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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59 19년 제4호] 보건의료이슈 :: 의료기기 공급자는 수술실에 출입할 수 없는가

보건의료이슈

의료기기 공급자는 수술실에 출입할 수 없는가

 

글. 이경권 대표(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변호사/의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의료인에 의한 수술사건도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고나면 새로운 사건·사고가 발생하니 웬만한 이슈가 1주일을 주목받기 힘든 것이 대한민국이다.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하여 그 문제를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다. 특정 분야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우리 사회에 제시하는 것이 전문가의 진정한 역할이라면 소위‘유령의사’에 의한 수술문제에 대해 의료계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유령의사 문제는 좁게 보면 의료기기 공급자와 같은 비의료인에 의한 수술 참관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참관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의 문제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면,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등이 의사의 진료에 있어 보조를 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같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음은 물론, 집도의를 도와 수술에 참여하는 의사 인력(전임의나 전공의 등)이 수술에 있어 어느 정도 집도의를 도와야 하는 것인지의 문제도 포함하고 있는 실로 방대한 영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한 불법인지 여부의 문제를 벗어나 집도의가 어디까지 수술을 주도해야 하고, 수련이 필요한 의사들이 어느 정도 수술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점에 대해 간략히 검토해 보기로 한다.

 

 

먼저 유령수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유령수술이란 수술하기로 한 사람이 아닌 자가 실체가 또렷하지 않은 유령처럼 수술실에 나타나 환자를 수술하는 것을 말한다. 학문적으로 유령수술(Ghost Surgery)이란 환자의 동의 없이 진료한 의사가 아닌 사람이 수술을 하는 것 또는 환자의 동의 없이 환자가 마취로 잠든 사이 원래 수술하기로 했던 의사가 아닌 사람이 대신 수술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에 대한 선도적 미국 판례로는 De May v. Roberts 46 Mich.169,9 N.W. 146(Michigan, 1881)이 있다. 사안은 의사가 출산 보조로 데려온 미혼의 젊은 남성을 출산모와 남편이 보조의사로 착각해 입회를 동의하였는데, 나중에 그 남성이 의료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고소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출산모와 그녀의 남편이 그 남성을 보조의사로 오해할만한 소지가 다분하고, 수술 전 남성의 지위를 특정하여 통보하였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출산모가 그가 보조의사가 아닌 것을 알았더라면 입회를 거부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사생활 침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례 이후로 수술 전에 수술을 담당하는 자는 물론 보조하는 인력에 대해서도 환자나 그 보호자에게 사전에 설명을 하고 동의를 받는 방식으로 절차를 개선하게 되었다(물론 위 판결 이후 현재의 절차로 굳어지기까지 혼선이 있기는 했으나, 결국 사전설명 및 그를 바탕으로 한 동의 획득 절차로 굳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지정의사로 지정된 집도의가 수술에 참여하지 않은 채, 지정진료비는 받고 마치 자신이 수술을 한 것처럼 수술기록지를 작성한 사건에서 사기죄를 인정한 판결이 있다(대법원 2000. 11. 14. 선고 2000도3786 판결). 이런 대법원 판결에서는 사기죄의 성립이 쟁점이 된 것으로 선택 진료비가 없어진 지금 참고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쟁점이 되어야 할 것은, 집도의로 환자에게 인식된 사람이 전혀 수술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어떤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윤리적으로 자신이 수술을 하지 않을 것임에도 자기가 수술을 한다고 환자에게 설명을 하고 실제로도 수술을 하지 않은 의사에 대해 비난이 가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민사적인 측면에서 수술계약에 있어 집도의로 정해진 자가 수술을 하지 않은 경우 계약의 본질을 위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하거나 해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수술이 이루어진 경우 계약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나 이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다른 의사 또는 비의료인에 의해 수술이 시행되었으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가 모호하게 된다. 다만, 최소한 위자료 정도는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핵심은 이러한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비의료인에 의한 경우에는 의료법상의 무면허의료행위로 처벌하거나 가중처벌규정인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의 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집도의 아닌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한 경우이다. 의사는 의료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자신이 위험을 인수하여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수술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 따라서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할 수는 없다. 또한 선택 진료비가 없어진 상황에서 이전의 대법원 판결과 같이 사기죄로 의율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일반인들은 형사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법률제도가 미국과 달라 폭행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현행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우니 입법을 통해 해결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의료행위가 시혜적인 행위라는 인식이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계약으로 보는 시각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환자나 그 보호자가 수술을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의사가 수술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형벌은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부분은 의사의 품위손상이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의료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한의사협회나 대한병원협회 차원에서 제재수단을 자율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환자나 그 보호자가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될 수 있다. 이를 문제 삼아 시민단체에서는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실제 설치한 지방자치단체 산하 의료기관도 있다. 그러나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법률상 타당하지도 않고 설치하여도 해당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이에 대해 검토하여 쓴 글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언급을 생략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는 수술실 출입대장을 엄격하게 기록하게 하거나, 자동적으로 출입기록이 생성되도록 하여 다른 의사가 수술실을 드나듦에 있어서 일정 정도의 제한을 할 필요가 있다.

 

비의료인의 경우 수술실 자체에 출입할 필요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의료기기 사용 보조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환자에게 명확히 설명을 해 준 후 입회하도록 하는 등 더 엄격한 제한이 필요하다. 또한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들에 대해서는 수술 전에 환자에게 집도의 이하 어떤 의료진이 수술에 참여하거나 수술을 보조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이에 대한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환자나 그 보호자들 역시 집도의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수술의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일정 부분 수술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동의해야 할 것으로 향후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현행 의료체계에서는 환자가 추가 부담을 감수하고 집도의가 모든 수술을 하도록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령의사 문제는 향후 언제든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시한폭탄이다. 여론이 가라앉았다고 해서 외면하면 나중에 원자폭탄이 되어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경향은 되돌릴 수 없다. 비용의 부담 문제와 함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유령의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 몇몇의 부도덕한 의사를 형사처벌한다고 하여 사라질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의료시스템 상 상존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사 개인의 윤리문제로 치부하다가는 큰 사회문제로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사회의 전향적 인식이 필요하다.

 

※ 본 기고문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므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