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노인이거나 노인이 될 사람들

-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글. 안순태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

 

12부작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10편은 주인공 혜자의 독백으로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꾼 건지.”

 

<노인이 된 주인공 혜자의 모습, 출처: 드라마 ‘눈이 부시게’>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결말을 향해가면서 밝혀진 반전은 10편까지 등장했던 엄마, 아빠, 오빠, 남자친구가 실제로는 주인공의 며느리, 아들, 손주, 의사였다는 사실이다. 극 초반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우연히 얻게 된 혜자는 이를 종종 사용하여 위기를 모면하지만 그 시계를 사용할 때 마다 나이가 든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사용을 중지한다. 그러나 어느 날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를 막으려고 시계를 여러 번 되돌리다 70대 노인이 되어버린다. 갑자기 몸이 늙어버린 25살 주인공이 주변사람들과 부딪히며 일어나는 엉뚱하고 때로는 유쾌한 이야기는 치매로 인한 왜곡된 기억으로 밝혀지고, 주인공 혜자의 70여년 굴곡진 삶의 단편들이 조각조각 맞춰진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포스터>

 

‘눈이 부시게’는 10편의 반전을 통해 노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몸은 노쇠하지만 마음은 25살인 혜자를 통해, 노인이라는 집단이 말 그대로 나이가 든 사람, 老人일뿐 생각과 마음은 젊은 세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어느 시점에 겪어야 할 삶의 일부분으로서 노인을 되새기게 한다. 우리 모두는 노인이거나 언젠가 노인이 될 사람들이라는 중요한 자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 증상은 치매 환자의 시각에서 조명된다. 혜자의 치매를 통해 우 리는 치매 환자가 보는 세상, 그들이 겪는 치매 증상의 의미를 새로운 틀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치매로 인해 70여년의 가슴 아픈 삶의 단편들이 기억 속에서 행복하게 승화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극화된 설정은 여전히 생각하고 느끼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 치매 환자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반복적으로 재현되어온 치매 환자는 주변인에게 고통을 주는 객체로서 노인의 모습이었다. 이는 무능력하고 짐이 되는 고집불통의 편협한 노인이거나, 한없이 무기력한 불쌍한 노인이다. 이러한 치매 환자의 타자화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연결되거나 짐이 되고 폐를 끼치는 사회구성원으로 노인을 바라보는 편향된 인식에 일조해왔다. 물론 치매 환자와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한 공감은 중요하다. 그러나 치매 환자의 낙인화는 돌봄의 대상인 환자나 가족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낙인은 흠집이 있는 것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만들고, 낙인의 대상을 위축시키고, 무기력하게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고통과 연민의 대상에 치우쳐진 노인의 모습은 치매 노인뿐만 아니라, 노인 집단 전체에게 심적 위축감과 자괴감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노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된다는 것은 피하고 싶은, 기다려지지 않는 생의 일부분이 되어버린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우리 모두를 작게 만들 수 있다. 다른 질병이나 집단에 대한 낙인과 달리, 노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우리 모두가 경험하게 되는 낙인이기 때문이다. 정작 피해야 할 것은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을 흠이 있는 부족한 존재로 인식하는 사회적 낙인이다.

 

‘눈이 부시게’ 주인공 혜자는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치매 환자에 머물 지 않는다. 주인공의 기억 속에 비춰진 혜자와 노인들은 주체적이고 역동적이며 더 나은 내일 을 꿈꾸는 위축되지 않는 노인들의 모습이다. 단지 걷다가 자주 앉아 쉬어야 하고, 좀 더 일찍 잠이 들고, 좀 더 일찍 잠이 깨어 하루를 시작하는, 그러나 아직도 젊은 꿈을 꾸는 나이든 모습일 뿐이다.

 

혜자의 아들은 어머니의 치매를 이렇게 전달한다: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십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쩌면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간 속에 살고 계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절름발이 외아들을 힘겹게 키어온 혜자의 70여년은 치매로 인해 더 이상 굴곡진 고달픈 삶이 아니다. 아들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서 치매의 고통과 연민에 함몰되지 않는다. 기억의 여행을 떠나는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마지막 동행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비록 그 기억의 여행이 극화된 설정일지라도 그 안에서 온전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혜자를 우리 모두는 따듯한 눈물로 배웅하게 된다. 그리고 힘겨운 우리 삶의 무게를 우리의 기억들로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것들, 그리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까지 우리 삶의 소중한 일부분임을 깨닫게 된다.

 

‘눈이 부시게’에 비춰진 노인의 모습은 피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모습이며, 젊은 꿈을 꾸는 나이든 우리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눈물과 웃음이 함께 어우러진 그 모든 기억들로 인해 혜자의 마지막 여행이 외롭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돌이켜보면 힘겨운 하루, 별거 아닌 하루라도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혜자의 독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따듯하게 위로한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기억을 잃은 혜자가 우리 삶의 소중한 기억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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