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이대로면 제2, 3의 가짜 백수오 사태 벌어진다 건강기능식품 시장 매년 11%씩 성장하지만 사후 관리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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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여성들 사이에서 불었던 ‘백수오 광풍’이 ‘가짜 백수오’로 한 순간에 잦아들었다. 갱년기 증상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백수오 제품 대다수에 가짜 백수오인 이엽우피소가 함유된 사실이 드러나자 사회·경제적으로 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 내에서는 ‘진짜 백수오’의 갱년기 증상 개선 효과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짜 백수오까지 등장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가짜 백수오 사태가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소비자원이 점검하지 않았다면 소비자들은 가짜 백수오를 진짜로 믿고 계속 먹었을 것이다. 백수오가 레이더망에 걸렸을 뿐 앞으로 건강기능식품 중 제2, 3의 백수오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백수오 제품 10%만 ‘진짜’
백수오에 대한 ‘믿음’은 소비자원의 조사 결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비자원은 지난달 22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경기도특별사법경찰단과 함께 시중에 유통 중인 32개 백수오 제품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실제 백수오를 원료로 사용한 제품은 단 3개(9.4%)에 불과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21개(65.6%) 제품은 식품에 사용이 금지된 이엽우피소를 원료로 사용했다. 이들 중 백수오 대신 이엽우피소만을 원료로 한 제품은 12개였으며 백수오와 이엽우피소를 혼합한 제품이 9개였다.
나머지 8개 제품(25.0%)은 백수오를 원료로 사용한 것으로 표시돼 있었지만 백수오 성분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 중 2개 제품은 제조공법상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데도 백수오가 검출되지 않았으며, 6개 제품은 제조공법상 제품에 유전자가 남아있지 않아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소비자원의 설명이다. 이에 소비자원은 수사당국과 함께 이들 업체에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을 공급하는 내츄럴엔도텍의 이천 공장을 방문해 보관 중인 가공 전 원료를 수거해 검사했고, 그 결과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같은 조사 결과에 따라 23개 업체가 문제의 제품을 자발적 회수 및 폐기했지만 원료를 공급하는 내츄럴엔도텍은 강하게 반발했다. 내츄럴엔도텍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2월 실시한 조사에서는 이엽우피소가 검출되지 않았다며 소비자원의 검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소비자원과 내츄럴엔도텍의 공방전은 식약처가 소비자원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다. 식약처는 지난달 30일 내츄럴엔도텍에 보관돼 있는 백수오 원료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재조사한 원료는 소비자원이 검사한 백수오 원료의 입고날짜와 같다. 이엽우피소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지난 2월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지난 2월에 검사한 원료는 입고날짜가 2014년 12월 17일자였다. 입고일이 다른 원료는 재배 농가와 재배지 등이 다를 수 있으므로 동일한 원료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식약처는 또한 소비자원이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한 식품 21개 제품 중 13개 제품을 수거해 검사한 결과, 13개 제품에서 모두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밝혔다(8개 제품 생산 중단). 식약처는 이엽우피소를 이용해 제품을 제조한 업체들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리고 해당 제품을 회수 폐기하도록 하고 내츄럴엔도텍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식약처 인정 4년 만에 생산액 50배 급증
가짜 백수오 사태는 갱년기 여성 사이에 분 ‘백수오 광풍’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소비자원은 “가짜 백수오 유통 원인은 최근 백수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재배기간이 짧고(백수오 2~3년, 이엽우피소 1년), 가격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이엽우피소를 백수오로 둔갑시켜 유통·제조·판매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백수오 생산액은 2011년 40억원에서 2013년 704억원으로 17.6배나 뛰었다. 내츄럴엔도텍이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을 개별 인정형 원료로 인정받은 2010년(4월)에는 생산액이 14억원에 불과했으니, 식약처 인정 4년 만에 생산액이 50배나 증가한 것이다.
백수오 광풍은 홈쇼핑에서도 확인됐다.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의 80% 가량은 홈쇼핑을 통해 판매될 정도로 백수오는 홈쇼핑의 주력 상품 중 하나였다. 홈쇼핑 백수오 매출은 연간 1,000억원대에 이른다는 추정도 나왔다. 내츄럴엔도텍 2014년도 백수오 매출 1,240억원 가운데 75%가 넘는 940억원을 홈쇼핑을 통해 올렸다. 내츄럴엔도텍 제품은 홈쇼핑 6개 업체에서 모두 판매됐다.
백수오 제품 판매에 적극적이었던 홈쇼핑 업계는 가짜 백수오 사태 이후 후폭풍에 휩싸였다. 소비자들의 환불 요청이 빗발치고 있으며 소비자원까지 나서서 적극적인 피해 보상 방안 마련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인도 백수오 광풍에 편승?
일부 의료인이 백수오 광풍에 편승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A홈쇼핑은 내츄럴엔도텍에서 원료를 공급받아 백수오 PB 상품(private brand products)을 제작해 지난 2012년 말부터 판매했다. 당시 A홈쇼핑은 해당 제품을 가정의학과 전문의 B씨와 함께 공동 개발했다고 홍보했으며 B씨는 직접 홈쇼핑에 출연해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 제품은 소비자원 1차 조사에서는 제조공법 상 유전자가 남아있지 않았지만 내츄럴엔도텍에서 가공 전 백수오 원료를 수거해 검사한 결과,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
대한갱년기학회가 지난해 7월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진행한 ‘갱년기 바로알기’ 공익캠페인에도 백수오가 등장해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대처법을 설명하면서 “갱년기에는 식사조절이나 운동 등도 도움이 되지만 최근에는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 같은 갱년기 현상 완화에 도움을 주는 성분이 개발돼 갱년기 대처가 쉬워졌다”고 했다. 당시 이 공익캠페인은 내츄럴엔도텍 후원으로 진행됐다.
문제의 백수오 제품에 의료인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것에 대해 의료계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의사들이 자칫하다가 기업의 상업적인 목적에 이용당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의사 전체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행에 민감한 건강기능식품
백수오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매년 급속히 성장하고 있으며 해마다 유행하는 품목이 바뀌고 있다.
- ▲ 출처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14년 식품산업 분석 보고서' 송수연 기자
‘2014년 식품산업보고서’(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생산액+수입액-수출액)는 2009년 1조1,600억원에서 2013년 1조7,920억원으로 커졌으며 연평균 성장률 11.5%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건강기능식품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체 건강기능식품 생산실적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제품은 홍삼이지만 그 비율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2011년 52.6%→2012년 46.0%→2013년 39.6%). 반면 백수오처럼 새로운 기능성 원료를 사용한 개별인정형 건강기능식품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개별인정형 건강기능식품은 고시된 품목 외에 안전성, 기능성을 개별로 인정받은 기능성 원료로 제조한 것을 말한다.
특히 개별인정형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인기 제품이 매년 바뀌며 유행을 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식약처가 매년 발표하는 건강기능식품 생산실적 분석결과에 따르면 ‘광풍’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백수오의 경우 2013년에는 개별인정형 건강기능식품 중 생산실적 1위를 차지했지만 2012년에는 6위에 머물렀다. 2012년 생산실적에서 1위였던 헛개나무과병추출분말(간건강)은 2013년 백수오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물러났다.
간 건강 개선으로 기능성 인정을 받은 밀크씨슬추출물 제품은 1년 동안 생산이 128%(135억원→308억원)나 급증했으며 유산균 증식 등에 도움을 주는 프로바이오틱스 제품도 55%(518억원→804억원) 증가했다. 밀크씨슬추출물의 급성장은 개별인정형 원료의 독점적 사용권(3년)이 2013년 소멸됐기 때문으로 분석됐지만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은 유산균과 장내 면역, 장내 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식약처는 분석했다.
식약처 관리 체계 구멍
문제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소비자 요구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관리·감독체계는 허술하다는 데 있다. 2개월 만에 뒤집어진 내츄럴엔도텍 백수오에 대한 식약처 조사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는 지적이다. 식약처가 내츄럴엔도텍 제품을 조사한 이유도 부작용 신고 때문이었지만 결론은 “문제없다”였다.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하고 관리할 의무가 식약처에 있지만 인력·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사후 관리는 업체의 자체 품질 검사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기능성을 인정한 제품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내츄럴엔도텍도 원료 입고부터 출고까지 품질관리 규범을 준수하는 우수의약품제조시설(GMP) 인정을 받은 곳이다.
관리시스템 부재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질적 성장이 아닌 몸집만 키우는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허위·과장 광고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부작용 신고도 급증하고 있다. 식약처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2014년 건강기능식품 부작용 추정사례 신고 건수는 1,733건으로 전년도 136건보다 12배나 늘었다. 부작용 추정사례는 신고자가 보고한 주관적 증상을 말하는 것으로 부작용의 원인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2013년 소비자원에 접수된 식품 불만 사례 중 36.7%가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것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지난해 건강기능식품법을 개정해 건강기능식품 제조업 허가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 특별한 사유만 아니면 원칙적으로 허가해 주고 있다. 또 올해 3월부터 편의점과 자동판매기에서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영업장·방문·전화권유·다단계·통신 등 정해진 방식으로만 판매하도록 한 규정도 풀어 모든 판매 방식을 허용했다.
식약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할 때 판매사례품이나 경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가 가짜 백수오 사태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급기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6일 식약처를 국회로 불러 가짜 백수오 사태에 대한 긴급 현안보고를 듣는다. 이날 현안 보고에서는 건강기능식품 관리 체계에 대한 여야 의원들이 질타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가짜 논란보다 더 큰 문제는 건강기능식품의 효능 검증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 중 그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제품은 많지 많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지난 2010년 관절염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틴에 대한 임상연구를 분석한 결과, “치료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없었다”고 밝혔다. JAMA(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미국의사협회지)는 지난 2012년 심장과 혈관 질환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오메가3에 대한 부정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명승권 박사는 “현재 건강기능식품제도 자체가 엉터리이고 비과학적이다. 생리활성기능에 대한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제품으로 만들어서 팔고 있는 그 자체가 문제”라며 “가짜 백수오 논란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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