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죽음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 영화 <목숨>

 

글. 신동욱 교수(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가정의학)

 

박수명씨는 맞벌이를 하던 아내, 그리고 아들, 딸을 둔 중년의 아버지이다. 위암 말기를 진단받고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하였다. 수녀님과 함께 병동에서 쿠키와 뽕잎차를 두고 담소를 나눈다. 작년에 장모님을 호스피스로 보내드릴 때 까지만 해도 본인이 말기암이 되어 이곳에 올 줄 몰랐다고 한다.

 

<병동에서 수녀님과 담소를 나누는 박수명씨 부부, 사진 출처: 목숨>

 

박수명씨 : “세상일은 알 수 없다고 저희 장모님이 여기 왔었거든요.”

아내 : “네, 작년 9월 19일날 저희 어머님이 여기서 돌아가셨거든요. “

박수명씨 : “저 인형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수녀님 : “맞아요. 그랬던 기억이 나요.”

박수명씨 : “제가 이렇게 올 줄은 생각도 못했죠.”

 

주말에 아이들이 왔다. 자고 갈 생각이 없던 아들에게, 엄마는 자고 가라고 한다. 아들은 내심 놀러가고 싶지만, 가족간의 대화 분위기는 밝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수명씨, 사진 출처: 목숨>

 

아들 : “어? 오늘 자고 가는 거야?”

아내 : “응, 그럼 너 오늘 가는 줄 알았어?”

아들 : “엄마가 오늘 하루만 있는다고 그러지 않았어? “

아내 : “오자마자 아빠 속을…… 지난번에도 너 집에 가서 아빠가 삐쳤잖아. 너 모르냐? 아빠가 열받아 가지고.”

박수명씨 : “열받은 게 아니고 서운했지. 이 녀석이 씩 웃으면서 집에 간다고 그러길래.”

아내 : “아빠가 항암주사 맞는 날 너 집으로 갈래. 포천으로 갈래. 하니까 금방 집으로 간다고 그랬잖아. 아빠가 삐쳐가지고 엄청 서운해 했어. 근데 오자마자…… “

 

박수명씨는 침대에 누워 수녀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죽음에 대해 직면하는 시간이다.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며, 두고 갈 아들 녀석이 마음에 걸린다.

 

<수녀님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박수명씨, 사진 출처: 목숨>

 

박수명씨 : “여한도 없고, 그냥 훌쩍 갈수 있고, 그 동안 살아온 것에 다 만족하는데, 가장 마음에 걸리는게 아내하고 아이들. 그나마 아내하고 예닮이(딸)는 좀 철이 들어가지고 괜찮아 보이는데 아들 녀석은 딱 그맘때 제 모습. 엄마 돌아가실 때 제가 17살이었는데, 장례 다 치를 때까지 현실감이 없더라구요. 장례하고 나서 엄마가 퇴근할 시간이 됐는데 나가서 기다리게 되더라구요. 울 것만 같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으시더라구요. 그때서야 이별이 뭔지, 죽음이 뭔지, 그때 알게 되었어요……“

수녀님 : “근데 이거는 박수명님만 준비가 되어야 되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부인도 함께 준비가 되어야 되는 거에요.“

 

그 사이에 함께 병동에 있던 김정자씨가 돌아가셨다. 함께 있던 환자의 죽음은 박수명씨에게도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돌아가신 이의 방을 서성거리는 박수명씨, 사진 출처: 목숨>

 

박수명씨 : “산책을 나가게 되면 이렇게 방들을 쭉 둘러봐요. 잘 계신가 하고. 이렇게 이름들을 보면서 가는데 아홉시? 여덟시 반인가 이름이 없더라구요. 어디 가셨지? 다른 방으로 옮기셨나? 환자 명단 보니까 이름이 지워지고 그 방이 제비꽃방이었는데 ‘청소’라고 써있는 거에요. 그날은 정말 잠을 못 잤죠. 그날 그분 가시고 새로 오신 분 또 한 분 가셨는데, 그날은 너무 마음이 안 좋았죠. 한편으로는 이제 자유롭겠구나.”

 

박수명씨는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해 있지만, 항암치료도 여전히 병행하고자 하여 병원에 간다. 그러나 백혈구 수치가 낮아 조혈촉진제만 맞고 항암치료는 보류하게 된다. 박수명씨가 더 이상 무의미한 항암 치료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호스피스의 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는 호스피스 원장 의사 선생님, 사진 출처: 목숨>

 

호스피스 원장 선생님 : “이분(박수명씨)이 암이 발견되었을 당시 이미 4기를 지났던 환자고, 점점 더 급속도로 나빠지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조금 편해지면 다시 항암치료를 하자는 여운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환자가 느끼는 건 항암치료로 치료가 가능할 수 있다는 이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그런 양면성을 가질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희망의 종류를 현실적인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수명씨는 한편으로는 가족들과 함께 강릉으로 여행을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병동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즐겁게 지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암을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놓기 어렵다. 호스피스의 원장 선생님은 현실적인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박수명씨도 조금씩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박수명씨 : “그 동안 잘 지냈지.”

 

<가족들과의 강릉 여행, 사진 출처: 목숨>

 

<다른 환자들 앞에서 마술 시범을 보이는 박수명씨, 사진 출처: 목숨>

 

그러는 와중에 함께 병동에서 지내던 전직 수학 선생님인 박진우씨가 돌아가셨고, 박수명씨는 아내와 함께 그의 병실을 찾고 울음을 터뜨린다. 박진우의 임종 후 박수명은 항암치료를 위해 호스피스를 떠나 다시 암센터에 입원했다.

 

<생전에 박진우씨 생일파티로 의사, 간호사, 환자가 모두 모여 막걸리 한 잔을 함께 하던 모습, 사진 출처: 목숨>

 

<박진우씨의 임종실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는 박수명씨, 사진 출처: 목숨>

 

박수명씨 : “그때는 이렇게 그냥 가는 것도 참 좋겠다. 나름대로 여한 없이 열심히 살았으니까. 이대로 가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와이프가 집에 오니까 그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병원에서 그 일이 있고 나서 당신이 하루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식물인간이 되어도 좋으니까 옆에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이야기하더라구요. 내가 내 생각만 하고서 가는걸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어가지고 최대한 옆에 있어줘야겠다 이 생각으로 좀 바뀌었죠.”

 

<암병동에 입원하여 항암치료를 받으며 소회를 밝히는 박수명씨, 사진 출처: 목숨>

 

벛꽃이 떨어지는 암병원 마당에서 박수명씨와 아내가 이야기를 나눈다.

 

<벚꽃 떨어지는 날, 세브란스병원 정원, 사진 출처: 목숨>

 

박수명씨 : “내가 암에 걸렸나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어떻게 암에 걸렸지?”

아내 : “그러게, 꿈이었으면 좋겠지.”

박수명씨 : “긴 꿈……”

 

박수명씨는 딸의 결혼식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딸과 함께 웨딩 사진 같은 가족사진을 남긴다.

 

<마지막 가족 사진 촬영, 사진 출처: 목숨>

 

박수명씨 : “아마 평생 건강했으면 깨닫지 못했을 것들을 지금 깨달으면서, 나한테서 큰 걸 빼앗아갔지만, 그에 못지않은 큰 걸 주셨구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 이 시간인 것 같아요.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대하고, 아이들 기억 속에 밝게 웃는 모습으로 남기를……”

 

사진 촬영 다음날 박수명씨는 호스피스로 다시 돌아갔다. 두 달 후, 그는 가족들의 품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

 

2014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목숨’. 이 영화는 실제 포천에 소재한 모현 호스피스에 입원한 몇 명의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이 죽음을 앞두고 보내는 시간을 따라간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몇 명의 환자들이 나오지만, 박수명씨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엮어진다.

 

호스피스 기관은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을 계획이 없는 환자들이 통증을 조절하고, 심리사회적인 돌봄, 영적인 돌봄을 받으면서 편안한 삶의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이 영화에서도 수녀님이 환자와 함께 차 한잔을 놓고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원장의사 선생님이 환자들과 함께 심지어 병동에서 술도 한잔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의사선생님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모습, 수녀님이 죽음을 앞둔 깊은 절망감과 영적 고통을 다루어 주는 모습 등을 통해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의료기관과 다른 모습을 알 수 있다.

 

박수명씨는 위암 말기이며 앞으로 3개월 정도 남았다는 말을 듣고 호스피스 기관에 입원했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곳이라 더 익숙한 곳이었을 것이다. 박수명씨도 이곳에서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죽음의 고통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아내와 아이들과 삶을 정리하면서 마지막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시 병원에 가기도 한다. 복수를 빼내면 힘이 없다고 복수를 충분히 뽑아내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영화에서도 호스피스 원장님께서 박수명씨와 아내에게 암을 이길수는 없다고, 헛된 희망 대신 현실적인 희망을 가지라고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다른 환자의 죽음을 보면서,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하루라도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다시 암병원에 입원하여 항암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연명의료법이 통과되면서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가 법제화되었다. 그러면서 과도한 항암치료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임상 현장에도 조금씩 정착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박수명씨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목숨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가도 다시 마음이 바뀌고, 결국 하루라도 더 살겠다며 다시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진다. 이 영화가 호스피스를 홍보하는 영화라기보단, 죽음을 앞둔 한 개인의 마지막 모습을 충실히 담아낸 다큐멘터리라고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암치료에 대해서는 임종 두 달 전까지도 그렇게 갈팡질팡하였지만, 그가 호스피스에서 보낸 시간은 박수명씨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수녀님과 함께 나누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고, 부부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추억하며 서로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고, 딸과 함께 미리 웨딩 사진을 찍으면서 자녀들 또한 아름답게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연명의료와 호스피스에 대한 법률이 발효되었고, 관련 정책이 도입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전 돌봄 계획의 핵심은 환자가 자신의 예후와 치료의 장단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인데, 현재는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 수준으로 설명되고, 사실상 강요되는 경우도 많다. 의사와 환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기관은 지원사업을 통해 전국적으로 기관수가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믿을 만한 시설에 쉽게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 많다. 또한 암치료는 점차 발전하여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 기간에는 증상관리와 영적 돌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항암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한 경우에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여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도 단지 죽음을 준비하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한 실존 인물의 죽음에 대한 솔직한 기록을 통해 영화 ‘목숨’은 누구에게나 죽음은 예고 없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마음처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문제이며, 남은 자들에게도 아름다운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사회문화적인 변화와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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