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보건의료이야기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건강한 나눔과 위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글. 안순태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이라는 작은 마을에 미혼모 동백(공효진)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두루치기에 소주를 파는 작은 술집을 열고, 유모차에 탄 어린 아들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들에 “남편은 없는데 아들은 있을 수 있잖아요?”로 인사한다.

 

언뜻 보면 미혼모를 바라보는 편견과 술집에 대한 뒤섞인 시선 속에서 위축되고 움츠러들기 쉽지만, “매일 일했는데 통장에 몇 백도 없는” 빠듯한 살림은 오히려 동백의 하루 하루를 덤덤하게 만든다. 어린 아들 필구는 두루치기를 열심히 파는 이유이며 동백이 웃음과 눈물을 나누며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술집을 한다는 이유로, 남편 없이 아들을 키운다고, 동네 아줌마들은 동백을 까칠하게 대한다. 동백에게는 열무 한 단 가격을 더 올려 받고 아픈 곳을 건드리는 비꼬는 말을 툭툭 내던진다. 그러나 서운한 말을 내 뱉고 핀잔을 주면서도 김치를 가져가라고 큰 소리를 치며 투박한 온정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들 필구는 어느새 여덟 살이 되었다.

 

아들 필구가 자라난 옹산에서 동백도 뿌리를 내려간다. 핀잔 주고 간섭하는 동네 아줌마들은 어느새 동백의 소소한 일상이 되었고, 어느 순간 나서서 동백을 감싸 안아준다. “원래 지 동생 틱틱 건드리는 언니들이 남이 내 동생 건드리는 꼴은 못 보는겨.”라고 동백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고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이웃들이다.

 

옹산 사람들의 겉치레 없는 나눔, 관심과 간섭을 넘나드는 오지랖은 핀잔주면서도 챙겨주고 다독거리는 가족과 같은 지역 공동체의 모습이다. 가족이기에 서운한 말도 할 수 있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옹산 사람들의 나눔은 직설적이고 있는 그대로이며 편안히 기댈 수 있는 쉼터가 된다.

 

입에 발린 친절함, 가슴 보다 머리로 말하는 것에 조금 더 익숙해진 오늘날 우리들에게 거리낌 없는 옹산 이웃들의 건강한 나눔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위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편안한 관계가 그 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우리의 정(情)이 묻어 나온다.

 

한 사회의 건강과 안녕의 지표인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한국인이 만년 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냐는 항목이다. 이는 사회적 관계성(social connections)을 나타내며 집단주의 문화,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수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라는 것은 놀랍고 안타깝다. 경제규모와 수준에 비해 월등히 낮은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기대고 의지할 사람의 부재라는 사실이 아쉽게 다가올 뿐이다.

 

서운한 말을 던지면서도 도움을 주고, 다독거리면서 입 바른 소리도 해줄 수 있는 관계가 상호작용에 기반한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이다. 사회적 지지는 기댈 곳을 만들어주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해내는 능력인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여준다. 힘든 일을 겪어도 털어내며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역량이다. 사회적 지지를 나눌 수 있는 사회적 관계성(social connections)은 회복탄력성이 배양되고 증진될 수 있는 터전이다.

 

옹산이라는 터전에서 다시 일어나 뿌리를 내린 동백은 위로 받은 자신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인생은 모래밭 위 사과나무 같았다. 파도는 쉬지도 않고 달려드는데. 발 밑에 움켜쥘 흙도, 팔을 뻗어 기댈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이제 내 옆에 사람들이 돋아나고… 이제야… 눈물나게 예쁜 하늘이 보였다.”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역경 극복 능력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지지속에서 다져진다. 우리사회의 사회적 상호작용, 지지체계의 부족은 낮은 행복지수를 넘어서서 높은 자살률로 연결되어 왔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정도와 방식을 살펴봐야 하고, 특히 온라인 소통이 일상화된 우리의 현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나눔과 위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오히려 짧게 주고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보여지는 타인의 일상은 우리를 더 우울하고 움츠러들게 만들기도 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 이용이 정신건강에 유해하다는 연구결과들은 좋은 모습, 좋은 이야기만 보여주고 그 과장되고 왜곡된 현실 속에서 초라해지고 불안해지는 현대인의 심리적 상태를 지적하고 있다. 보기 좋게 포장된 단편적인 사진들 속에는 나눔 보다는 과장된 보여주기, 진실된 이야기 보다는 허울좋은 소리가, 공감과 이해 보다는 상투적인 ‘좋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전 보다 더 풍요롭고 넉넉하며, 더 가깝게 연결되어 있지만 더 외롭고 허하며 동떨어져 생활하는 우리의 일상과 감성은 ‘더불어 홀로’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낳았고, 가정에서 사회에서 함께 둘러앉아 각자의 휴대폰에 빠져있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걸어가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들여다 보는 그 세상에서 우리가 나누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온라인 담론의 문제점을 남을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익명의 악성 댓글에만 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명으로 주고 받는 상투적인 인사말과 겉치레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챙겨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진정한 사회적 지지는 묻혀버리고 우리의 건강과 안녕은 되찾기 힘든 담보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지수는 안타까운 우리 정신건강의 현주소이다. 다양한 보건 정책과 사회적 논의 속에서 정(情)으로 대변되는 우리 문화의 특성을 주시해야 한다. 자동화된, 초연결망 사회에서 한국인이 느끼는 외로움이 어느 때 보다 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우리의 정(情)은 자리를 잃어가고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는 우리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수치가 OECD 국가 중 만년 하위라는 사실은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더 서글프게 다가온다. 기계적인, 기술적인 연결을 넘어서서 사회적 지지를 나눌 수 있는 사회적 관계성이 마련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이 커가고 위로 받을 수 있는 터전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건강한 나눔은 힘찬 응원이 되고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삶의 동력이 된다. 12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옹산이라는 작은 마을이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건강한 나눔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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