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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이슈/보건의료이슈

[Vol.5 9월호] 보건의료 이슈의 특성과 'NECA 원탁회의'

   글. 박종연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연구기획단)



근래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로 인해 국민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과 함께 건강과 복지 문제에 대한 정책적 이슈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보건의료 분야는 다른 어떤 영역보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관여의 범위와 깊이가 중대하고 전문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와 행위 주체들(stakeholders)이 관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성격을 갖는다. 


보건의료와 관련된 이슈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인식과 관점이 공존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가 첨예하게 상충되어 갈등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할 뿐만 아니라, 투명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보건의료 영역의 근본적인 환경변화 요인 중 중요한 것으로 급속한 기술발전이 있는데, 의료기술의 발전은 보건의료서비스에 적용함으로 인한 국민의 건강수준과 삶의 질 제고에 기여하게 될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불하여야 할 대가에는 서비스에 대한 금전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파생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여야 한다는 사회적 비용도 포함될 것이다. 즉 의료기술 발전과 같이 국민의 건강보호를 위해 얼핏 긍정적인 영향만을 가질 것처럼 생각되는 요인도 현실적으로는 그 활용이나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부담방법 등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사회적 쟁점들이 발생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고자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노력과 자원들이 투입되고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 활용되는 의료기술의 안전성, 유효성, 경제성 등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연구결과물을 내놓는 것만으로 그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국민의 건강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의료기술평가 분야의 연구에서는 그 결과물에 근거한 의사결정과 정책 활용 등을 위한 추가적인 기전으로 서구사회에서 발전해 온 합의회의 또는 원탁회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합의회의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의료기술영향평가의 한 방법으로 처음 등장하여, 1980년대 중반, 덴마크에서 과학기술정책결정 과정에 대해 대중의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시도되었다. 덴마크의 합의회의가 큰 성공을 거두자 1990년대에는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 여러 유럽 국가들이 이를 도입하였고, 최근에는 북미, 호주, 아시아 국가에서도 합의회의가 개최되었다. 


국외에서 수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합의회의 사례로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의 합의도출 프로그램(Consensus Development Program, CDP)이 있는데, 1977년부터 연구자, ​​의료 제공자, 정책관리자, 환자, 일반 대중에게 중요하거나, 논쟁이 있는 보건의료 주제들에 대해 근거에 기반한 합의문(consensus statement)을 도출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대상이 되는 이슈와 관련된 기관들이 공동 후원 및 관리를 하고 있고, 미국의 보건의료 분야 연구와 질 관리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는 AHRQ(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and Quality)에서도 체계적 문헌 고찰을 통해 이러한 합의도출을 위한 근거자료를 제공한다. 


합의회의의 과정은 합의문의 기초가 되는 일련의 결과들을 토대로 패널이 초청된 전문가와 일반대중으로부터 의견을 듣고 정보를 평가하여 미리 제시된 질문에 대해 합의문을 작성하며, 상반된 해석이 존재 가능한 자료에 대해 명확하고 정확한 답변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합의회의에는, 일반대중의 방청은 허용되지만 실제 토론은 전문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이들에 의해 합의문이 작성된다. 반면 덴마크 합의회의는 일반대중의 패널 참여를 적극 유도하여, 그들의 지혜와 경험, 통찰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합의가 이루어지게 된다. 덴마크에서 발전된 합의회의 모형은 미국 모형을 토대로 하였으나, 시민패널이 추가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서 보장성 강화를 위한 의사결정에 시민위원회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는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민패널이 참여하는 덴마크 합의회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합의회의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는데, 과학적, 윤리적인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주제에 대해서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결과물로 최종적인 합의문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합의회의는 그 성격이 우리나라의 실정에 잘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으므로 결과보다는 과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원탁회의(Round-table Conference)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 


원탁회의는 미국·영국·캐나다 등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국책사업이나 보건의료분야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어 왔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전문 영역에서의 이슈들에 대해 수직적인 회의구조를 탈피하여 평등한 회의구조 속에서 최선의 의견 수렴을 추구하고 궁극적으로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계기로 활용하기 위한 회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그 예로서 2012년 서울시 주최의 ‘시민과 함께 만드는 서울시민 복지기준 1000인의 원탁회의(2012.08.09)’와 한국대학생연합 등이 청계광장에서 수행한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1000인의 원탁회의(2012.06.24)’등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원탁회의라는 이름하에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제안을 도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1998년 ‘유전자조작식품(GMO) 합의회의’, 1999년 ‘생명복제기술 합의회의’, 2004년 '한국의 원자력 중심 전력정책에 대한 시민합의회의' 등 전문가 및 시민 패널 20-30명이 참여한 가운데 3-4일간 진행되어 각 주제에 대한 정책적 제안을 도출한 바 있다(표 1).

 

 

표1. 국내의 원탁회의 사례





한편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는 2009년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 제시’, 2010년 ‘국내 우울증의 질병부담과 치료현황’, ‘우울증, 자살 그리고 한국사회 Round-table Conference’, 2011년 '공익적 보건의료연구 자료 활용을 위한 Round-table Conference' 등 원탁회의(Round-table Conference)를 수행해 온 바 있다(표 2).



 

표2.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수행해 온 원탁회의 주제




 

국내외에서의 합의회의 또는 원탁회의 사례들을 참조하여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합의도출 모형을 확립한다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슈들에 대한 사회적 조정기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한국형 원탁회의 모형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NECA 원탁회의는 주로 의료기술이라는 다소 전문적인 주제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우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합의회의 방법론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합의방법론을 활용한 한다면 의료기술 관련 쟁점은 물론, 사회적 쟁점들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향후 NECA 원탁회의가 정책 마련이나 의사결정에 기여할 수 있는 절차 또는 조정모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NECA와 정책결정자 혹은 정책결정기구와의 제도적인 연결통로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한, NECA 원탁회의가 정책에 유용하게 활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제의 시의 적절성이 중요한데,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쟁점에 대한 NECA의 상시적인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NECA 원탁회의는 보건의료기술평가 및 국가보건의료 정책 마련을 위한 공신력 있는 유용한 기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