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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56 19년 제1호] 보건의료이슈 :: 정신건강을 위한 안전하고 차별 없는 진료환경

보건의료이슈

정신건강을 위한 안전하고 차별 없는 진료환경

 

글. 백종우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 경희의대)

 

2018년 12월 31일 발생한 고(故) 임세원 교수의 비극을 통해 우리사회가 어떠한 논의를 진행해야할지는 유가족의 호소로 시작되었다. 처벌과 격리에 대한 사회적 주장이 비등해질 상황에서 유족은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치료환경 조성을 고인의 유지로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떠한 제도와 변화를 만들어가야 할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사례1

심각한 타해의 병력이 있는 한 환자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으로 치료 중이다. 치료비에 부담을 느낀 어머니는 자식의 퇴원을 주치의에게 요청하였고 주치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퇴원하였다.

 

사례2

자해 및 타해의 위험이 있는 한 환자가 지역사회에서 발견되었다.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관에 의해 응급정신건강병원 지정응급실로 이송되었고 72시간 동안 입원되었다. 위험은 지속적이었고 주치의는 법원의 심사를 청구하였다. 소규모 청문회가 열렸고 절차보조인이 환자를 대리하였다. 이를 담당하는 법정은 정신질환 전문 판사를 비롯하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그리고 전문치료기관 담당관 등이 참여하여 이후의 치료와 사회복귀까지 관여한다.

 

사례 1은 한국이다. 작년 영안 경관 사망사건에서 실제 발생하였던 상황이다.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환자는 조현병으로 입원한 경력이 있었고 7년전 폭행치사의 전력이 있음에도 입원비가 부담되었던 노모에 의해 조기퇴원하였다 퇴원 후 치료는 중단되었고 증상이 악화되어, 경찰이 몇 차례 출동하는 응급상황이 이어지다가 결국 경관이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사례 2는 미국이다. 자해 및 타해의 위험에 대한 안전의 확보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며, 항상 신체구속이라는 인권문제가 제기되는 강제입원의 결정은 법원을 통해 이루어진다. 법원도 입원뿐 아니라 치료와 사회복귀까지 이어지는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유지되어 모든 책임은 노모인 가족의 손에 맡겨진다. 이들을 지원할 시스템은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 퇴원환자는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계될수 있는데, 현재 비율은 5%미만이다. 지역사회에서의 치료를 의무화하는 외래치료지원제는 작년 한해 전국에서 4건 시행되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전국에 설치된 것은 분명한 진보이나 의료서비스를 갖추지 못했고 한 명의 사례관리자가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100여명을 관리하는 있는 실정이다. 예산은 건강증진기금을 통해 지원되나 직원의 근무안정성은 낮다. 반면 미국의 지역사회 사례관리시스템은 의료보험이 지원한다. 정신과병동을 지역에 옮겨놓은 것과 같은 적극적 지역사회 치료프로그램(Assertuve Community Treatment)을 통해 매일 정신건강전문가가 집을 찾아가서 스트레스와 투약을 관리하고 투약을 원치 않으면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처방하여 재발을 막는다. 중증정신질환자 100명당 전문의 1명과 10-15명의 정신건강전문요원 그리고 회복한 동료상담가가 팀을 이루어 이들을 지원한다. 대부분 입원경력이 있으나 서비스 도중 입원하는 경우는 1-2건에 불과하다.

 

이제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비율에서 1위를 차지하는 변화된 인구구조에서 더 이상 환자와 가족에게만 중증정신건강 문제의 책임을 떠넘겨서는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좋은 치료환경을 제공하여 스스로 조기에 치료받는 환경의 조성,지역사회에 다양한 커뮤니티케어서비스 도입,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건강에서 공공의료의 책임성이 강조되어야할 시점이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 중 4명중 1명은 전 생애에 걸쳐 한번 이상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의 문제 발생시 우리 국민 중 약 15%만이 정신건강서비스(의료+상담의 평생이용률)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미국 39.2%, 호주 34.9%, 뉴질랜드 38.9%(1년 이용률)에 비하여 매우 낮은 실정이다. 왜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1위(80%)는 ‘몰라서’ 였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2위는 (20%) ‘알고도 이용하지 않았다. 차별과 편견이 장벽으로 작용한 것이다.

 

낮은 서비스 이용을 해결하려면 교육과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변에 다양한 서비스가 이용가능해게 해야한다. 고(故) 임세원 교수가 자살예방을 위해 개발했고 70만 명의 국민이 수료한 보고 듣고 말하기와 같은 프로그램이 정신건강 전반에도 필요하다. 또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야 한다. 보험가입 제한과 같은 실제적 차별과 함께 편견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좋은 치료환경이다.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국가를 믿지 않았다. 1995년 국회는 정신보건법으로 가족과 정신과의사에 의한 비자의입원을 법제화한다. 국가기관에 의한 신뢰가 낮았던 시기의 입원결정은 민간에 맡겨졌다. 비인가 요양시설에 있던 환자들이 병원으로 이동한 것은 한발 진보였다. 하지만 호전된 사람도 보호자가 퇴원을 원치 않으면 오래기간 동안 입원 상태에 있었다. 위험이 높다고 만류해도 보호자가 원치 않으면 퇴원하였다. 이 과정에서 보호자에 대한 지원은 열악했고 급성기와 만성입원의 구분도, 전달체계도 없었다. 급성기 병상에서 많은 치료진의 집중적 도움을 받아야할 사람이 의사 한명이 환자 60명을, 간호사 한 명이 100명을 돌보는 만성정신병원에 입원되었다.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할 격리와 강박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었지만 아직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여전히 존재하고 지역사회 치료환경은 선언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철폐하고 사법 또는 행정입원으로 입원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며 급성기 병동과 만성기 병동을 분리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대만의 경우 급성기병동의 의사는 20명 미만의 환자를 보지만 만성병동의 의사는 100명까지도 본다. 다만 입원과 동시에 적극적인 재활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의료전달체계 상 만성병동은 급성기병동을 거쳐야만 갈수 있다.

 

결국 마음이 아픈 사람이 본인이 먼저 찾고 싶은 좋은 치료환경이 제공되고 지속적인 재활이 필요하면 만성병동을 거쳐 지역사회로 나아가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는 시스템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의 구축이 핵심이다. 안전을 위해 경찰이 우선적으로 의료기관을 보호하는 일, 안전수가 등 여러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조기발견과 조기치료일 것이다. 치료환경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환자와 의료인의 안전 역시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비극으로 시작된 논의가 또다시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으로 가지 않고, 고(故) 임세원 교수가 무엇보다 사랑했던 환자들이 보다 나은 치료 환경과 관리체계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 본 기고문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므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백종우. 중증정신질환 시스템을 바꾸자(기고). 경향신문. 2018.7.10.
Available fr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102038005&code=990304

이동진. 인권존중과 탈수용화를 위한 정신건강복지법 재개정. 서울: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사업 보고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018.

윤석준. 한국인 정신질환의 질병부담 및 재원. 중앙정신건강복지지원단 보고서. 서울: 중앙정신건강복지지원단. 2018.

백종우, 임정숙, 김성남 등. 정신건강복지센터 및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업무분석 및 표준화 연구. 경희대학교 산학협력단. 2018.

김태현, 김소윤, 백종우 등. 시립병원 정신건강체계 연계모델 구축 연구. 연세의료원 산학협력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