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기호(국립암센터 암정책지원과)
상상을 해보자. 여기는 빌딩 숲이다. 고층 빌딩 숲 사이로 걸어가는 당신의 머리위로 비가 내린다. 그런데 구름에서 내리는 물방울이 아닌 종이비다. 각양각색의 정보와 홍보성 내용을 담은 종이들이 휘날리며 내리고 있고, 이미 수북이 쌓인 종이는 발목 위까지 차올랐다. 서걱 서걱 소리를 내며 종이 더미 위를 밟는 당신의 머리 위에도 작은 쪽지들이 내려앉는다. 이제는 종이의 내용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으려고 해도 각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종이들의 요란한 색깔에 눈이 아파온다. 이와 같은 광경은 각종 정보 매체와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방류’되고 있는 정보의 급류에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 정보 소비자들에게 어떤 건강정보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물론 ‘좋은 정보’다. 그런데 좋은 건강정보란 대체 뭘 의미할까?
좋은 건강정보는 먼저 과학적 정보이어야 한다. Nelson 등(2009)에 따르면 과학이란, 가설과 추론을 사용하여 현상들에 대한 일반화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동일분야의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동의를 획득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수행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의 요체이다. 또한,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으로 정의된다. 과학이 이와 같이 정의될진대 건강정보 또한 이와 같은 과학의 속성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Turnock 등, 1997). 과학 정보로서의 건강정보의 질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연구 측면의 속성으로서 연구 디자인, 대표성, 원인-결과 관계가 있으며, 둘째, 과학적 합의 수준, 셋째는 정보원으로서 저자나 기관 또는 출판 매체의 질적 수준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왜 똑같은 정보가 누군가에게는 흥미 있게 다가가고 나아가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외면당하거나 버려지는 걸까? 이는 각 정보가 정보를 취하는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즉, 개인의 흥미, 문화, 관점(가치관, 세계관), 정보 매체에 대한 신뢰, 정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신념, 개인 또는 사회가 품고 있는 감정 등에 따라 동일한 정보라도 전혀 다른 반향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의 특성에 따라 정보의 소통 효과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정보 소비자가 해당 정보를 어떻게 자신과 관계를 맺는가하는 것이 정보의 영향력에 있어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즉, 지금 이 정보가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의 삶 속에서 어느 정도나 마주칠 수 있는 위험을 다루고 있는 것인지, 어느 정도 심각한 문제인지를 인지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2013년 국내 자살 사망자 수는 14,427명인데 이는 마치 13일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나거나, 5일마다 대구지하철 사고가 나거나, 3일마다 KAL기 폭파 사고가 나서 귀한 목숨이 희생되는 것과 같은 참사이다. 그러나, 많은 건강정보들이 해당 건강 문제의 크기와 심각성과 비례한 호응을 항상 얻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요인들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 작용성을 고려하여 생산, 가공, 유통되는 건강정보가 좋은 정보라고 할 수 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건강정보의 주된 생산자들)이 생각할 때 정보 소비자들이 반드시 알았으면 하는 정보와 소비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는 아래 그림과 같이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때, 전문가들과 소비자들간의 정보 유통이 ‘바람직한’ 경우는 ‘근거가 있는 정보’의 경우로 국한된다. 정보의 근거 유무와 근거의 확실성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우리 국민들이 꼭 가졌으면 하는 것이 있는 데, 바로 건강 문제를 보는 거시적 안목이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인구 건강 연구소에 따르면 우리의 건강에 대한 건강 행동의 기여율(설명력)은 30%에 불과하며, 의료 서비스가 20%, 물리적인 환경이 10%, 그리고 사회경제적 요인이 40%나 차지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높은 수준의 건강은 개인의 노력만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개인이 속한 사회와 국가의 책무도 상당히 크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고 건강 보호, 보장 및 증진을 위해 지역사회 및 국가가 노력할 것을 정당히 요구하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제한된 자원 하에 어떤 건강정보를 우선적으로 유통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해당 정보에 대한 소비자들의 숙지 수준, 해당 정보가 다루고 있는 건강 문제가 사회 전체의 건강 부담에 대해 차지하는 기여율(영향력), 해당 건강 문제의 예방 가능성 및 위해성을 고려하되, 근거 수준과 정보의 최신성을 검토하여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겠다.
|
근거 부족 또는 없음 (동물 근거 포함) |
근거 충분 | ||
이미 알려진 정보 |
새로운 정보 | |||
숙지 수준 |
양호함 |
- |
하 |
해당 없음 |
낮음 |
- |
상 |
해당 없음 | |
기여율 |
양호함 |
- |
중 |
상 |
낮음 |
- |
하 |
중 | |
예방 가능성 |
양호함 |
- |
중 |
상 |
낮음 |
- |
하 |
중 | |
위해성 (생태학적) |
양호함 |
- |
중 |
상 |
낮음 |
- |
하 |
하 |
참고문헌
1. Nelson et al. Making data talk. 2009.
2. Turnock BJ. Public health: What it is and how it works. Gaithersburg, MD: Aspen;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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