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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50 18년 제1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의사 - 영화 <언노운 걸(The Unknown Girl)>




글. 이창진 기자(메디칼타임즈)





지난해 5월 유럽 동네의원(clinic)의 실상에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해 개봉한 벨기에 영화 '언노운 걸(The Unknown Girl,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은 한국과 너무 다른 유럽의 지역의료 환경과 의사로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지역주민 환자를 왕진하며 진료 중인 제니, 사진 출처: 언노운 걸


영화 '언노운 걸' 줄거리는 동네의원의 초짜 의사 제니(배우, 아델 하에넬)가 신원 미상 흑인 소녀의 변사체 소식을 듣고 죽은 소녀의 행적을 뒤쫓는 형식이다.


진료시간이 끝난 후 흑인소녀는 의원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으나 제니는 자신의 의원에서 수련 중인 인턴 줄리앙(배우, 올리베에 보노)에게 진료시간이 아니니 열어주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소녀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느낀 제니는 의원을 찾아온 내원환자와 왕진으로 찾아간 환자 및 가족들에게 흑인소녀의 신원을 묻지만 모두 모른다고 답한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유럽의 동네의원 시스템이다.


제니는 중증질환으로 입원한 선배 노년의사를 대신해 동네의원을 맡아 간호사 없이 홀로 진료와 수납까지 담당한다.


 <중증질환으로 입원한 선배 의사에게 조언을 받고 있는 제니, 사진 출처: 언노운 걸>


앞서 언급했듯이 인턴 의사가 동네의원에서 수련하는 것도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한국의 경우 대형병원 중심의 수련병원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을 유럽 동네의원에서 보는 셈이다. 


발작하는 어린 환자를 지켜본 인턴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은 트라우마로 의사직을 포기하려 하나, 제니는 의사로서 자질과 초심을 일깨우며 의사의 길을 포기하지 말 것을 조언한다.


여기에 제니가 의원 진료시간 외에 동네 환자들을 찾아가는 왕진 체계도 눈에 띈다. 약속한 시간이나 늦은 밤 환자 및 보호자들의 응급 전화에 왕진 가방을 들고 환자 집에 찾아가 진료와 주사 처지를 하고, 그 자리에서 왕진료를 받는다.


이 또한 병원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및 건강보험공단에 진료내역을 청구하고, 심사를 거쳐 관련 비용을 지급 받는 한국의 의료시스템과는 차이를 보인다.


<인턴 줄리앙을 찾아가 의사직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제니, 사진 출처: 언노운 걸>  


주치의로서 동네 사람들을 직접 방문해 치료하고 노인환자들로부터 쿠키를 선물 받는 제니의 모습은 한 평 남짓한 진료실에 앉아 간호사가 전달하는 진료기록부 순서대로 온종일 진료하는 한국 동네의원 의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물론, 유럽의 동네의원을 운영하는 것도 그리 녹록치 않다.


박사학위를 가진 제니가 의학 관련 연구센터 근무를 제안 받으며 기뻐하는 모습과 입원한 선배 의사가 동네의원을 고집하는 제니에게 낮은 수가를 걱정하는 모습도 영화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의사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한국 의료계는 근거중심의학(EBM)에도 불구하고 현행 수가 산정방식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10여년 넘게 낮은 의료수가의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일명 심평의학으로 불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행위별 심사와 삭감에 지쳐있는 한국 의사들……


이와 달리 유럽의 동네의사는 지역사회 주치의로서 주민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과 동네의원 활성화를 위한 상담료 신설 등 올 한해 의료정책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도 지역사회 속에서 일차의료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적정수가와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라는 당근과 채찍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변사체로 발견된 흑인소녀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며 묘비까지 세워준 유럽 동네의원 의사 제니의 모습이 한국 의료계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이러한 제니의 모습에서 의원과 병원 간 무한경쟁이라는 척박한 환경에 놓여 있는 한국의 일차의료 현실이 아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