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갑작스런 장애로 인한 좌절, 그리고 적응: 러스트 앤 본 (Rust and Bone)

 

글. 신동욱 교수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프랑스 남부 해변에 사는 스테파니(마리옹 꼬띠아르 분)는 범고래 조련사이다. 화려한 무대에서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범고래 쇼를 하는 팀의 리더 격이다.

 

<범고래쇼를 진행하는 조련사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스테파니는 클럽에 놀러 갔다가 시비가 붙어서 코피를 흘리게 된다. 그 클럽의 세이프 가드인 알리(마티아스 스후나르츠 분)가 스테파니를 집으로 데려다 주게 된다. 알리는 변변한 직업이 없이, 누나 집에 얹혀서 작은 아들을 혼자 키우는 백수나 다름 없는 청년이다.

 

<클럽에서 시비가 붙는 바람에 만나게 된 스테파니와 알리,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여느 때처럼 범고래 쇼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범고래가 무대 위를 덮치는 사고가 일어나고, 스테파니는 두 다리 모두 무릎 아래 부분을 잃게 된다.

 

<범고래의 습격에 두 다리를 손상당한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한동안 의식을 잃었다가 어두운 병실에서 깨어난 스테파니.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다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스테파니는 오열한다.

 

<다리 절단 후 의식 없이 누워있는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다리를 잃고 오열하는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친구들이 찾아와서 “너를 잃지 않는 것만해도 참 다행이야.” 라고 위로하지만, 스테파니는 계속 우울하다. 멍한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이다. 자살을 하려 했는지, 스칼펠(절개를 위해 쓰는 작은 의료용 칼날)을 숨기고 있다가 의료진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스칼펠을 숨기고 있다가 의료진에게 빼앗김,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병원에서 퇴원 후 스테파니는 보험사에서 마련해준 임시 거처인 작은 아파트에 머무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원래 동거하던 남자가 사고발생 후 떠나가서였는지, 클럽에서 한번 만났을 뿐인 알리에게 연락을 하고 알리는 스테파니의 거처에 방문한다.

 

알리 : “도우미는 안와요?”

 

스테파니 : “도우미가 걷게라도 해준대요?”

 

<스테파니의 전화를 받고 그녀의 거처에 방문한 알리,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둘은 함께 해변으로 외출을 나간다. 알리가 처음에 자신은 수영을 하겠다면서, 같이 수영할지 물어보자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는다. “수영복이 없어서 그래요?”고 남이 보든 말든 그냥 하자가 하자, 그걸 (자신이 다리가 없는 것을) 몰라서 묻냐고 화를 낸다. 알리가 혼자 수영을 하고 있는데, 바다를 바라보다가 생각이 바뀐 스테파니는 자신도 수영을 하고 싶다고 한다.

 

<수영을 하겠다는 스테파니를 바다로 옮겨주는 알리,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물에 들어간 스테파니는 이내 수영을 즐기게 된다. 처음에는 다리가 없어서 약간 어색했지만, 이내 입고 있던 티셔츠마저 벗어 버리고 한참 수영을 즐긴다.

 

<바다에 들어간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알리의 도움으로 물 밖으로 나오면서, 환한 표정으로 “이제야 살 것 같다. 고마워요.”라고 이야기한다.

 

<수영을 마치고 행복해하는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후 스테파니는 다리에 의족을 맞추게 된다. 이제 휠체어 없이 지팡이 정도의 짚으면서 두발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의족을 맞추는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지팡이를 짚고 알리를 만나러 오는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알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이상 여자로 보여지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본인이 섹스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알리는 해보면 섹스를 할 수 있는지 금방 알 거라고 하면서 스테파니와 잠자리를 가진다. 알리와의 섹스를 통해 스테파니는 다시 본인이 여자임을 느끼게 된다.

 

<장애 발생 이전에는 여자로 보여지는 것이 행복했었다고 이야기하는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알리와의 잠자리를 위해 의족을 벗고 있는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이제 스테파니는 자신이 일했던 범고래 쇼장을 찾는다. 수영장 유리 너머에 있는 범고래와 다시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옛 동료들을 찾아가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범고래를 만나러 간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조련사 친구들을 만난 스테파니, 사진 출처: 러스트 앤 본>

 

혼자 아이를 키우는 거칠고 가난한 한 길거리 복서 알리와, 사고로 다리를 잃은 고래 조련사 스테파니의 우연한 만남과 우정, 섹스, 그리고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 러스트 앤 본 (Rust and bone). 다소 낯설고 불편한 상황 설정과, 충격적인 영상 장면들로 몰입감을 주는 영화이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2012년 작으로 65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었을 정도로 작품성도 뛰어나다.

 

보건의료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장애의 발생과 이에 대한 적응 과정을 보여준 매우 드문 영화이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음악에 맞추어 고래들을 움직이던 조련사의 팀 리더 격이었던 스테파니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다리 절단 사고. 그녀는 한동안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하고, 우울해하다가, 심지어 자해 시도까지 하려 한다.

 

실제 장애인의 대부분은 후천적 장애인들이다. 대표적으로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시 생기는 척수손상이라든가, 산업재해로 생기는 절단 사고, 그리고 갑작스런 질병으로 주로 생기는 뇌졸중이나 실명 등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장애는 누구에게나 충격적이고 좌절을 겪게 하는 인생의 사건이 된다. 이러한 후천적 사건들로 인해 신체적, 기능적 장애가 발생하면 직업을 상실하게 되고, 이에 따라 경제적 문제가 생기며, 배우자가 떠나가는 등 가족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실제 장애가 발생한 장애인들의 상당수는 자해 시도를 하기도 하고,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채 절망에 빠져 고립된 삶을 사는 경우도 많다.

 

스테파니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보험사가 꽤 좋은 아파트를 거처로 마련해주었고, 가사 도우미가 파견되어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후에 꽤 좋은 의족까지 의료적인 지원도 원활히 제공되었다. 또한, 원래 동거하던 남자는 떠나갔지만, 사고 전 우연히 만났던 알리가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녀가 가진 장애에 대해 동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대신, 오히려 무심하고 너무 예민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를 그냥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많은 심리적 위안이 되었다.

 

바닷가에서의 수영은 그녀가 장애로 인한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삶을 찾게 된 상징적인 사건이다. 범고래 조련사로서 스테파니는 물을 본인의 직업적 기반과 보람의 원천으로 살아왔던 사람이다. 수영하자는 알리의 제안에 “내가 다리가 없는 것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다리가 없어서 다소 익숙해 보이지 않았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바다를 다시 느끼면서 수영을 했다.

 

“이제 살 것 같아. 고마워요.”

 

그녀에게는 다른 인간적인 욕구도 있었다. 여자로서 보이고 싶은 욕구, 그리고 성적 욕망. 우리 정서로는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이기도 하지만, 알리는 그냥 친구 관계임에도 섹스를 하자는 제안을 하고, 이를 통해 스테파니는 행복감을 찾게 된다. 알리는 처음에는 섹스만 해주려고 하고 다른 여자와도 관계를 만들지만, 결국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를 비롯한 몇몇 정책 연구를 하면서 장애인 분들과 인터뷰를 할 기회들이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외래에 찾아오는 장애인 환자들을 보면서 피상적으로나마 그들이 가진 필요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장애에는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특히 후천적인 장애가 발생한 많은 환자들은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들에게는 이전에 장애가 없던 삶과 현재의 삶이 많이 대비되기 때문이다. 타인들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적응하고 살도록 위로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영화 ‘Me Before You’에서 사고로 하지 마비가 된 부잣집 청년 윌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내인생이 아니다.”라며 스스로 의사 조력 자살을 택했던 것처럼.

 

그러나, 이전과는 다르더라도 장애 발생 후 새로운 삶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도움은 매우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강조되진 않았지만, 재활병원의 장면과 보장구를 제공해주는 장면을 통해서 의료적인 재활지원이 되는 것과, 그녀의 임시 거처 모습에서 주거와 가사도움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제도적인 지원은 아니지만, 알리와의 관계가 그녀가 장애를 극복하고 다시 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찾는 데 있어서 큰 심리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되었다.

 

‘재활 난민’ 이라는 표현이 있다. 급성 손상으로 장애가 발생하면 보통 종합병원 급의 상급 의료기관에서 수술 등의 치료를 받고 급성기 재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 이들이 최대한 신체적인 기능을 회복하고, 심리사회적인 적응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복귀할 수 있는 제도는 여전히 미비한 편이다.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장애 후 아급성기에 상당한 기간 동안 재활훈련, 직업훈련, 심리적 지원, 가족들에 대한 교육 등이 필요한데 이러한 서비스는 거의 제공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다행히 2015년도에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중앙-지역 장애인 보건의료센터, 권역 재활병원, 재활 전문 병원 설립, 장애 친화 건강검진 기관, 장애인 건강 주치의 제도 등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 제도 초창기라 여러 시행착오가 있지만, 향후 보완을 통해서 장애인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건강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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