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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10 2월호] 미디어속 보건의료이야기 :: 드라마 제3병원으로 보는 현실 속 한의사

 

 

 

 

글. 송상우(보현한의원 원장)

한의사와 한의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다.

 

2012년에 방영된 ‘제3병원’은 양한방 협진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양의사와 한의사간의 갈등과 긴장 그리고 협력을 다룬 드라마다. 그간 한의사를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는 적지 않았다. 1976년 최초로 제작되어, 1999년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근자에 다시 리메이크되어 무려 4차례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허준’을 비롯해 ‘태양인 이제마’, ‘마의’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모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유명한 한의사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일상적 한의사를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은 ‘제3병원’이 거의 처음이라 볼 수 있다.

 

기존의 드라마가 역사적 인물의 영웅적 일대기를 다루었고, 이것은 대중이 가지고 있는 한의사에 대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한의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일반인에게 한의원은 나이든 한의사가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채 말없이 진맥만을 통해 병을 맞추는 곳일 확률이 높다.
 
물론 당시와 지금의 한의사가 행하는 의료행태는 유사한 점이 없진 않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흐른 만큼 차이도 크다. 그래서 드라마 속 이미지만을 갖고 한의원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종종 놀라곤 한다.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통해 형성된 이미지는 안타깝게도 한의사의 직능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낳았다. ‘제3병원’에서 주인공 양의사의 멘트처럼 부정적 이미지가 한의사에게 씌어진 것이다.


“한의학은 구시대 의학이며, 근거가 부족하고, 철저하게 한의사의 신체적 감각에만 의존해서 진단을 내리기 때문에 정확성과 재현성이 떨어진다”

 

물론 이것은 편견일 뿐 사실이 아니다. 한의학은 과거에도 훌륭한 의학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가치가 높다. 다만 그것을 구현해야할 한의사의 직능은 이원적 의료체계 하에서 크게 제한되어 있다.

한의사 주인공이 기도폐색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에게 기관 절개 후 기도삽관을 한 행위 때문에 병원에서 징계를 받는 에피소드는 그것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마의’에도 소개되었지만 조선시대의 외과술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다. 물론 전문적 수술이야 그에 관련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몫이지만 간단한 절개조차 제한된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침습적 치료행위에 대한 제한 외에도 수의사나 심지어 어부들도 사용하는 초음파나 엑스레이 같은 진단장비의 사용이 제한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제약 탓에 한의사 스스로가 한의학의 유효성을 충분히 증명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수행된 연구에 의존해야만 하는 아이러니와 같은 상황이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본질적인 오해는 한의학적 치료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논란이 아니다. 핵심은 한의학적 진단과정에 대한 고질적인 이해부족에 있다. 즉 한의학은 신체적 감각에 의존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므로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오해이다.

이것을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지면 관계상 자세하게 다루기는 어렵지만 간략하게나마 짚고 가고자 한다.

 

 

인체는 복잡계다. 복잡계는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비선형성과 창발성을 꼽을 수 있다. 비선형성은 쉽게 말해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항에 물고기를 두 마리 넣었을 경우 그 결과는 2가 될 수도 0이 될 수도 100이 될 수도 있다. 즉 비선형성은 단일한 결과 예측이 불가능하고 아주 작은 무작위적 변화에 의해 결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 있는 특성을 가리킨다. 창발성은 비선형성과도 관련이 되는데 쉽게 말해 개별구성요소들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특성이 나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플라스틱의 물리적 특성을 아무리 연구해도 마우스의 기능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포학이 남녀 간의 사랑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문제는 복잡계를 이해하는 데는 환원주의적 방법과 통계학이 뚜렷한 한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인체가 보이는 개개의 다양한 현상(증상)들은 단일 변수에 의해 발현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기관이나 조직 단위에서조차 수십, 수백가지 이상의 변수들을 관여되며 세포, 분자 단위로 내려갈 경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변수들을 다룰 수 없으므로 이 중 몇 개만 추려내서 기전을 설명하거나 통계적 이론을 구성할 해야 하는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현상을 왜곡한다. 우리가 환원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왜곡은 심해지고, 결국 개별 변수들과 겉으로 보이는 현상 사이의 관계를 추론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더 주목할 점은 복잡계에서는 개별 변수들의 출현빈도보다는 변수들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해진다는 사실이다.

 

똑같이 밀가루로 된 면이 들어가지만 짜장면과 짬뽕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음식이다. 여기서 중시되는 것은 밀가루를 제외한 다른 재료와 그 재료들과 밀가루가 조리과정을 통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이다. 단순히 밀가루가 몇g 사용되었는가, 총 탄수화물이 몇 %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즉 복잡계에서 구성요소들의 수(규모)는 그것의 기능과는 별 관련이 없다. 이런 까닭에 변수들 간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무시하게 되는 통계적 측정은 복잡계를 이해하는 데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

 

한의학이 양의학과 구별되는 가장 커다란 부분은 바로 인체라는 복잡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환원주의적이거나 통계적 방법과는 다른 변증이라는 고유의 방법론을 채택한 데 있다.


 

변증(pattern identification)은 쉽게 표현하면 경향성의 식별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복잡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비록 반증가능성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경향성에 대한 인식와 그를 바탕으로 한 예측이다.

 

그리고 경향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인간의 감각체계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지대한 기여 하고 있다.

 

한의학은 바로 인간의 진화된 감각체계에 주로 의존하여 인체의 다양한 패턴을 파악하는데 그 핵심이 있다.

 

‘제3병원’에서는 변증과정을 주인공의 독백이나 등장인물 사이의 대화를 통해 비교적 실제와 가깝게 보여주고 있다.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변증이 단순히 감에 의존한 진단이 아니라는 점만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한의학은 수 천년의 역사를 가진 경험의학이다. 긴 역사는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임상실험과 검증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양의학적 관점과 방식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유산이 사장되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역사적 죄에 가깝다.

 

드라마 ‘제3병원’은 현실에서 나타나는 한의학과 양의학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지나간 역사가 아닌 현재에 한의학과 한의사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면 ‘제3병원’을 참고 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