서정 선생의 편에 선다.   

 

#4. 하루는 한 젊은이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면서 내원한다. 친구와 함께 온 탈영병. 심한 복부 외상에 의한 장 천공이 의심된다. 군대 내 구타가 의심되는 상항. 사실을 은폐하려는 군에서 연락을 받은 도 원장은 담당의사인 강동주에게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쓰도록 회유한다. 


도 원장: “탈영병에, 저런 놈한테, 구타에 의한 외인사라니 그게 얼마나 민감한 사안이 될지 생각해보고 하는 소리야? 혹여 이 사안이 바깥세상에 알려지기라도 해봐. 인터넷이며 어디며 실체 없는 것들이 또 얼마나 시끄럽게 나대고. 결국 아무 잘못도 없는 중간관리자 목만 날아가고 끝날 텐데. 그거야 말로 정말 무책임한 결론이잖아.” 

강동주: “그래서 저에게 거짓말을 하라는 겁니까?” 

도 원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라는 거야.” 

강동주: “그러니까 거짓말로 사망진단서를, 그것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사망진단서에 서명을 하라는 겁니까?” 

도 원장: “살다 보면 때론 진실보다 침묵이 약이 될 때가 있어.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하면 돼.”


강동주의 손에 들려진, 병사라고 기재된, 서명만 하면 되는 사망진단서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강동주는 고민한다. 그 와중에 거대병원에 있을 때 VIP 수술로 인해 수술이 미뤄져 사망한 환자의 딸이 ‘강동주는 살인자다’ 라는 전단을 가지고 병원에 온다. 다시 한 번 이전의 마음을 깨닫게 된 강동주는 딸에게 사죄하고, 구타당한 장병의 부모에게 외인사로 사망원인을 기재한 사망진단서를 건넨다. 


#5. 거대병원의 이사장인 카지노 업계의 대부 신 회장은 김사부에게 수술을 맡기고자 한다. 이미 달고 있는 인공심장에 문제가 생겨 새 인공심장으로 교체하는 매우 고난도의 수술. 아무리 실력 있는 김사부라도 시골병원에서 하기에는 부담되는 수술이다.


신 회장: “왜 막상 닥치니 겁나냐?”

김사부: ”기존의 인공심장을 제거하고 새 인공심장을 단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성공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가 없을 만큼 사례가 아주 드문 그런 수술이란 뜻입니다.” 

신 회장: “그럼 얼마나 영광이야, 내가 너에게 그런 수술을 할 기회를 줬으니? 왜 자신 없어? 그거 아니면 네가 해.”

김사부: “저를 이렇게까지 신뢰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신 회장: “이미 대답했잖아? 나는 어떻게든 살려고 애쓰는 놈이고, 너는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쓰는 놈이고, 그런 끈질긴 두 놈이 만났으니 살아날 확률이 그만큼 올라가겠지.”

김사부: ”의사는 누구나 자기 환자를 살리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회장님.” 

신 회장: “당장 눈 앞에 수조 원의 돈이 오고 가도 그래도 그럴까?”

김사부: “네?”

신 회장: “잔말 말고 네가 해. 네가 하다 죽으면 최소한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김사부에게 수술을 하라고 하는 신 회장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7. 어느 날 세 명의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다. 유리가 복부에 박혀 온 복부 외상 환자, 장벽 내 공기가 보이는 허혈성 대장염 환자, 그리고 대동맥 박리 환자. 모두가 응급 상황. 강동주는 대동맥 박리 환자부터 수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자 옆에 있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14년 전 그때 대동맥 박리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났던 것. 김사부가 허혈성 장질환 환자부터 수술을 하라고 지시하자, 이에 분노로 울먹이며 질문을 던진다.

 

강동주: “그때 그 VIP수술 환자한테 밀린 게 우리 아버지라는 거 알고 계셨던 겁니까?” 

김사부: “그래. 정확히 기억해. 그날 밤 난 당직이었고 다이섹 (대동맥 박리) 환자와 심근 경색환자가 5분 간격으로 들어왔었어.”

강동주: “그럼 우리 아버지를 제쳐두고 VIP환자를 수술하라고 결정한 게 도 원장이 아니라 선생님이셨습니까? 혹시?”

김사부: “그래, 그 수술 내가 결정한 거다. 급성 type A 대동맥 박리는 한 시간에 사망률이 1%씩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어. 한 시간 내 사망률이 99%인 심근경색 환자와 한 시간에 사망률이 1%씩 증가하는 대동맥 박리환자가 5분간격으로 들어왔는데 너 같으면 어느 쪽 환자부터 수술하는 게 맞겠냐? VIP라서가 아니었어. 위급한 순서대로 내가 결정한 거였어. 그게 진실이야.” 


분노로 울먹이며 김사부에게 그날에 대해 묻는 강동주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그 말을 들은 강동주는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허혈성 장염환자 수술에 들어간다. 수술을 마치고 나와 김사부에게 다시 묻는다. 


강동주: “한번도 그 때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해 보신 적 없으세요? 어쨌든 그 선택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잖아요. 한번도 후회해 보신 적 없습니까?” 

김사부: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자 중에 누굴 선택할 것인가?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난 어쩔 수 없는 그런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강동주: “그렇군요. 근데 제 기분은 왜 이런 걸까요? 무슨 말인지, 빌어먹을 머리로는 다 알아듣겠는데, 왜 난 자꾸만 속은 기분이 들까요? 의사인 나는 어떤 상황인지 다 알아 처먹겠는데, 근데 아들인 나는 왜 자꾸만 열이 받는 걸까요?”

김사부: “그건 나한테 물어볼 문제가 아니라, 너 스스로에게 물어 볼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너는 아버지를 잃은 힘없는 아이가 아니잖아. 의사잖아.”


자신의 아픔이 의사로서의 정직한 선택의 결과였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강동주 ⓒ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이 드라마는 강동주라는 한 소년이 진정한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의 기억, 더 나은 의사가 되겠다는 욕심과 그로 인한 노력, 그리고 그런 그에게 찾아오는 달콤한 유혹과 거부하기 힘든 외압. 


도 원장으로 대표되는 다른 무리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VIP들을 이용하고, 사망진단서에 거짓을 쓸 것을 강요하고, 다른 사람의 성과를 본인들의 성과로 가로채서 홍보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막강한 힘을 가지고 김사부와 같은 사람들을 찍어 누르는 한편, 강동주와 같은 젊은 의사들을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 이용하고자 한다.  


반면, 강동주에게 김사부라는 인물이 보여준 모습은,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고, 다른 상황에 대한 고려 때문에 어떤 환자에게 특혜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환자가 국회의원 아들 같은 VIP이든, 한 가정을 파괴한 파렴치한 성폭행범이든 간에. 


신 회장은 왜 김사부에게 수술을 맡겼을까? 김사부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그의 수술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돈과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환자를 살리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혹 수술을 받다가 잘못되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작년 우리 의료계에는 많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고, 의료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대리 진료 문제, 청와대에서 벌어진 비선의료와 관련된 의사들의 위증, 특정 의료인의 외래 교수 임명이나 특정 기업에 대한 석연치 않은 특혜 의혹 사건 등을 거치면서, 국민들이 가장 그간 가장 신뢰해왔던 대표적 의료기관들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졌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거의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과 다름 없는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둘러싼 여러 이슈는,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정권 교체와 맞물려 사인을 정정하기로 하면서 또 다른 논란을 만들고 있다.  


드라마 중간에 잠깐 아래와 같은 내레이션이 나온다. 


“파벌에 대한 충성심은 미덕이 되고, 신념을 가진 능력자들은 가차없이 용도 폐기 되어버리는 그런 이상한 세상이 되었으니… “


의료 행위에 대한 결정과 의료진의 진단서는 환자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의료인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특정 환자에게 불법적인 특혜 또는 불이익을 주거나, 거짓된 진단서를 작성하여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범죄이다. 본인이 돈을 벌기 위해, 또는 다른 사유로 불필요한 검사나 수술, 허위 진단서를 발급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의학적 결정은 환자에 대한 최선의 이익, 그리고 사회적 책임과 전문가 윤리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다른 고려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배우고 있다. 


강동주는 아픈 경험들을 통해 깨달아간다. 잠깐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한 명의 환자를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 그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던 그 억울했던 경험이 의사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의 결과였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렇게 그는 의사사장님이 아닌, 의사선생님의 길을 가는 의사가 되어갔다. 


※ 본고는 외부 필자의 원고로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