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날 보러와요, 정신보건복지법으로 보는 정책결정의 문제점
글. 신동욱 교수(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 유명 시사 프로그램인 추적 24시의 스타 연출자였던 나남수 PD(이상윤 분)는 대기업 비리 폭로 과정에서 생긴 조작방송 문제로 좌천되어 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국장의 제안으로 맘에 들지 않은 귀신 관련 TV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는데, 이를 다루다가 화재가 난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는 강수아(강예원)라는 한 여자의 수첩을 보게 되어 흥미를 가지게 된다.
나 PD가 이 사건을 캐보니, 입원 환자의 수와 사망자의 수가 맞지 않는 등의 의문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강수아가 의붓아버지였던 강병주 경찰청장의 살해 용의자라는 것, 그리고 정신병원 원장이 강병주 청장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
나 PD는 정신병원에 입원 감호되어있는 상태의 강수아를 찾아가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한다. 강수아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 정신병원원장은 환자들의 장기를 적출하여 팔기도 하고, 환자들을 성폭행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의붓아버지 강병주가 어린 시절 자신을 강간했고, 성장 후 폭로가 두려워 정신병원에 넣었고, 본인은 탈출하다가 다시 잡혀왔다는 것. 강수아를 구하러 온 연인도 함께 잡혔다가 결국 화재가 일어난 날에 정신병원장에게 살해당했고, 화재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강수아가 강병주를 따라갔는데, 강병주가 권총으로 스스로 자살을 했고, 그 자리에서 강수아가 체포되었다는 것.
나 PD는 이 내용을 ‘추적 24시’를 통해 폭로함으로써 다시 스타 PD가 되었고, 강수아는 무죄판정을 받고 풀려난다. 풀려난 강수아는 집에 도착해서 조용히 나 PD에게 수첩과 볼펜을 건네주면서 "그 병원에서는 이런 뾰족한 건 못쓴다"는 얘기를 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즉, 정신병원에서 수첩에 일기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강수아의 진술은 거짓이었던 것이다.
진실은 강병주는 강수아의 엄마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은 것이었고, 강수아가 어머니를 구하려고 정신병원에 갔던 것이고, 실제 강수아가 강병주를 총으로 쏴 죽인 것이었다.
# 한 여자가 백주 대낮에 거리에서 납치되어 정신병원으로 잡혀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2016년 ‘정신보건법 24조’ 강제입원에 관련한 사회적 논의와 맞물려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영화이다. 나도 어쩌면 이유 없이 납치되어 정신병원에 감금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유발하였는데, 실제 영화 개봉 후 한달만인 2016년 5월 19일에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1년 후인 2017년 5월부터 개정된 ‘정신보건복지법’이 시행되게 되었다.
개정 전의 정신보건법은 1995년 만들어진 법으로, 가족의 의무와 권한이 함께 있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보호자가 병원에 데려오지 않거나 못하면 치료가 제공되기 어려웠고, 거꾸로 보호자가 꼭 필요하지 않은 입원을 상속 등과 관련한 이해관계에 의해서, 또는 부양 부담감 때문에 강제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이 감금, 격리, 수용 위주에서 치료의 대상으로 전환되면서 법 개정의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기존의 정신보건법의 문제는 해결이 안되고,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는 지적마저 나왔다. 정신질환자들의 가족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법 시행부터 2년도 더 지난 2019년 6월 현재, 몇 년 된 영화를 끄집어내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간 이 법안의 개정 내용과 그 과정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 법 개정 이후 몇 건의 안타까운 사고들이 일어났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2019년 4월조현병환자 안인득씨가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하고, 15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이다.
안씨는 편집형 조현병 환자로써 2011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치료를 받았다가 치료를 중단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안씨의 가족들은 안씨가 도로에서 둔기를 들고 소란을 피우는 등의 문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안씨의 입원을 위해 환자의 위임장을 요구하였으나 환자의 동의를 받을 수 없었고, 가족들이 경찰, 검찰, 법률 구조공단, 지방자치단체 등 관공서들을 방문하면서 상담해도 답을 주지 않는 사이 2주가 지나고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현행 법상으로는 환자가 자의 입원을 하지 않는 경우, 강제입원을 하려면 1) ‘보호입원’은 보호자 2인의 동의뿐 아니라 소속이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의 입원 치료 필요성을 진단 해주어야 하고, 2) ‘행정입원’은 정신과 전문의나 경찰이 지방자치단체에 입원을 요청해야 하고, 3) ‘응급입원’은 자해, 타해의 위험성이 높은 환자에 대해 경찰 1명과 의사 1명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는 결국 정신전문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을 근거로 판단을 하는데, 안인득씨 사건과 같은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전문의 진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환자가 진료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 안인득 사건이 안타까운 것은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이 여러 전문가들의 경고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충분한 준비 없이 진행된 점이다. 실제로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은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19대 국회 회기 말에 졸속으로 심의 및 통과되었다. 이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1. 여론에 민감하고, 전문가 집단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실제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신보건법 24조의 문제와 연결시킨 마케팅으로 인하여 마치 이 법을 비판한 영화인 것처럼 인식되었다. 물론 드문 사건들에서 강제입원의 폐해가 있었고 이는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묘사된 정신병원의 이미지- 수용소와 같고, 강간이나 심지어 장기 밀매가 이루어지는 곳- 는 이 이슈에 대한 적합한 판단근거나 예시가 아니다. 그리고, 보호자와 짜고 부적절한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시키는 것은 사실 범죄로서 형법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지, 정신보건법의 입원 기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법 개정 이전부터 보호자와 의사들에게 강제입원 결정에 대한 책임을 미루지 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신질환자 입원 여부에 개입하는 사법입원제도를 주장해왔다. 수사기관, 특히 경찰이 강제입원을 위한 이송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환자가 전문의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또한 외래 치료 명령제의 현실화를 통해, 적절한 외래 치료를 받지 않는 정신질환자는 강제 입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제안되었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이러한 전문가집단의 대안들 대신, 여전히 보호자가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입원시키는 절차만 복잡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가족들만 더 힘들게 만들어버렸다. 실제 안인득씨의 경우 사건 전 약 1년 반 동안 외래치료를 받지 않았고, 사건 전 몇 개월간 몇 차례 경찰 조사를 받을 때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함으로써 자해 및 타해의 우려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은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한 예로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는 문재인 케어에 대해서 많은 의료계 전문가들은 수가 보전을 요구하고, 대형병원 쏠림 현상과 재정고갈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정책결정 담당자들은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상급의료기관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었고, 건강보험공단은 재정부담으로 인해 수가 인상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태이다.
2. 투자가 필요한 근본적인 해결방안 대신,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구 정신보건법에서는 보호의무자 1인의 입원동의를 필요로 했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은 2인으로 기준을 강화했다. 또 최초 정신과 의사의 진단 이후 2주 내에 다른 국공립병원의 전문의가 추가로 진단할 경우 3개월간 입원시킬 수 있도록 했는데, 한 사람이 진단하던 것을 두 사람이 하는 것으로, 입원 후 6개월이 지나서야 재평가하던 것을 2주 후, 3개월 후에 하는 것 등으로 절차를 강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응급입원의 경우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자ㆍ타해 위험성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만 해당돼도 강제입원이 가능했으나, 개정안은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입원이 가능하도록 강화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심사는 주로 서류에 의존하고 있어 부실한 심사가 될 수 밖에 없고, 2차 심사에 대한 의무와 책임만 의사에게 지우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2차 심사가 독립적으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력낭비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다.
또한 조현병 학회는 “현재 개정된 정신보건복지법 등으로 인해 조현병 환자의 치료와 보살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며, 해당 법을 재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부 병원들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신병원들은 그간 정신질환자들에 대해서 치료와 보살핌을 제공하던 곳이다. 그러나 법안에서는 각종 절차만 강화되었을 뿐, 정신질환자들에 대해서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은 빠져있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정신병원 입원비는 평균 45,400원이다. 참고로 미국의 정신질환 보호 병동의 입원비는 700불, 한화로 80만 원에 해당한다. 하루 45,400원으로 정신병원을 수용시설처럼 운영하지 않고, 적절한 입원 치료와 사회복귀를 위한 재활의 장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제입원 문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논의가 이루어지다 보니, 정신질환자의 적절한 치료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것이다.
유사한 사례가 연명의료법이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환자가 자신의 치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전 돌봄 계획(Advance care planning)이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의사-환자-가족 간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재정적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다 보니, 결국 절차만 더 복잡해진 심폐소생술 금지 각서(DNR form)이 되어버렸다.
#불행한 일이지만 안인득 사건 이전에도 강북삼성병원의 임세원 교수님께서 환자로부터 피습되는 사건이 있었다. 복지부는 이에 소위 임세원법이라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내놓았으나, 정신병적 증상으로 자해, 타해 위험이 있는 사람이 퇴원할 때 그 사실을 정신건강복지센터장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것도 근본적인 개선이 되지 않았다.
정책 결정과정이라는 것이 모두 합리적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고, 때로는 영화 한 편이 일깨우는 감성이 큰 변화의 동인이 됨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이 함께 경청되고 반영되지 않을 때, 그리고 필요한 비용투자 없이 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할 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
5월 시행 정신보건법 개정안 논란: 강제입원 막으려다 10만 정신질환자 치료 놓칠라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nNewsNumb=20170424213&nidx=24214
진주 살인범 안인득은 왜 정신병원에 입원 못했나
전문가들 "보호의무자 제도 무용지물…임세원법도 알맹이 다 빠졌다"
http://www.medicaltimes.com/Users/News/NewsView.html?ID=1125937
초점. 제 2의 안인득 사건을 막을 방법 정말 없을까?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520
안인득, 병원 진단 거부에… ‘강제입원 3종’ 무용지물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422/95158764/1
개정 정신보건법은 졸속행정 대명사, 17만명 입원심사할 전문의 고작 10여명
https://www.medigatenews.com/news/3930600986
조현병학회 "조현병 환자 치료시기 중요, 정신복지법 재개정해야"
http://www.medigatenews.com/news/745874583
수 만명의 정신질환자들이 거리로 나와도 의사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https://m.blog.naver.com/ipudo/220973504044
[인터뷰] 정신건강복지법의 문제점 –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이동진 교수
http://www.knpanews.or.kr/news/articleView.html?idxno=16
정신병원을 혐오시설로 지정한 조례•하루 4만5400원에 불과한 입원비…주민도, 의사도, 환자도 사랑하지 않는 정신병원
http://www.medigatenews.com/news/3289005647?fbclid=IwAR3rLoHfo5V5KrhctFC8TdMP8ZH4-xQ6nd48QwKQFXB55QnzYMlf-VbFn_c
"비급여의 급여화, 수가보전•쏠림현상 걱정할 것 없다"
https://medipana.com/news/news_viewer.asp?NewsNum=205259&MainKind=C&NewsKind=5&vCount=12&vKind=1
'같은 영화 다른 시각, 양금덕 기자가 본 <날, 보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