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청소년 약물중독과 ‘우리’ 사회: 영화 “Ben is Back”
글. 안순태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5월 국내 개봉 영화 “Ben is Back”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으로 돌아온 약물중독자 벤과 그 가족들이 겪는 숨 가쁜 24시간의 이야기다.
<영화 Ben is Back 포스터>
약물중독으로 재활센터에 있던 벤(Lucas Hedges)이 예고 없이 나타나자, 울먹거리며 아들을 반기는 엄마 홀리(Julia Roberts), 그러나 머뭇거리던 벤의 여동생 아이비(Kathryn Newton)는 의붓아버지 닐(Courtney B. Vance)을 긴급 호출한다. 재활센터로 다시 돌려보내자는 여동생과 의붓아버지, 머물게 하자는 엄마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며 그동안 벤의 약물중독으로 가족이 겪어왔던 시련과 갈등이 재현된다. 결국 엄마 홀리의 간청으로 벤은 하루를 집에서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온 가족이 성탄전야 예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있고, 벤과 가족을 반기던 반려견이 보이지 않는다. 벤은 한때 관여했던 마약거래상의 소행이라 단정 지으며 뛰쳐나가고, 엄마 홀리는 벤을 찾아 나서면서 어두운 밤거리의 여정이 시작된다. 홀리는 벤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낯설고 어두운 아들의 과거사를 확인하게 되고, 벤의 마약거래로 인해 목숨을 잃은 메기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 꼭 벤을 찾아 살리라며 오히려 딸을 잃은 엄마는 응급처치 도구를 건넨다.
한편 벤은 반려견을 빌미로 협박하는 마약상을 위해 마약배달을 감행하고, 일을 마친 대가로 주어진 마약 한 봉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온 동네를 헤매던 홀리는 무사히 구출된 반려견을 찾아내지만, 마약 복용 후 의식 불명이 된 벤을 발견한다. 영화는 응급처치 도구로 벤을 살려내는 엄마 홀리의 눈물로 막을 내린다.
중독자는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 환자이고 중독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벤을 살려낸 줄리아 로버츠의 절박한 모성애로 표현된다. 돌아온 벤(Ben is Back)이라는 제목은 집으로 돌아온 벤을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벤은 의사의 처방약을 시작으로 약물중독이 되었고, 우연히 마주친 어릴 적 주치의는 벤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부주의한 진통제 처방, 무엇보다 중독자가 된 벤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의사를 원망하며 홀리는 독설을 뱉어낸다. 의사를 향한 홀리의 억지스런 질책에서 최근 마약성진통제(Opioid) 남용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미국사회의 절박함이 묻어 나온다.
영화는 약물중독자의 재활이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도움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엮어내고 있다. 사회적 지지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며, 처벌과 규제 중심의 국내 마약 중독자 관리체계가 치료와 예방에 초점을 두고 변모되어야 함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약물중독이 유명인에게 국한된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주변 사람들, 벤과 같은 ‘우리’ 10대 청소년의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는 가족과 지역 공동체를 통해 배양되고 중독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기제이며, 그들을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질병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게 한다. 미국의 치료재활은 치료공동체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약물중독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참여하고, 스폰서(sponsor)라고 불리우며 재활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람들이 멘토의 역할을 담당한다. 치료공동체의 활성화는 처벌과 규제에 치중된 국내 상황에서 가장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집으로 돌아온 벤이 약물복용 충동을 느꼈을 때, 바로 전담 스폰서(sponsor)에게 전화하여 힘든 속내를 털어놓는다. 스폰서는 실시간으로 그 지역 치료공동체 모임을 찾아내고 벤에게 가라고 권고한다. 위로와 격려를 넘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며 길을 안내한다. 체계적으로 중독자를 관리하려는 미국 시스템이 잘 드러난다. 오랜 세월 미국사회가 마약 문제로 큰 사회적 비용과 대가를 지불하고 갖추게 된 결과물이다.
물론 이러한 실질적인 사회적 지지와 치료공동체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극적인 효과를 노리며 반려견의 실종을 엮어내고 벤의 분노와 일탈을 유도한다.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지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성애와 이를 보조하는 사회적 연결망이 등장한다. 벤으로 인해 딸을 잃었지만 결국 벤을 살리는 응급처치 도구를 건네는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은 약물중독 청소년을 그들이 아닌, ‘우리’의 아이들로 바라보게 한다.
뛰쳐나간 아들을 밤새 찾아 헤매는 홀리를 보며 남편 닐이 독백처럼 이렇게 말한다: 벤이 흑인이라면 아마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감옥과 재활센터의 차이가 죄질의 차이가 아닌 사회적 지지와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붓아버지로 분한 흑인 배우를 통해 날카롭게 전달한다. 사회적 지지를 받는 청소년과 그렇지 못한 청소년의 운명이 감옥과 재활센터를 통해 대조되듯이, 사회적 지지를 제공하는 사회 속의 중독자와 그렇지 못한 사회 속 중독자의 운명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음을 생생히 그려주고 있다.
<영화 Ben is Back에서 흑인 의붓아버지 닐>
최근 국내 마약 문제도 향정신성 의약품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여, 우리 청소년들의 약물 남용과 중독 취약성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지지와 재활의 기회는 어떠한가? 처벌과 배제보다는 포용을 통해 재활을 유도하고, 그들을 살려낼 수 있는 지역사회 협력망 구축과 치료공동체 활성화가 절실하다. 대담하고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영화 속 줄리아 로버츠와 같은 엄마를 현실 속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청소년을 우리와 함께 사는 세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한 미국과 우리 상황은 다르지만, 그래서 다행이라고 넘겨버리거나 뒷짐 지고 있을 때는 아니다. 미국 사회가 치룬 큰 사회적 비용을 피할 수 있는 길이며 청소년 재활은 사회융합의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연예인 마약 관련 사건과 보도가 많았던 2019년 상반기 국내 상황이 중독자 문제를 특정 ‘그들’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데 일조하지 않았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