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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Vol.7 11월호] 미디어 속 보건의료 이야기


   글 김효주(서울대학교병원 간호사) 

 


 ‘드라마’속에 비춰지는 다양한 사람 사는 모습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동시대의 다른 삶들을 엿보며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거쳐 고정관념이나 가치관이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그것들이 깨지기도 한다. 드라마의 영상물에 비춰지는 사람들의 생김새, 배경, 관심사 등이 우리들의 실제 모습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그 스토리에 공감을 하고 몰랐던 것을 익히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드라마’라는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큰 힘이다. 

현재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즉 의료인 중 한사람으로서 ‘예전부터 꾸준하게 인기를 끌어온 메디컬 드라마는 과연 어떻게 현재 보건의료환경을 대변하고 있을까’에 대한 관심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심어린 눈으로 바라본 드라마 영상은 대부분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아직도 이 정도에서 그치고 있구나’는 실망과 함께 채널을 돌리게 만들곤 했다. 국내에서 방영된 모든 메디컬 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시청하지는 못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드라마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자면, 초반에는 비상한 의학적 지식으로 환자의 생명을 살려내는 영웅에 가까운 ‘의사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후에는 사람들의 의학 지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관심이 늘어감에 따라 다소 전문적인 의학 용어나 질병의 설명이 포함되기 시작했고 최근에 방영되었던 것은 의사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성장 드라마에 로맨스가 포함되어있거나 한편으로는 병원의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병원경영에 대한 스토리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 메디컬 드라마의 변천사를 간단히 정리해 보았는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실제 병원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론에서 언급하였던 ‘현 시대상을 반영하는 드라마’에 모순되는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환자 또는 보호자의 입장이 되어 병원을 찾고 있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 수는 있어도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병원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어 한국 보건의료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메디컬 드라마의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 메디컬 드라마에서 가장 간과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일까. 바로 프로페셔널한 간호사의 모습을 꽁꽁 숨겨 두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드라마용 간호사’의 모습을 보자면 우선 간호사의 활동 장면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또한 의사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있으며 의료인으로서 당당히 비판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장면이 없다. 그들이 어디론가 이동할 때에는 꼭 서류파일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쫓아다니며 병원 상황이 어떻든 간에 스테이션에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기에 바쁜 모습으로 비춰진다. 또한 2013년 들어 편견을 깨고 처음 등장한 남자 간호사의 모습은 다소 특이한 사연을 가진 희화화된 캐릭터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대학병원 내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왕성히 활동하며 환자가 입원하자마자 대면하여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의료인이 바로 간호사다. 그러한 간호사의 역할이 올바르게 묘사되지 않은 드라마를 보고 병원을 접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과연 얼마나 본인들에게 제공되는 보건의료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을까. 실제로 자신들이 인식하고 있었던 간호사의 모습과 임상에서 보호자 또는 환자의 입장에서 지켜본 간호사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서 놀랐다는 아쉬운 칭찬도 수차례 들어본 경험이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메디컬 드라마에서 꼭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대학병원 간호사의 실제 활동 모습은 어떨까? 우선 의료인으로서 간호사의 가장 두드러지는 역할은 바로 환자의 증상을 가장 먼저 발견하여 의학적 지식을 근거한 우선순위에 따른 케어를 제공한 후 주치의에게 보고하여 치료방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 있다. 또한 환자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치료를 최종적으로 직접 일대일로 제공하는 의료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치의에게 환자에 관한 근거 중심적인 세밀한 정보를 제공하여 치료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만약 주치의의 실수로 인해 잘못된 오더가 발견되었을 경우 의논하여 수정하는 중요한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하는 의술에 맞춰 간호 또한 그와 동등하게 발전하고 있는데 미디어를 통해 본 의료 환경의 모습은 ‘의술’에만 집중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제작의 현실 상 이렇게 다양한 보건 의료 환경의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간호사를 주인공처럼 대단한 사람으로 비춰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들이 밤낮없이 환자를 위해 'professional'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의 일부라도 비춰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시청자들이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의료 환경을 보고, 한국 보건 의료의 다양한 면모를 인식하여 높은 신뢰감과 안도감을 가지고 치료에 임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